brunch

여행으로 배우는 너그러움

< Selfoss 숙소 - Sula gesthouse >

by 왕드레킴

왕복 14km를 걸은 우리는 그야말로 녹초가 되었다.

하산해서 주차장으로 돌아온 아이들은 발목 통증을 호소했고 지치고 아픈 건 신랑과 나도 마찬가지였다. 첫날부터 너무 강도 높은 여행을 했나 보다. 아이들을 다독이며 서둘러 차에 탔다. 거짓말처럼 차에 타자마자 장대 같은 비가 쏟아진다. 트레킹을 시작할 때 산 위의 먹구름을 가리키면서 가이드 David가 오늘은 비만 안 오면 성공이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래!! 많이 힘들었지만 우리의 화산 트레킹은 '대성공'이다.


사실 아이슬란드 화산이 폭발하지 않았다면, 오늘 우리의 계획은 블루라군이었다. 공항 입국 게이트에서 본 블루라군을 광고하는 와이드 전광판이 떠올랐다. 이런 녹초가 된 몸을 뜨끈한 천연 온천에 담그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우리의 블루라군 일정은 이미 아이슬란드를 떠나는 마지막 날로 변경한 상황이었다.


오후 6시 밤이 없는 아이슬란드라 아직 밝지만 배꼽시계는 백야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배도 고프고 오늘 밤 머물 숙소까지 이동하려면 서둘러야 한다. 다음 루트인 셀포스 (Selfoss)로 향했다.


셀포스(Selfoss)는 아이슬란드 남부에 있는 욀퓌사우 강의 하안에 위치한 마을이다. 가까이에 케리드 분화구와 게이시르 간헐천, 굴포스 등 일명 골든서클(golden circle)이라고 불리는 대표적인 관광지가 모여 있어 당일 여행 코스로 인기가 많은 루트다. 우리는 내일 골든 서클을 거쳐 북부 연안 마을 비크(vik)까지 가는 일정을 잡았다.


한 시간 정도를 달려 셀포스 중심가로 들어왔다. 장대비는 그쳤지만, 여전히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일단, 마트도 가야 하고 옷도 사야 했다. 틈틈이 신랑이 이메일을 확인했지만, 항공사 측에서 보낸 수화물 관련 메일은 없었다. 기다릴 수만은 없었기에 일단 갈아입을 옷을 좀 사기로 했다.


마을로 들어가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빨간 간판! KFC 할아버지가 보인다.

" 얘들아, 우리 치킨 먹을래?" 외식 물가가 비싸다고 하지만 늦은 시간 숙소에 들어가 저녁을 준비할 힘도 없어서 즉흥적으로 물었다. 아이들의 눈이 이글거린다. 사실 물어볼 필요도 없는 질문이었다. 우린 큰 패밀리팩 한 통을 샀다. 가격은 한국보다 2배 정도 비싼듯했지만 요즘 우리나라 치킨값도 만만치 않다고 생각하니 먹을만했다.

KakaoTalk_20230817_121107958_01.jpg
KakaoTalk_20230817_121107958_02.jpg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다 보면 간판이 선명해서인지 눈에 잘 띄는 마트가 있는데 노란 간판에 핑크돼지가 크게 그려진 Bonus다. 여행객은 물론 로컬 사람들도 즐겨 이용하는 마트로 물가 비싼 이곳에서 다양하고 신선한 식재료를 비교적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 Bonus에 도착하니 바로 옆에 옷 가게도 있는 mall이었다. 마트는 쾌적하고 꽤 컸다.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하다는 북유럽 국가들, 그리고 그중에 최고봉이라는 아이슬란드!


너무 겁을 냈나?

보너스의 식재료 물가는 생각한 것처럼 비싸진 않았다. 내일 조식과 점심 도시락을 위해 핫도그 빵과 소시지, 우유와 시리얼 그리고, 달걀 한 팩과 올리브유 등을 샀다.

중독성 있는 너무나 맛있었던 핫도그용 소시지 1팩 598 ISK

바나나 반다발 298 ISK

우유 350 ISK

콘플레이크 879 ISK

식빵 398 ISK

달걀 1팩 ( 6알 ) 497 ISK

부드러워 그냥 먹어도 맛있는 핫도그 빵 (5개입) 249 ISK


환율 계산 시 위 숫자(단위 ISK)에 '0'만 붙이면 대략 원화로 쉽게 계산이 되는데 특히, 다양한 빵 종류와 유제품, 소시지 등은 한국과 별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다만 외식물가는 한국의 2배 이상인데 이유는 인건비 때문이라고 했다.


여행하는 일주일 동안은 하루 두 끼 이상은 직접 조리해야 하기에 올리브유와 딸기잼도 샀다. 다행히 기내용 캐리어에 독일 가족이 챙겨준 소금, 설탕, 고춧가루는 있었다.


이번엔 옷 가게로 갔다. 북유럽 스타일의 예쁜 패턴 옷들이 디스플레이되어 있는 Lindex라는 브랜드였는데 기본 운동복 바지가 2,999크로나, 방수 바지는 7,999크로나다. 물론, 계획을 세워 간 쇼핑이라면 충분히 낼 수 있는 금액일 수 있지만, 여행 중 계획에 없던 상황 때문에 지출해야 하는 상황에선 큰 금액이다. 아직 다닐 곳이 많고 빙하 트레킹 때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라 그때까지 수화물을 못 받으면 낭패다. 그렇다고 대자연을 느끼기 위해 온 이곳에서 옷 가격만 비교하며 쇼핑만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잠시 고민을 했지만, 옷을 제대로 입히지 않으면 감기도 걸릴 수 있는 날씨기에 모델 중 가장 저렴한 섹션에서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신랑은 여행자 보험도 들어져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 가족이 수화물 분실 관련해서 구매한 목록은:

려환이 기모 바지 2,999 ISK

려환이 방수 바지 7,999 ISK

지환이 방수 등산 바지 16,990 ISK

아빠 방수 등산 바지 16,990 ISK

Total 34,978 ISK ( 약 34만 원 / 2022.8 환율 1 ISK =9.70원 )


예상치 않은 소비로 속은 쓰렸지만 그래도 이제 추위에 대비한 옷 걱정은 좀 덜었다.

IMG_4099.JPG?type=w1




두 번째 숙소는 셀포스 시내에서 차로 30분 정도 더 들어가야 하는 Sula gest house 술라 게스트하우스다.

숙소를 이곳으로 정한 건 순전히 가격 때문이었다. Selfoss town에 있는 숙소들은 가격이 상당히 비싼 편이었고 남아있는 방도 거의 없었다. ( 아이슬란드에 올 계획이 있다면 최소한 6개월 전에는 숙소 예약을 해야 한다. 우리가 이 숙소를 예약한 시기도 2월이었으니 여행 6개월 전이었다. )


4인 가족이 머무를 괜찮은 숙소를 20만 원대에 찾는 건 꽤나 힘든 일이다. 절대 좋은 컨디션의 숙소를 말하는 게 아니다. 이 가격대에도 2층 침대가 있는 도미토리 형태가 많고 화장실도 공용 화장실을 써야 하는 숙소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 10만 원대 숙소를 찾은 것이다. 매일 밤마다 컴퓨터 앞에 앉아 계시는 구라미 여행사 사장님의 큰 실적 중 하나로 평가하고 있다. 술라 게스트 하우스의 경우 단독 캐빈 형태였는데 164,000원에 예약을 했으니 인정해 줘야 한다. 심지어 화장실과 욕실도 캐빈 안에 있으니 대박이 아니겠는가?


도착한 숙소는 허허벌판에 있었다. 숙소로 진입하는 마지막 골목으로 들어왔을 땐 아무 건물도 보이지 않아 잘못 찾아왔는지 알았다. 밤 9시가 지난 시간이지만 밖은 여전히 밝다. 나무로 만들어진 캐빈 여섯 채가 드문드문 허허벌판에 놓여 있다. 우리 캐빈은 4A. 여섯 채중 가장 저렴한 방이다. 오늘을 위해 신랑은 코스트코에서 큼직한 침낭도 새로 마련했는데 안타깝게도 바르셀로나에서 우리와 함께 비행기를 타지 못했다.


캐빈 안으로 들어가니 정말 아늑한 산장에 온 느낌이다. 우리가 12시간 머물게 될 보금자리! 따뜻하고 아늑하게 잠만 자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너무 좁고 불편했다. 캐리어를 오픈할 자리도 마땅하지 않을 정도로 매우 비좁았다. 욕실 겸 화장실은 캠핑카에 있는 것처럼 미니 탱크가 연결되어 있어 수압이 좋을 리 없다. 그래도 캐빈 안에 있는 게 어디냐? 여행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상황과 타협하게 되는데 대체로 너그러워질 수밖에 없다. 이번 여행에서 난 초긍정 마인드의 정신으로 무장되는 느낌이다. 밖은 허허벌판인데 왜 이렇게 작게 만든 거냐고 혼잣말을 하며 서둘러 저녁을 준비했다.


신랑과 아이들은 야외 덱에 있는 자쿠지를 확인했다. 왠지 작동이 안 될 것 같았는데,, 커버를 벗겨보니 따뜻한 물이 채워져 있고 전원을 켜니 버블스파가 작동된다며 아이들은 갑자기 수영복으로 갈아입는다. 간단히 저녁을 해결하고 우리 가족은 모두 자쿠지에 들어갔다.


사르르 몸이 녹는다. 블루라군을 가고 싶었던 내 마음을 하늘이 알았던 걸까? 자쿠지에서 마시는 맥주는 오늘 여행을 열심히 그리고 안전하게 잘했다는 보상 같았다.

해가 지지 않는 허허벌판의 파노라마와 같은 뷰를 보고 있자니 힐링 그 차체다.


IMG_9159.jpg?type=w1 셀 포스 숙소에서 바라본 밤 9시 전경
IMG_4203.JPG?type=w1 술라 게스트하우스에서의 조식
IMG_4219.JPG?type=w1 좁았지만 아늑했던 캐빈 숙소를 떠나기 전



https://goo.gl/maps/Rbteg9oUaeVgvzPA8









keyword
이전 16화 비현실적인 환타색 용암을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