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공항에 도착해 입국심사를 마치고 나와 공항에 있는 카페에 갔다. 밤낮 가리지 않고 커피를 즐기는 신랑과 난 해외에 나가면 그 나라의 커피를 꼭 마신다. 비슷한 듯 조금씩 다른 다양한 커피를 맛보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이다.
아메리카노와 라테를 주문하려는데 카페 직원 머리 위에 붙어있는 커다란 메뉴판을 여러 번 훑어봤지만 아메리카노도 라테도 보이지 않는다.
'아!! 맞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경험하는 프로그램을 본 생각이 났다.
워홀학생이 취업한 카페에서 음료 제조방법을 배운 후 실습을 하는데 많은 손님이 플랫 화이트를 주문하더라. 라테대신 호주엔 플랫화이트가 있다고 했던 게 생각났다.
난 자신 있게 주문했다.
"뜨거운 아메리카노 한잔이랑 플랫화이트 부탁해요~"
카페 직원은 날 한번 진하게 쳐다보더니 물었다.
"어느 나라에서 오셨어요?"
"한국이요,, 가족 여행 왔어요."
"한국에서는 아메리카노라고 하지만 호주엔 아메리카노가 없어요. 혹시 롱블랙을 원하시나요?"
아뿔싸!
텔레비전에서 플랫화이트와 함께 롱블랙도 나왔었지,, 습관이 무섭다고 자연스럽게 아메리카노를 주문한 것이다.
"오~쏘리, 롱블랙 한잔이랑 플랫화이트 한잔 부탁해요."
그때서야 직원은 미소를 보이며 " 괜찮아요. 다만 호주를 여행하는 내내 아메리카노는 볼 수 없을 거라 알아두세요. 8불 50센트예요."
"감사합니다."
나라마다 각국의 문화도 예절도 조금씩 다르다. 여행하기 전 기본적인 음식 문화나 매너는 미리 알아보고 간다면 여행하는 내내 환대를 받을 수 있다.
호주에는 아메리카노가 없다.
호주에서 커피문화는 특별하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스타벅스가 망했다(?)는 소문이 있는 나라가 바로 호주이다. 실제로 호주를 여행하는 동안 한 번도 스타벅스의 초록 사인을 발견하지 못했다. 세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스타벅스가 호주에서 대부분의 매장이 철수했다는 이야기는 호주 커피 문화를 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세계 2차 대전이 끝나고 이탈리아인과 그리스인들이 멜버른으로 많이 이민을 왔고 자연스레 커피문화가 정착하는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 특히, 이 지역에서 가족 소유의 독립적인 커피전문점 위주로 발전을 지속해왔다고 한다. 이런 커피 역사를 기반으로 일반적인 주택가에서도 수준급의 커피를 판매하는 소규모 카페들이 즐비하고, 90% 이상의 호주 카페는 개인 사업자에 의해 자신만의 스타일대로 운영된다고 한다.
호주에서의 바리스타는 고객과 소통하며 커피를 내리는 문화가 자리 잡았는데 우리나라 단골집 문화와 비슷한 느낌일 수 있겠다. 자연스레 손님이 원하는 원두, 우유, 추출량을 기호에 따라 제공하기 때문에 맞춤 커피를 제공받을 수 있다. 의상으로 말하면 오뜨꾸뛰르(Haute Couture)와 같은 고급지고 특별한 작품인 것이다.
반면 아메리카노 만드는 방식은 세계 2차 대전 미군이 이탈리아를 점령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군들도 커피를 상당히 좋아했지만 이탈리아 카페에서 마시는 에스프레소는 너무 써서 마시기 힘들었다. 이런 이유로 미군들이 물을 넣어 희석해서 마시게 된 것이 아메리카노의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호주의 롱블랙과 다르게 에스프레소 추출 후 나중에 뜨거운 물을 넣는 순서는 여기서 확립되고 미국인들이 마시는 블랙커피 즉, 아메리카노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롱블랙과 아메리카노와 차이점
롱블랙은 먼저 뜨거운 물을 미리 받아놓고 에스프레소 두 잔을 출출하고 뜨거운 물을 붓는다. 육안으로 봐도 확연하게 보이는 크레마가 물 위에 남고, 풍미 좋고 신선함을 느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반면 아메리카노는 추출한 에스프레소에 뜨거운 물을 부어서 만들기 때문에 크레마는 금방 사라지게 된다.
결국엔 만드는 순서의 차이인데 나처럼 예민하지 않은 커피러버들은 사실 롱블랙과 아메리카노를 구분하기 어려울 것 같다.
또 하나 다른 점은 아메리카노는 보통 에스프레소와 물의 양을 1:3 또는 1:4 정도로 희석해서 마시는데 롱블랙은 1:2 정도의 비율이므로 롱블랙이 좀 더 진한 커피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커피의 도시 강릉에서 평소 마시는 커피는 아메리카노가 아니었던 거 같다. 보통 카페에 가서 아메리카노 한잔이요! 하고 주문을 하면 바리스타는 컵에 먼저 뜨거운 물을 받고 에스프레소를 추출한다. 추출이 끝나면 에스프레소 샷을 미리 받아놓은 뜨거운 물이 있는 컵에 붓는 장면을 많이 봐 왔다.
결국 지금까지 내가 한국에서 마신 많은 아메리카노는 사실 롱블랙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바리스타나 카페마다 아메리카노의 물 양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진한 커피를 좋아하는 난 이미 롱블랙에 길들여져 있었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