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어떤 경험을 하던지 '처음'이 중요하다.
누구와 함께 하는지, 어디서 경험하는지, 또는 어떤 기분에서 시작하는지에 따라 첫 경험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되기도 하고 어떤 이에게는 떠올리기만 해도 악몽 같은 최악의 기억으로 남기도 한다.
제대로 된 마트 하나 없던 양양에 언젠가부터 여름만 되면 사람들이 모여들어 서핑을 즐기기 시작했다.
나에게 서핑의 간접적(?) 첫 경험도 양양이다. 말 그대로 직접 해본 게 아니라 간접적 경험이었다.
당시 방송국 취재 기자였던 남편은 양양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점점 서핑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양양의 죽도 해변을 취재하고 있었다. 꿀 같은 주말 아침, 게으른 남편은 웬일인지 추가 영상도 찍을 겸 새로 마련한 드론을 챙겨 아이들과 함께 죽도 해변에 가자고 했다. 촬영이야 촬영기자가 할 일인데 아마도 새로 산 드론을 시험운행해 보고 싶은 마음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차렸지만 모른 척해주고 따라나섰다.
막 붐이 일기 시작한 만큼 죽도해변엔 서핑을 배우려는 사람들과 또 바다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넘실거리는 파도만큼 젊은 기운도 파도 못지않게 넘실거렸다.
작은 꼬마 두 명은 2미터 남짓 되는 빨간 체크무늬 돗자리를 펴주니 모래놀이 장비를 펼쳤다. 마음은 비키니 입은 젊은이들 사이에 끼고 싶지만 통통한 아줌마가 된 두 아들의 엄마는 그저 아이들 눈에 모래가 들어가지 않도록 잔소리나 하는 임무를 지닌 게 다였다. 그나마 챙겨 온 시원한 캔맥주가 울렁거리는 내 마음을 가라앉혀 준다.
남편은 드론을 날리기 위해 좋은 장소를 물색 중이다. 걷다 보니 우리가 자리를 편 곳에서 좀 멀어지고 있었다. 그의 주변은 이제 막 서핑을 시작한 초보자들을 위한 강습이 한창이다.
드론 촬영을 하는 남편이 멀리 사람들 틈에 보였다가 가려졌다를 반복했다. 저 멀리 높은 파도가 마치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에 와 있는 착각마저 들었다.
'그래서 이곳에 오는구나~' 높은 파도를 가르며 보드 하나에 발을 디뎌 중심을 잡으면 저 넓은 바다 위에 나는 세상의 중심이 될 것이다. 생각만 해도 얼마나 멋진가? 높은 파도가 무서울 만도 한데 저들의 용기가 위대해 보이기까지 했다.
사람들 틈에 가려졌던 신랑이 멀리서 뛰어온다. 분명 좋은 장면을 담은 게 분명했다. 걷기도 힘든 모래사장을 숨을 헐떡거리며 뛰어온다.
"빠졌어. 빠졌다고."
"어? 사람이 빠졌어? 어디 어디"
"아니, 드론이 빠졌다고,,"
"뭐?"
"드론이 파도에 휩쓸려 빠졌다고."
남편의 절망적인 눈빛을 잊을 수 없다.
그로부터 3년, 우리 가족에게 동해 바다는 여전히 '우리의 드론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드론을 집어삼킨 높은 파도가 무섭기도 했고 그 사이 양양의 물가는 콧대 높아졌고 서울과 수도권에서 저마다 투자를 하러 모여드는 바람에 부동산마저 고공행진했다. 양양에서 직접 서핑을 하는 건 왠지 우리 가족에게는 어울리지 않았다.
대신 아프리카 여행을 결정한 남편은 꾸준히 서핑스쿨을 검색했다. 한국은 서핑 강습비가 비싸다나? 여행 가는 길에 서핑을 배워보면 좋겠다는 의견이었는데 그다지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굳이 아프리카까지 가서 언어도 안 통하는 아이들에게 서핑 강습이라니, 하지만 남편의 고집을 누가 당하랴.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서머셋 웨스트 해변에 있는 Son Surf School에 덜컥 예약을 한 것이다. 네 가족 프라이빗 레슨이 한국 돈으로 6만 원 정도이니 저렴한 건 사실이지만 이 국 만 리 아프리카까지 가서 서핑이라니 좀 오버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평소엔 참 게으른 사람이 이렇게 LTE급으로 예약을 하는 정성을 봐서라도 아이들과 함께 즐겨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나의 너그러운 마음가짐도 잠시, 여행 출발 한 달 전 남편은 주차장에서 넘어져 왼쪽 팔이 골절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당했다. 담당 의사는 운전도불안한 상태로 조심해야 한다고 했지만 서핑은 절대 안 된다고 주의를 주며 신신당부했다. 이 무슨 바다신의 장난인가?
장난인지 운명인지 여행 내내 날씨가 좋다가 강습 예약 당일 날씨는 정말 최악이었다. 강습을 예약한 날 아침부터 부슬비가 내리더니 기온은 급속도로 내려갔다. 하지만 여행 당일 강습 취소는 불가한 상황이라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 레슨을 받아야만 했다. 팔에 깁스 중인 남편은 우리의 촬영감독이 되어 한 손으로 짐벌을 들고 열심히 뛰어다녔다. 그날 이후 아이들은 다시는 서핑을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벌써 5년이 지난 이야기지만 아무도 없는 광활한 남아공 해변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추위에 벌벌 떨며 아이들에게 통역을 해주던 기억은 다시는 서핑을 하지 않을 거라는 다짐과 함께 웃픈 추억으로 남아 있다.
얼마 전 제법 고학년이 된 아이들에게 물었다.
"너희들 올여름 서핑 배워 볼래?"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