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약 실패기
51점으로 서울에서 아파트를 청약 받을 수 있을까?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올해 2019년이 오기 전에는 말이다. 물론 작년에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고, 언젠가는 되겠지라는 순진한 생각 뿐이었다. 그러나 시장은 순진하지 않다. 상황은 급격하게 변했다. 전용면적 85제곱미터 이하는 모두 가점제로 제도가 바뀌었다. 아주 낮은 점수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는 안정적이라고 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점수. 추첨 아니면 노려보기 힘든 점수 아닐까.
그렇게 이곳 저곳 찔러보다가 끝나는 시간이 지나고 있었는데, 지난 17일 바쁜 하루가 시작됐다.
1. 전날 야근을 마치고 쉬는 오전. 아침부터 새로 분양하는 아파트 모델하우스로 향했다. 얼마전 생각치도 못했던 문자가 왔기 때문이었다. 예비당첨 63번, 기대도 안했던 곳에서 서류 검수를 받으라고 했다. 10시부터 시작하는 모델하우스에 9시57분에 들어가 대기표 1번을 뽑았다. 들어오는 나를 보고, 커피를 마시던 분양대행사 직원들이 후다닥 자리를 정리했다.
뒷번호인데도 왜 불렀냐고 물었다. 부적격자가 많이 나왔단다. 문재인 정부는 85제곱미터 이하 아파트 분양은 모두 가점제로 순위를 정하게 했다. 서울에선 3~40대에겐 아이가 둘이상 있지 않은 이상 아파트 분양을 받기는 매우 어려워졌다. 누구나 점수를 높이고 싶은 유혹을 느끼지 않았을까.
2. 서류 검수를 마치고, 출근하는 길에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갑자기 발표한다는 뉴스를 봤다. 토요일 경향신문에 실렸던, 이낙연 국무총리 인터뷰에서 조만간 부동산 정책을 내놓겠다는 워딩이 있었는데, 그게 오늘이었나 보다.
갑자기 부동산 귀동냥차 들어갔던 오픈 채팅방에 글이 불붙기 시작했다. 엄청난 속도로 올라오는 글들, 그냥 읽지 않고 놔뒀다.
3. 기사도 많은 날이었다. 오후 출근해 반부패비서관 후임 기사를 처리하고,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나온 문대통령 발언 기사를 썼다. 아 그전에, 국민소통수석이 내놓은 검찰 수사 관련 언론보도 반박 브리핑을 기사로 쓰는데 애먹었다. 검찰도 언론도 함께 비판하고 싶은 브리핑은 꼬이고 꼬였다.
기사를 3개 쓰고 이제 좀 한숨을 돌리나 싶은 찰나, 부동산은 오늘 하루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신호를 울렸다. 노영민 비서실장이 다주택 청와대 고위 공직자들에게 한채를 제외한 나머지를 처분하라는 지시 아닌 권고(?)를 냈단다. 거센 물결. 고위 공직자가 투자를 위해 집을 새로 샀는지 모르겠으나, 그냥 있는 집 가격도 올라 재산이 늘었다는 비판이 뼈아팠나보다. 이제 다주택자가 청와대 공직자로 입성하기는 글러먹은건가.
4.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읽지 않았던 부동산 오픈 채팅방을 열어봤다. 민주당을 총선에서 심판하자는 글이 물결치고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서부선이 들어오는 호재가 빨리 되어야, 집값이 억 이상 오를 수 있다는 이들이, 종부세(바빠서 국토부 브리핑을 못봐 이들이 대상에 해당하는지 모르겠다) 조금 오른다고 난리였다. 시간이 좀 지나자, 15억원이 넘는 아파트가 없는 이곳이 이번 정부 대책의 반사 효과를 볼거라는 기대도 흘러나왔다...
p.s 결과가 궁금하신가?
예비당첨자를 대상으로 하는 추첨날도 모델하우스로 향했다. 인간의 마음은 간사한게, 또다시 내가 청약신청을 한 곳이 좋은 거주지역인지 고민까지 해댔다. 당첨도 안될 것인데 말이다.
예비당첨은 63번이었지만, 그날 받은 번호는 34번째였다. 앞에서 30명이 이날 오기를 포기한 것이었다. 그래도 남은 아파트는 26개. 26번까지 동호수 당첨하는 곳에 들어가더니, 한명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줄 서서 기다리다 끝났다. 2020년에는 우리 집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