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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맥주, 위스키, 와인 (2)

가 보고 싶어서, 포틀랜드_Give me more drinks!

by JH

내가 이 도시, 포틀랜드로 여행 오기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의 하나로 꼽는 것은, 포틀랜드가 수제 맥주의 본거지와 같은 곳이라는 점이다. 2018년 6월 기준으로, 포틀랜드가 소재하고 있는 오레건주에는 공식적으로 79개의 도시에 228개의 회사가 운영하는 281개의 브루어리가 맥주를 만들고 있다. 그중, 포틀랜드에만 77개의 브루어리가 활동을 하고 있으니, 삼시 세끼 맥주를 마신다고 해도 한 달여를 꼬박 돌아다녀야 포틀랜드 브루어리 맥주를 다 먹어볼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숫자는 오레건 수제 맥주 협회에서 집계한 이후로 한 번도 줄어들고 있지 않기에, 아마도 당분간 더 많은 브루어리가 생겨나리라 짐작할 수 있으며, 더 많은 맛의 맥주를 만들어낼 것을 기대할 수 있다.


스톰브레이커 브루어리. 위스키와 맥주를 함께 판다. 배우신 분들!


포틀랜드에 도착한 첫날, 숙소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위치한 스톰브레이커 브루어리 Stormbreaker Brewery는 말로만 듣던 포틀랜드의 로컬 맥주를 직접 체험하는 첫 경험이었다. 바텐더가 추천한 그들의 시그니처 맥주인 House Martell, 그리고 대놓고 추천했던 흑맥주-위스키 페어링 세트 (두 술을 같이 먹는 것이다..!)를 먹는 순간, 마라톤이 끝난 뒤 맥주를 찾아 도시를 헤매는 펍 크롤링을 시작하게 될 내 모습이 벌써부터 상상되기 시작했다.


오른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10배럴 브루잉, 데슈트 브러어리, 어센던트 비어, 베일리스 탭룸

마라톤을 완주한 이튿날, 도시를 거닐며 유명 로컬 브루어리를 순차적으로 방문하는 펍 크롤링을 시작했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맛있는 맥주와 음식을 파는 탭 룸들이 있었고 뭐 하나 실망스러운 맥주가 없었다. 베일리스 탭룸, 10배럴 브루잉, 데슈트 브루어리 등 다양한 양조업체들이 도시 곳곳에 그들의 탭룸을 운영하고 있었다. 물론 베일리스 탭룸처럼 편집매장과 같이 수많은 로컬 맥주들을 제안하는 맥주집도 있었다. 게다가 버거를 포함한 모든 식사 장소에서 각종 맥주를 반주로 항상 시켰고, 그 모든 곳에서는 로컬 맥주를 구비해두었기 때문에 정말 물처럼 맥주를 계속 마실 수 있었다.


백패달 브루잉에서는 자전거를 타며 맥주를 먹을 수 있는 BrewCycle을 경험할 수 있다! 자세한 영상은 https://youtu.be/Pe8pKwfWxyk 를 참고하라


특히 인상적이었던 곳은 백페달 브루잉Back Pedal Brewing이었다. 이 곳은 그들의 이름처럼 브루어리 투어 참가자들이 맥주 바 모양의 자전거를 타고 포틀랜드의 주요 탭룸을 방문하며 맥주를 먹을 수 있는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BrewCycle이라고 부르는 이 프로그램은, 백페달 브루잉의 차고에서 시작해서 포틀랜드 곳곳을 돌아다니며 맥주를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시간에 맞추어 신청자들이 삼삼오오 모이게 되고 어느새 자전거에 모두 올라타기 시작한다. 그리곤 영화 탑건의 출격 장면에 쓰이는 “Danger Zone” 음악을 울리며 포틀랜드 시내로 떠나간다. 유쾌한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맥주를 한 잔 하자니, 포틀랜더들의 일상이 새삼 부러워졌다.


수 많은 맛집 중 하나, 헤어오브더독 (Hair of the Dog)


내 하루의 마무리는 숙소 인근의 한인이 운영하는 슈퍼마켓이었다. 단순히 한인이 운영해서가 아니었다. 깜짝 놀랄 만큼 다양하게 매장 3면을 가득 채운 맥주들이 꽉 들어차 있었기 때문이다. 일정상 방문하지 못한 몇몇 브루어리의 캔맥주를 로컬 체인을 통해 동네 슈퍼에서 구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정말 부러웠다. 서울로 따지자면, 집 앞 동네 슈퍼에서 맥파이, 더부스, 어메이징, 플레이그라운드, 와일드웨이브 등 실력 있는 마이크로 브루어리의 맥주를 대충 슬리퍼를 끌고 주섬주섬 주워갈 수 있다는 느낌이었다. 나에게는 맥주 백화점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맥덕이라면 설렐 수 밖에 없는 장면..!




앞서 잠시 언급했지만, 오레건에서는 로컬 위스키 또한 직접 만들어낸다. 미리 공부해가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을 만큼 다양한 종류의 위스키를 만들어내는데, 스카치 스타일의 싱글몰트는 물론, 버번위스키와 쌀 위스키 등 다양한 형태의 위스키를 만나 볼 수 있었다. 그럴 법한 것이, 미국 북서부는 겨우내 습하며 적절히 낮은 기온을 가지고 있다. 위스키 증발량이 적은 환경을 갖고 있기에, 숙성에 최적의 조건을 가진 것이다. 게다가 오레건의 삼림은 미국 내에서도 수위권을 다투기에 오크통의 수급 또한 원활하다. 실제로 오레건에서 구할 수 있는 오크로 만든 위스키는 탄닌감에 특성이 있어, 특유의 스파이시한 향과 풍부한 과일 향으로 유명하다 한다.


펍 크롤링 중 잠시 방문한 멀트노마 위스키 라이브러리 Multnomah Whiskey Library는 이름처럼 수많은 위스키를 보유하고 있었다. 스카치위스키는 어디서나 먹어볼 수 있는 것이기에, 미국에서 맛볼 수 있는 라이 위스키 한 잔과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인 피티한 싱글몰트 한 잔을 추천받았다. 풍부하고 화려한 향의 라이 위스키와 아일레이의 그것과 거의 유사한 묵직한 싱글몰트를 똑같은 지역에서 동시에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 자체도 놀라웠지만, 맛 또한 굉장히 좋았기에 매우 만족스러운 음주가 되었다.


‘위스키 라이브러리’라는 상호가 부끄럽지 않은 곳


여행의 중반을 장식한 와이너리 투어 또한 매우 인상적이었다. 오레건과 그 바로 윗동네인 워싱턴주는 캘리포니아의 나파밸리를 이어 새로이 떠오르는 와인 명산지이다. 캐스캐이드 산맥의 동쪽은 푄현상의 일종인 치누크 바람으로 인해 매우 건조한 기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지역을 관통하는 컬럼비아 강은 원활한 물 공급을 가능케 하여 이 지역의 ㅇ포도 재배조건을 최상으로 끌어올려준다. 나는 이 지역에서 가장 좋아하는 와인 메이커인 컬럼비아 크레스트 Columbia Crest와 인근의 와인사업 중심지인 왈라왈라Wala wala 시를 방문하기로 하였다.


컬럼비아 크레스트의 숙성고와 직영 포도농장. 미국은 스케일이 다르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컬럼비아 크레스트는 미국의 스케일을 느낄 수 있는 와이너리였다. 방문자 게스트 센터에서 나를 맞이한 할머님은 와이너리가 설립된 초창기 때부터 근무하신 분이었다. 별도로 방문예약을 하지 않은 뜨내기 여행자였던 나는 공장 방문 및 생산 공정을 온전히 참관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할머니가 내게 보여 줄 수 있는 최대한의 공간을 같이 보여주며 자세한 설명을 시작했다. 흡사 시멘트 공장과 같은 외관과 기계화된 시설의 와이너리의 모습은 상상 속에서 그렸던 전원 속의 목가적인 풍경과는 사뭇 달랐기에 신선하게 다가왔다.


거대한 산업이 된 미국의 와이너리, ‘컬럼비아 크레스트 (Columbia Crest)’ 공장


와이너리 투어 이후 방문한 왈라왈라는 해가 진 이후에는 인적이 드문 한적한 도시였다. 저녁을 먹기 위해 방문한 인근의 동네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컬트 와인으로 유명한 찰스 스미스의 와인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서 나는 이 도시가 와인산업의 중심지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심지어 식사 중 만난 옆자리의 중년의 남성은 하루만 더 왈라왈라 시에서 묵는다면 멋진 와이너리 주인들을 소개해줄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는 말을 건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전해주었다.


왈라왈라의 소고기와 와인은 ‘산지 직송’의 위엄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포틀랜드와 인근 지역은 커피와 차, 위스키와 와인 등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음료를 다양하게 만들어내고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무언갈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보다 더 즐거운 여행이 어디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다양한 기후와 자연조건, 취향들이 공존하기에 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미국의 힘이 새삼 대단하고 부러운 순간이었다.




Portland Taphouse Cheat sheets

베일리스 탭룸 (Bailey's Taproom)

10 배럴 브루잉 (10 Barrel Brewing)
백패달 브루잉 (Back Pedal Brewing)

데슈트 브루어리 (Deschutes Brewery)

어센던트 비어 (Ascendant Beer)

헤어오브더독 (Hair of the Dog)

웨이파인더 비어 (Wayfinder Beer)
업라이트 브루잉 (Upright Brewing)
이클립틱 브루잉 (Ecliptic Brewing)

스톰브레이커 브루잉 (StormBreaker Brewing)

그레이트 노션 브루잉 앤 배럴 하우스 (Great Notion Brewing and Barrel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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