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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형란 Mar 28. 2017

아는 것과 하는 것 사이의 거리

나는 기독교인이지만 법륜스님의 말씀을 참 좋아한다. 책도 두어 권 읽었는데, 그 중의 글 몇 편은 무릎을 치며 읽었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기도 했다. 얼마전 지인과 대화를 하다가 법륜스님 이야기를 꺼냈더니, 이 지인은 뜻밖에도 "난 스님들이 하는 얘기는 좀 그래."하며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혹시 안 들어봐서 그런 것 아닌가 하고 물었더니, 애초에 별로 들을 마음이 없다면서, 유대교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었다.

불교와 천주교의 성직자는 결혼을 안 해야 하고, 개신교의 성직자는 결혼을 해도 되고 안 해도 되지만, 유대교의 랍비는 반드시 결혼을 해야만 한다고 한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린 후에 겪는 인생의 희노애락을 직접 겪어봐야만 중생들에게 진정한 가르침을 줄 수 있다는 거였다. 듣고 보니 참 일리있는 말이다 싶었다.

호된 시집살이로 고생하는 사람에게, 결혼도 안 해 본 사람이, 혹은 남자가 "그럴수록 네가 더욱 잘 해라"라고 충고한다면 그게 아무리 진리라고 하더라도 얼마나 받아들여지겠는가.


간디의 일화 한 가지를 들은 적이 있다. 어떤 아이 엄마가 아이를 간디에게 데리고 와서, 애가 이빨이 자꾸 썩는데도 사탕을 손에서 놓지를 못한다고 따끔하게 한 마디 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간디는 한 달 후에 오라고 돌려보낸 후, 한 달 후에 다시 온 그 아이에게, 사탕을 먹으면 이빨에 나쁘니 앞으로는 사탕을 먹지 말라고 충고를 했다는 것이다. 옆에서 왜 그 쉬운 이야기하면서 한 달 뒤에 오라고 돌려보냐고 물으니, 간디 자신이 사탕을 좋아해서 먼저 자신이 끊은 후에 충고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한 달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과연 위인이다. 아는 것과 하는 것, 그저 해보는 것과 결국 해내는 것, 그저 알고 말하는 것과 해보고 말하는 것의 차이를 아는 사람은 인생을 아는 사람이다.


얼마 전 반기문 전유엔총장이, 취업이 안되면 자원봉사라도 하라고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적이 있다. 아무래도 본인이 그런 참담한 상황에 처해본 적 없이 승승장구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쏟아진 비난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데 얼마전 나를 화나게 한 일이 한 가지 있었다. 배우 윤여정이 무슨 공식석상에서 "싼 값에 최선의 노동을 오래도록 제공하면 결국 인정받는 날이 온다"라고 말한 것이 취업난과 열정 페이에 시달리는 젊은이들의 정서를 건드려서 악성댓글에 한동안 시달렸었다.  하지만 나는 이 경우는 오히려 가슴 속에 새겨들어야 할 값비싼 인생의 교훈이지, 그렇게 욕을 할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윤여정 배우는 젊어서 배우로서 제일 높은 곳까지 올라가봤던 사람이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오기가 쉽겠는가. 악성 댓글 단 사람 중에 몇 퍼센트가 제일 높은 곳에서 제일 낮은 곳으로 떨어져봤을까. 그렇게 떨어지고도 좌절하지 않고, 천덕꾸러기 아줌마역도 자신의 최선을 다해 헐값에 연기하기를 수십년, 드디어 이제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시작하는 배우의 말에는 인생의 고갱이가 들어있다.
나는 부끄럽게도 나이에 걸맞지 않게 아직 유명한 강사도 아니고 성공한 강사도 아니지만, 윤여정 배우의 그 말에 공감할 만한 경험이 하나 있다.  중국어 강사는 일반 회화 강사와 HSK 강사로 나뉘는데, 돈을 벌려면 HSK 강사를 해야 한다. 내가 구HSK 11급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학원에서 오랫동안 HSK 강사를 하기를 권했었고, 실제로 초기에는 6개월간 HSK 강사를 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시험반 강사라는 게 어찌나 적성에 맞지 않던지 그 6개월은 너무 불행했었다. 그리고는 기초회화코스 강사로 10년간 지냈는데, 기초반 강사는 시간당으로 페이를 받는다. 그러니까 수업을 많이 할수록 생활이 보장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같은 이야기를 10년간 해보면,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나는 문득 나 자신이 재미있는 수업이 하고 싶어졌고, 그래서 하게 된 수업이 드라마와 뉴스로 진행하는 스크린중국어 수업이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나는 매일 두 시간 이상 자료를 준비해도 학생이 한두 명 들어오면, 한 달 수입은 정말 몇만원에 불과했다. 그야말로 안정된 수입이냐 일하는 보람이냐의 사이에서 결정해야 되는 순간이 된 것이다. 물론 나는 나의 취향대로 당연히 나의 재미를 택했다. 그리고 이제 5년째 되어가는데, 지금은 큰 돈을 벌진 않아도 먹고살 만큼은 번다. 그래서 나는 윤여정 배우의 그 말에 깊은 공감을 느꼈다. 헐값에 오래도록 최선의 노동을 제공하면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남 얘기를 동의 없이 내 글에 언급해서 미안하지만, 우리 조카는 (우리 가족이 보기에는) 꽤 똑똑한데도, 초등학교 들어가야 하는 시기에 갑자기 중국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서, 중국어를 하나도 하지 못한 채로 중국 로컬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불상사를 겪어야 했다. 그 뒤로 이 아이는 자기가 공부 못하는 아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정말 그렇게 지냈다. 그러던 이 아이가 중학교 2학년 때, 용인외고 교복이 멋있다면서 용인외고에 들어가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책상 위에 커다랗게 <나는 반드시 용인외고에 간다>라고 써붙여놓는 것이었다. 반에서 15등 하는 아이가 외고에 간다는 생의 첫 목표를 가졌으니, 우리 가족들은 모두 걱정이 태산 같았다. 태어나서 처음 가져본 목표인데 좌절되면 어떡하나 하고. 부모가 만나는 사람마다 기도를 부탁해서 아마 그 아이를 위해서 백 명쯤은 기도를 했으리라고 생각한다. 결국 그 아이가 용인외고에 합격한 날, 나는 내가 고대에 붙을 때보다 더 흥분해서, 학원에 피자를 돌리며 소란을 피웠었다.  조카가 외고에 붙은 뒤에 내게 한 말이 난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이모, 좀 귀찮은 이치를 하나 알게 됐어. <하면 된다>는 거야. 그런데, <실제로 내가 뭔가를 해야만> 그 <하면 된다>가 이뤄진다는 거지." <하면 된다>라는 말 뒤에 숨은 지난한 노력을 깨닫게 된, 고1짜리의 통찰에 나는 상당히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 뒤로 이 아이는 그 소위 귀찮은 이치를 자신의 인생에 적용시켜나가며, 머리에 원형탈모가 생기도록 공부해서 어려운 시험에 붙기도 하면서 인생을 개척해나가고 있으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아, 맞다, 하고 알고 있는 이치가 있는가. 그 이치대로 해보는 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해보는 것만으로도 안 쉽겠지만, 해내는 것은 더욱이나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그 사이의 길을 묵묵히 가다보면 해내는 것에도 도달하리라 싶다.
우선 내게 닥친 시험은, 벌써 2년째 옆에 놔두며 보기만 하는 <누구나 10kg 뺄 수 있다>는 책을, 책이 아니라 내 경험으로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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