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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형란 Apr 15. 2017

블루칼라가 좋은 점

( 타일공 )

공장 생활이나 안내양 생활은 그저 한 두 달에 불과했으므로, 내 블루칼라 경험의 대부분은 타일공으로서이다. 그러므로 블루칼라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것은 주제넘을 것 같고, 그냥 타일공으로서 일하는 게 화이트 칼라와 비교해서 어떤 점이 좋은지를 조금 써보려고 한다.



타일공으로 일하면서 좋았던 점은, 첫째도 둘째도 기술로만 평가받는다는 것이었다.

타일 일은 아주 정직하다. 잘 하는지 못 하는지를 눈으로 보아 알 수 있다. 눈으로 보아 타일 붙인 게 반듯하고, 속도가 빠르면 잘 한다는 뜻이다. 여기에 이견이 있을 수 없다.  팀원 중 누군가가 사장과 인척관계라고 해도 돈을 많이 받을 수는 있겠지만, 일하는 과정에서 기술자를 누를 수는 없다.  눈에 보이는 만큼, 가진 기술만큼, 딱 그만큼 대우받는다.



기술자를 우대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익 구조가 명확하다는 데도 그 이유가 있다.  기술이 떨어지는 사람이 타일을 붙이면, 당장 하자보수가 많이 생긴다. 그러면 먼 장래가 아닌 지금 당장 자금에 출혈이 생긴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기술을 보지 않고 인맥을 따지겠는가.


화이트 칼라로 일하면서 나는 타일공으로 일할 때보다 부당한 일을 많이 보기도 하고 많이 당하기도 했다. 대부분은 인간관계 처리 미숙에서 오는 문제들이었다.  강사로 일하면서, 학원 측의 부당한 처사에 바른말을 했다고 수업을 빼앗기는 경우를 허다하게 보았고, 나 역시 그런 일을 두어 번 당하기도 했다.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은, 화이트 칼라들의 일은, 잘 하고 못 하고가 오늘 당장 사측에 금전적인 손해로 다가가지 않기 때문이다.  길게 보면, 강사가 잘 가르치면 학원에 학생이 늘 것이고, 직원이 일을 잘 하면 회사 전체에 도움이 되겠지만, 그게 오늘내일의 매상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은 아니다.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나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데, 다른 이와 밥을 잘 못 먹는다는 것이다.  강사로 일하면서, 한 번은 삼성 인사부에서 일하시던 분이 학원 원장님으로 오신 적이 있었는데, 아마 이 분은 삼성에서 일하는 동안 직원을 평가하는 기준 몇 가지를 확고하게 가지게 된 것 같다. 나는 그 당시 학원의 메인 강사 두어 명 중 하나였으므로, 원장님은 오신 지 얼마 되지 않아 내게 밥을 같이 먹으면서 이야기를 하자고 하셨다. 눈치라고는 1도 없던 나는 "죄송하지만 밥은 좀 곤란한데, 그냥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시면 안 될까요"라고 이야기했다가,  정리 대상 강사 명단에 올라서 곤욕을 치른 적이 있었다. 동료 강사와 학생 등 십 여 명을 릴레이로 면담하면서 내게서 뭐 흠잡을 게 없나 집요하게 묻는다는 말이 들렸다. 다행히 모두들 내게 대해 좋게 이야기해주고, 특히 한 학생은 두 시간이나 원장님을 상대로 내가 얼마나 성의 있는 강사인지 열변을 토해서, 날 그 위기에서 아슬아슬하게 벗어나도록 해 준 적이 있었는데, 내 동료 강사 하나는 그 원장님에게 밉보인 관계로 그 릴레이 면담을 통과하지 못하고 헬스클럽에서 남자를 만난다더라 라는 풍문으로 인해 학원에서 잘리는 불상사를 겪었다. 그런데 그는 그 당시 내가 알던 강사 중 제일 성의 있는 강사였다.


사실, 강사가 인간성도 좋으면 당연히 좋겠지만, 학생들에 대한 성추행이라든가, 사기 등 명확한 사유가 아닌 이상, 사람이 좀 별로라더라 이런 이유로 해고당하는 것은 부당할 수 있다. 개인적인 편견이 개입될 여지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학원에도 강사를 평가하는 객관적인 기준들이 몇 개 있는데, 재등록률이라든가, 학생들이 월말에 써내는 강사 평가라든가 하는 것들이 있다. 그런 기준들을 가지고 평가하면 마땅할 것인데, 종종 그런 것들이 무시되기도 한다.


그런데 타일공은, 설령 사장님과 밥 먹는 것을 거절한다 해도, 그의 기술이 좋다면 잘릴 이유가 없다. 물론 사장님이 아끼고 총애하는 일꾼이야 못 될지 몰라도, 자신이 가진 기술만큼은 절대 홀대받지 않는다. 노동자로서 이처럼 든든한 조건은 없다. 기술이 있으면 홀대받지 않는다는...


아쉬운 것은, 내가 타일공으로 일하던 때나 지금이나, 블루 칼라 특히 건축일을 하는 사람들의 사회적인 지위는 너무도 낮아서, 어디 가서 건축일을 한다고 마음껏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제일 큰 맹점이다. 사실, 오 년 반 동안 타일공으로 일하면서 느낀 것은, 건설 현장도 사람 사는 곳이고, 건축일도 너무 보람 있는 번듯한 노동이라는 것이었다. 체력이 달리고, 사회적인 지위에 대한 압박 때문에 평생 직업으로 가지지는 못했지만, 늘 건설현장을 생각하면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하다. 그곳에서는 편견 없이 내 기술로만 평가받은 기억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건설일을 하는 노동자들도 떳떳이 명함을 내밀 수 있고, 화이트 칼라로 일하는 사람들도 당당히 자신이 맡은 업무에 대한 능력만으로 공정하게 평가받을 수 있는 날이 하루라도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것이, 현재 한국의 노동시장에 관한 내 자그마한 소망이다. (쓰다보니 마무리가 너무 거창하게 되었다, 무슨 초등학생 웅변 초고 같은 느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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