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형란 Apr 29. 2017

나는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

어렸을 때 어머니는 밖에 나가서 놀지 못하게 하는 대신에 책을 많이 사 주셨다. 계몽사 아저씨는(그 시절 우리는 그를 그렇게 불렀다, 아모레 아줌마...처럼) 어린이 대상 전집이 새로 나올 때마다 제일 먼저 우리 집에 들렀고, 엄마는 언제나 한 질을 흔쾌히 사주곤 했다. 어린이 도서가 그것도 전집으로 천 권이나 있는 우리 집에 와본 사람들은 종종 엄마가 듣지 않는 곳에서 "애들 책을 무슨 허세로 저렇게 많이 사, 보지도 않는 걸"이라고 말했지만, 실은 그 책들은 달리 할 일이 없던 내게 최소한 한 번씩은 다 읽혔고, 백 번 넘게 내 손에 들린 책들도 많았다.



그중에서도 내가 즐겨 읽었던 책은 위인전들이었는데, 막사이사이며 링컨의 흑백사진이 주는 그 은근한 뿌듯함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런데, 위인전 애독의 부작용이 있었으니 이 나이가 되도록 아직도 장래희망이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사실 내 나이에는 "장래 희망"이라는 단어도 민망하다. 아무도 안 물어봐주기도 하지만, 아직도 그런 게 있다는 게 창피할 지경이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내 마음속의 "훌륭한 사람"이란 이들이 링컨, 간디... 등이므로, 혹시 나도 대통령이 되고 싶어 하는지 궁금해하는 이들이 있을까 봐 괜히 노파심에 한 마디 덧붙인다면, 내게 "훌륭한 사람"이란 "나를 감동시킨 한 마디, 혹은 행동 하나"를 한 사람이다.


내 마음속에서 링컨이 위인인 이유는 노예를 해방시켰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가 하루 세 시간씩 기도를 했다는 것 때문이다. 그렇게 바쁜데 어떻게 하루 세 시간씩 기도하냐는 물음에 그는, 너무 할 일이 많아서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다 처리할 수가 없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선거에 떨어진 다음날이면, 새 양복을 입고 거리에 나서며 "나는 실패자가 아니다, 오늘 새로 시작한 사람이다"라고 혼잣말을 했다는 이야기도 그가 내 마음 속의 위인일 수 밖에 없는 이유중 하나이다.


중국에서 어학연수할 때 TV를 보다가 나는 내 위인 목록에 또 한 명을 추가했는데, 노벨 물리학상을 탄 (아마도) 프랑스 교수였다. "당신은 어떤 점에서 다른 사람보다 우수하다고 생각하시나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저는 너무도 평범합니다, 한 번도 다른 사람보다 우수하다고 생각한 적 없습니다"라는 실망스러운 답변 뒤에 평생 잊지 못할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런데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한 점은 하나 있는데요, 다른 이들은 종종 뭔가를 시작할 때 '내일부터 시작해야지' 하더라고요. 전 한 번도 '내일부터 시작해야지'하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게 밤 열 시여도 그때부터 시작했어요"



내 주위에 있는 사람 중에서는 내 마음속의 위인 목록에 단 한 명이 들어있는데, 지금은 인천 대학 중문과에 재직 중인 대학 동창 차태근 교수이다.  우리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는 운동권과 공부하는 사람, 놀고 연애하는 사람이 나뉘어 있었다. 운동권 학생들은 줄줄이 잡혀있는 세미나를 소화하기에도 바빠서 학과 공부는 일찌감치 포기하곤 했다. 그런데 운동권이던 그가 다른 책들도 많이 읽고, 밥도 해 먹고 다니고, 학과 공부도 해내고, 과외 아르바이트도 몇 개씩 하는 것을 보고,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24시간을 하루로 살지 않고, 36시간을 하루로 여기고, 사흘에 두 번 자면서 지낸다고 했다. 물론 평생 가능한 일은 아니겠으나, 그 시절 꽤 긴 기간 동안 그렇게 살았음을 나는 기억한다. 그에게도 이러저러히 지난한 세월이 있었으나 다 극복하며 살아왔고, 아마 지금도 "훌륭한 사람"으로 살고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오늘도 두 사람이 내 마음속의 위인 목록에 새로 추가되었다. 오바마 대통령과 박찬호 선수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스물두 살 이후로 단 하루도 빼지 않고 운동을 했다고 하며, 박찬호 선수는 프로 선수로 마지막 시합에 등판한 후로 2년 후에야 은퇴식을 했는데, 그 2년간 뭘 했냐는 질문에, 혹시 누군가 자기를 찾아줄까 봐 매일 운동을 하며 몸을 최상의 컨디션으로 유지하고 있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365 공부 비타민의 작가 한 재우 님의 브런치에서 읽은 내용이다)
이미 훌륭한 사람들이었지만, 나와는 별로 상관없었던 이 두 사람은 오늘 이러한 각각의 이유로 내 위인 목록에 추가되었다.


나도 이렇게 감동이 되는 한 구절이 있는 삶을 살고 싶다. 그 한 구절은 그저 문장 한 구절이 아니라 삶의 바탕색이어야 하기에, 언제까지나 꿈으로만 남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꿈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나으므로, 나는 오늘도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는 허황된;; 다짐을 해본다.


당장 오늘부터 나도^^ 하루에 한 시간 운동하기에 들어간다, 아자아자!!

매거진의 이전글 즐거운 오독 (誤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