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형란 Jul 25. 2016

준비되지 않은 직장인

1. 준비되지 않은 직장인


음식점을 하셨던 어머니는 어린 나를 늘 일하는 아주머니 손에 맡겨서 키우셨다.  그런데 먹고살기 힘들었던 그 시절엔, 아주머니들이 집안 물건을 함지에 담아서 도망가는 일이 많았다.  어떤 땐 아주머니가 함지에 물건을 가득 담아서 집을 나서면서, 내 손을 잡고 시장에 가서는 시장 한 복판에 나를 세워두고 잠시 여기서 기다리라면서 없어지곤 했다. 다행히도 나는 정말 맹꽁한 어린아이여서, 서 있으라면 그냥 하루 종일 서 있었다.  그러다 보면 엄마 식당에서 일하는 아주머니가 시장에 뭔가를 사러 와서 날 발견하게 마련이었다.  그런 일이 두어 번 있다 보니, 엄마는 극도로 나를 단속하기 시작했다. 집에서 한 발자국도 못 나가게 했고, 학교에 들어가게 되자, 초등학교 정문 바로 앞에 집을 사놓고 학교와 집만 왔다 갔다 하도록 했다.  학교가 끝나면 선생님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수업 끝났다고 알려주고, 엄마가 그 전화를 받은 지 5분 이내에, 우리 집 아주머니가 엄마에게 내가 도착했다고 알려주어야 했다.  친구 집에 놀러 간 적도 없고, 학교 끝나고 운동장에서 놀아본 적도 없다.  


대학에 가서는 반항을 많이 했지만, 근본적으로 모든 것을 엄마에게 의지하는 것은 여전했다.  대학 4학년 2학기가 되었어도 나는 내가 취직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공부에 관심이 있었으므로, 엄마가 평생 먹여 살려주고 학교도 박사까지 마치도록 보내주실 줄 알았다.  그런데 4학년 2학기가 끝나갈 무렵이 되자, 어머니가 "취직 준비는 어떻게 되어가니?"하고 물으셨다.  어머니가 몇 년 전 크게 사기를 당해 집안 형편이 안 좋았으므로, 여태까지 키워주신 어머니한테 "취직은 안 할 건데요"라고 직접 말하기는 어려웠다.  속으로 많이 놀라긴 했지만, "아, 예, 이제부터 알아볼게요" 하고 취업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내 계획은 얼추 알아보는 시늉을 하다가 "엄마, 여자라서 그런지 취직이 안돼요, 그냥 공부할까 봐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랜드에 면접을 보러 간 날은 매우 추웠다.  남들은 외투를 벗어 의자 뒤에 단정히 걸어두었는데, 나는 목까지 외투를 여미 "외투는 안 벗어도 되죠?"라고 묻고는 그냥 앉아 있었다.  어차피 떨어지러 왔는데, 귀찮게 옷까지 벗을 건 없었다.  


함께 면접을 보게 된 일곱 명은 모두 제2외국어 전공자였다.  면접 위원 역시 일곱 명이었는데, 우리에게 각자 자기가 배운 언어로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계절을 말하고, 왜 그 계절을 제일 좋아하는지 말해보라고 했다. 준비 시간으로 3분을 주었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면접 참가자들은 꼭 붙어야겠다는 염원이 여실히 드러나는 얼굴로 좀 더 좋은 대답을 하려고 생각하고 있어서 마치 머리 돌아가는 소리가 방 안 그득히 들리는 것만 같았다.  


내가 대답할 차례가 되었는데, 나는 어차피 떨어지러 온 사람이었으므로 긴장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여름을 제일 좋아합니다.  여름에는 너무 덥고,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많이 나기 때문에 일하기가 싫습니다. 저는 몹시 게으른 사람이어서, 그렇게 땀이 조금 나고, 후덥지근하고, 움직이기 싫고, 뭔가 몽롱한 그런 느낌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그 시절에는 전국에 중문과가 일곱 곳 밖에 없었고, 중국과 막 수교를 한 때였기 때문에, 면접을 보러 온 사람 중에는 중국어를 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면접 위원 중에서는 중국어를 알아듣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일곱 명의 면접 위원은 내가 뭐라고 말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조금도 긴장하지 않고 제법 유창하게 말하는 모양새를 보고 나를 뽑았다.  그들에게도 내게도 실수였던 내 첫 직장생활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의 꿈은 현재시제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