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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형란 Jul 27. 2016

부패는 고위층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국회의원이라든가, 회사 사장이라든가, 공기업의 고위층이라든가 하는 사람들이 공금으로 해외여행을 가고, 가족들을 배 불리고 하는 일들이 보도될 때마다 아직 우리나라가 선진국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들을 성토하는 격앙된 말들을 주변에서 흔히 듣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부패는 그들만의 일은 아니다.  민초인 우리는 얼마나 깨끗한가.  혹시 우리는, 가진 권력이 너무 미미해서 저지를 수 있는 부정이 너무 적은 것일 뿐은 아닌가.


대학 다닐 때, 겁이 많아 시위에는 참여를 못 했지만, 정서적으로는 늘 운동하는 선배들을 따라다녔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존경하지 못할 선배들이 꽤 있었는데, 시험 때가 되면 너무도 당당하게 부정행위를 하는 몇몇이었다.  그들의 논리는 언뜻 설득력 있어 보였다.  사회를 위해 일하느라 공부할 시간이 없었던 내게, 너 자신을 위해 시간을 보낸 네가 조금 희생해라...라고 하는.  하지만, 제정구 의원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일이 옳다고 사람이 옳은 게 아니야. 사람이 옳아야 일이 옳은 거야".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시험 부정행위를 하던 운동권 학생들이 나중에 국회의원이 되면 너무도 당연히 부패의 행렬에 들어갈 것이라고.


이랜드에 다닐 때, 같은 부서 선배가 여자 친구와 햄버거 먹은 걸 마치 거래처 사람과 먹은 것처럼 회사에 경비 처리하는 걸 보고 참 실망했던 적이 있는데, 사실 회사 카드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 중 몇 프로가 "나는 맹세코 가족과 친구를 만날 때는 회사 카드를 한 번도 쓰지 않았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회 경험이 전무해서 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블루칼라의 세계는, 그러니까 노동의 세계는 신성할 거라고 생각했다.  참 너무도 순진한 생각이었다.  뭇 산업 중에서도 특히 건설업은 맨 위에서부터 맨 아래까지 부패했기로 유명한 걸, 그 속에 들어가서야 알았다.  

×× 건설 인허가에 부정이 있었다는 추측이 있다.  분명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안 그렇기가 어렵지 않은가.  그렇게 공사 부지를 맡고, 공사 허가를 받는 제일 윗선의 일부터 부정이 그득한 건설의 세계는, 맨 밑바닥까지도 부정으로 그득하다.  

우리 타일팀의 사장은, 새로운 공사장에 갈 때마다 그 단지의 건설소장과 고스톱을 쳤는데, 공사를 따내기 위해서 언제나 크게 잃어주었다.  이 현장은 다이아몬드 반지로 따낸 현장이고, 그 현장은 외제차량으로 따낸 현장이고...  술자리에선 내어준 재산이 아깝다고 하소연했어도, 실상은 그렇게라도 공사를 따내는 게 이익이었다.


화이트 칼라쪽에서 보기에야, 건설 노동자들은 다 비슷해 보이겠지만, 화이트 칼라 안에도 너무도 많은 계층이 있는 것처럼, 블루 칼라에도 그렇다.  건설 노동자들 사이에서, 객관적인 느낌으로 제일 하층인 듯한 직종은 직영 노동자이다.  사회로 치면 경비직이나 청소직에 해당한다.  나는 타일공으로 일할 때 일당 6만 5천 원을 받았는데(벌써 20년 전 이야기이고, 그때 남자 타일 기능공들은 10만 원 정도 받았다), 그때 직영 노동자의 일당은 2만 원이었다.  기능공들끼리 농담으로 서로 헐뜯을 때면, "직영으로 일할 때까지 여기서 굴러라"하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이 직영 노동자들의 급여가 상당 부분 새어나간다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 현장에는 20명의 직영 노동자가 있었는데, 그분들은 모두 오후 6시에 퇴근하는데, 그들의 작업일지에는 언제나 12시까지 야근한 것으로 적혀있었다.  12시까지 야근을 하면 200%를 받게 되어 있는데, 한 달 30일, 20명의 야근수당은 작업반장이 모두 가져갔다.  그래도 그 20명의 직영 노동자 중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는데, 그들이 가만히 있는 이유는 200%의 일당대로 퇴직금이 정산되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내 주위에는 노동현장에서 일하는 지인들이 몇 명 있다.  20년이 흘렀어도 건설현장은 별로 변한 것 같지 않다.  여전히 내 지인들의 급여명세서는 실제로 일한 날짜보다 며칠씩 더 쓰여있고, 그 차액은 담당 건축기사가 가져가고, 그 대신 다음 현장으로 갈 때 더 쉽게 따라갈 수 있다고 한다.


부정은 블루 칼라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전에 일하던 중국어 학원은 유난히 직원이 자주 바뀌었다.  한 번은 정말 계산을 너무도 못하는 직원이 서너 달 회계를 맡은 적이 있었는데, 그 직원이 회계를 맡는 동안, 그 어느 강사도, 그 어느 한 달도 계산이 틀리지 않은 적이 없었다.

재미있는 것은, 대부분의 강사들이 적게 받은 것만 내려가서 이야기하고, 많이 받은 것은 말하지 않는 것이었다.  60만 원 더 나왔다고 내가 내려가서 말하자, 강사들 사이에서는 혼자 깨끗한 척다고 뒷말이 있었고, 직원들은 그 후로 나를 조금 두려워했다.  진실이 주는 힘, 뭐 그런 거였다.

내가 일하던 학원에서는(지금은 어떤지 모른다, 벌써 몇 년 전 이야기이다) 대부분 시간당으로 페이를 주었는데, 우리 강사들이 부당하다고 느꼈던 것은, 한 반의 학생수가 30명이 넘어도 같은 페이를 받는데, 3명 이하로 들어오면 페이가 깎인다는 것이었다.  중국어에 上有政策,下有对策라는 말이 있다.  상부에 정책이라는 게 있으면, 아랫사람들에게는 대책이라는 게 있다는 말이다. 강사들 사이에는 3명 이하로 등록된 반이 있으면, 다른 반에서 이름만 끌어오는 편법이 유행했다.  역시 옛날이야기이다.  지금은 마땅히 훨씬 합리적으로 제도가 바뀌었을 것으로 믿는다.  
나는 그런 품앗이를 즐기지 않았고, 하루는 용기를 내어, 우리 기독교인 강사들만이라도 그런 일에 동참하지 말자고 말을 꺼냈다.  그랬더니 동료 강사들이 깜짝 놀랐다.  남에게 도움을 주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무리의 힘은 이렇게 무섭다.  나치에 참가했던 많은 젊은이들이 분위기에 휩쓸려 그것을 정의라고 생각했고, 때로 군대나 학교 써클 같은 데서 성폭행이나 절도를 단체로 하게 되는 경우에도 나름 정의롭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개발 정보를 동료 국회의원에게 제공해서 그의 지인들을 부자로 만들어주는 것도, 그들 사이에서는 미담이요 덕목일 수 있다. 그들은 전혀 부끄럽지 않을 수 있다, 우리가 그런 것처럼.
 
부정을 저지른 국회의원에게 물어보라, 국회의원은 연금도 없고, 세상에 국회의원 같은 약자가 없다는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대통령에게 물어보라, 몇 백 명을 이끄는 CEO도 수천만 원씩 월급을 받는데, 오천만 명을 이끄는 대통령이 겨우 얼마밖에 못 받는다고 억울해할 것이다.

내 처지의 억울함이 내가 부정을 저지를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너무 무력한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 사회를 바꾸는 노력을 계속하는 동시에, 그럼에도 안 바뀌는 사회 속에서 그냥 살아가면서, 나 하나만이라도 물들지 않아보면 어떨까.

나만큼은 시험 부정행위를 안 해보면 어떨까,  나만큼은 친구 만날 때 회사카드를 안 써보면 어떨까, 나만큼은 일한 날짜만큼만 급여를 받겠다고 해보면 어떨까...

남들에겐 남들의 사연이 있으므로, 그들을 비난할 것은 아니나, 최소한 나만큼은 깨어 있어보면 어떨까...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세월호 같은 일은 줄어들지 않을까, ×× 같은 건물도 덜 세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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