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형란 Jul 28. 2016

궁하면 변해보자, 변하면 통한다

정주영 회장이 신문을 팔던 열아홉 살 때, 아침이면 신문 돌릴 일에 절로 눈이 떠지고, 자리에서 튀어 오르듯 일어났다는 글을 읽은 적 있다.  나도 타일 일을 할 때 그랬다. 아침마다 "내 벽!"을 생각하면 절로 눈이 떠졌다.  남들은 지금도 웬 노동이었냐고들 말하지만, 내겐 참 즐거운 노동현장이었다.



훈련원에서 기술을 익히고, 처음 기능공으로 현장으로 나왔을 때, 나는 건설현장이 원래 그렇게 겨울이면 대책 없이 쉬는 곳인 줄 몰랐다.  몇 번 같이 일했던 타일팀 대장에게 연락을 했는데, 현장에 물공급이 원활하지 않아서 일을 할 수 없다고 했다.  때는 겨울이었고, 일손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를 완곡하게 한 것이었는데, 눈치가 없던 나는 철물점에 가서 현장용 물 호스를 200미터 사서 둘둘 말아서 어깨에 메고, 버스를 타고 비포장 도로를 거쳐 현장으로 갔다. 대장은 호스를 사들고 온 나를 보고 곤란한 듯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나를 한 팀으로 받아들여 내내 함께 일했다.  진짜 이 일이 하고 싶은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했노라고 그는 아주 나중에 내게 말해주었다.


타일 일은 건설 현장에서 목수일 다음으로 정교한 일이다. 타일은 절대 타협이 없다.  맨 아랫줄에서 아주 조금이라도 수직 수평이 안 맞으면, 중간쯤 올라가선 벌어지거나 몰려서 다 뜯어내야 하는 사태가 일어난다.  화장실 한 칸마다 배정된 타일은 그 양이 고정되어있는데, 타일은 뜯어내면 다시 쓸 수 없으므로, 이 정도면 대형사고에 해당한다. 설령 다 뜯어냈더라도 아무도 대신 수습해주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이 맡은 칸은 며칠이 걸려서라도 자신이 매듭짓고 나와야 한다.

과잉보호를 받으며 자란 나는 조금이라도 어려운 일이 있으면 늘 중간에 그만두었다.  모두들 맞는 예방주사도 엄마한테 선생님께 잘 얘기해달래서 혼자 빠진 적도 많았고, 시험공부를 하다가 시간이 모자랄 것 같으면 아예 시험을 치지 않아서, 대학 때 성적을 보면 과수석도 두 번 했지만 학사경고도 두 번 받았다.  도무지 책임감이라는 건 없던 사람이었는데, 아무도 대신 붙여주지 않는 화장실 앞에서는 나도 어쩔 수 없었다.  타일 일을 하면서 나는 서서히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벽을 붙이는 일은 상당히 재미있었다.  원래 손으로 하는 일을 좋아하던 나는, 점심을 거르고 일을 할 때도 많았고, 밤 11시까지 일할 때도 있었다.  그렇게 신나서 일을 했던 세월은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뭐든지 2년만 배우면 먹고살 수 있다는 것, 한 가지만 잘 해도 먹고살 수 있다는 것, 어디서라도 진심은 통한다는 것, 아무리 착한 사람도 개념이 없어서 줄을 잘 못 서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악이 된다는 것, 사람은 그 사람이 번 돈의 액수가 아니라 인품으로 기억된다는 것, 사람에게 또 눈 뜰 수 있는 내일이 언제나 보장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이런 것들을 나는 모두 노동현장에서 배웠다.


이런 걸 노동현장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신나서 할 수 있는 일을 할 때 사람은 성숙해지기도 하고, 인간에 대해 눈도 뜨고, 더 쓸모 있는 사람도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내가 정말 왜 이러고 사나... 하면서도 월급은 받아야 하니까 울며 겨자먹기로 사는 생활 속에서는 자신도 사회도 구할 수 없다.  

조금만 더 나 자신을 사랑해보자, 남들의 눈이 아니라 나의 성향에 더 귀 기울여 보자, 내가 언제 신나고, 무엇을 잘 하는지 열심히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자.  그리고 그것을 해나갈 때 생각지 못했던 이런저런 길들이 열리고, 우리의 열정을 눈여겨본 누군가가 도와주기도 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만에 하나는 있을 수도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