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박5일짜리 신병 첫 휴가를 나왔던 때의 일이다.
울음으로 훈련소 입소를 배웅하던 홀어머니가 매일 그리웠던 신병 생활이었지만, 정작 그 그리움과 달리 휴가 첫날부터 나는 친구들과 어울려 노느라 나흘 중 사흘을 외박한 뒤 복귀 전날이 되어서야, 그것도 자정이 가까워 귀가했다.
실컷 놀다 들어오니 날 밝으면 부대로 복귀할 생각에 마음과 몸이 내 것이 아닌 듯 했다. 특공대에서의 남은 군대 생활이 아득했다.
그 늦은 시간에도 어머니는 내 저녁 끼니를 걱정하셨지만 당연히 삼겹살로, 소주로 배가 부를 대로 부른대다 부대 복귀에 온통 마음과 몸을 빼앗겼으니 나는 전혀 허기를 느낄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그런 막내아들의 귀가마저 아쉽고 반가우셨는지 낮 동안 시장에 갔다가 내가 평소 좋아하는 맛있는 찰옥수수를 사 놓았다며 먹어보라셨다.
"아니 됐어요. 안 먹어요"
"그래도 하나만 먹어봐라. 니가 좋아하는 찰옥수수다."
"됐어요."
"한번 맛이나 봐라."
"아 됐다니까요!"
"......"
"......"
"야 이노무 손아. 맷 달 만에 휴가 나와서 니는 이 엄마랑 얼굴 한 번 마주하는게 그리 어렵더나!"
첫 휴가 나온 막내 아들과 따뜻한 밥 한끼 고대하던 어머니가 며칠을 참으셨던 서운함을 마침내 토로하셨다.
하지만, 어머니의 하소연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나는 되려 오만상을 쓰며 맥락없이 그냥 ‘알겠어요.’를 반복하며 어머니의 말문을 억지스레 막아 버렸다.
복귀 날도 아침밥을 거른 채 실컷 늦잠을 자고 일어나 허둥대며 시외버스 터미널로 갔다. 부대로 돌아가면 잠이 부족할 거라시며 어머니는 일부러 깨우시지 않으셨다. 터미널로 가는 동안도 머릿속은 짧은 휴가의 아쉬움과 남은 군 생활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승객들을 피해 진주행 시외버스의 맨 뒷자리 창가에 앉았다.
아주머니 한 분이 버거워 보일 정도로 여러 개의 짐 보따리를 챙겨 이고 지고서, 하고 많은 빈자리 중에 굳이 내가 있는 뒷자리까지 오시더니 가운데 자리에 앉았다.
얼핏 내 어머니 연배처럼도 보였다. 버스 출발을 기다리는 사이 아주머니는 갑자기 깜빡한 물건이라도 있는 것처럼 짐보따리를 이리저리 뒤적이시더니 뭔가를 꺼내 불쑥 나에게 내밀었다.
"군인 아저씨, 이거 하나 잡숴 볼라요?"
내 마음속 사정과는 상관없이 아무렇지 않은 아주머니가 건넨 것은 삶은 옥수수였다.
몇 번을 사양했지만 결국 못 이겨 억지로 하나를 받아 쥐었다.
먹고 싶지 않았다. 전혀 먹고 싶지 않았다.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니 이내 모든 풍경들은 사라지고 기약 없을 것 같은 ‘뺑이치기’할 내 모습만 그려졌다.
무심코, 아주 무심코 나는 옥수수를 한입 베어 물었다.
갑자기 눈 밑으로 왈칵하고 눈물이 차올랐다.
‘아... 엄마... 엄마는...’
‘엄마 생각’이 떠오른 뒤 눈물이 난 것이 아니라 베어 문 옥수수가 내 혀끝에 닿는 찰나의 순간 눈물이 쏟아져 흘렀다. 그리곤 이내 양쪽 어깨가 뻑뻑해지며 나의 무딘 몸이 따라서 울기 시작했다.
돼지비계 잔뜩 넣고 끓여 주시던 얼큰한 김치찌개, 친구들을 놀래키던 미더덕찜 도시락 반찬, 수육 대신 삶아 주셨던 돼지 껍데기, 엄마 따라 간 자갈치 시장 좌판에서 함께 먹던 고래고기, 동래시장 수수부꾸미, 울산 당월 찰옥수수...
어머니와 연결된 숱한 나의 감정과 그리움은 갓난쟁이 때부터 이날까지 어머니 손으로부터 내 입에 물려진 모든 음식과 곧장 연결되어 있었음이 분명했다.
옆자리 아주머니에게 내 눈물이 들킬 것 같아 모자를 꾹 눌러 고쳐 쓰고 옥수수를 급하게 먹기 시작했다.
"아이고 군인 아저씨, 옥수수 좋아하는 갑네... 하나 더 잡술라요?"
내 어머니는 막내 아들놈과 밥상에 마주 앉아 첫 휴가를 기념해 준비한 당신의 특별한 음식들이 들어가는 내 입을 보고 싶으셨을 거다.
당신 아들놈 입맛은 변하지 않아서 부모 노릇이 당분간은 할 만한 일인지, 견딜만하다고 하는 군 생활은 과연 그런지 알고 싶으셨을 거다.
결국, 그게 여의치 않으셨으니 시장통 좌판에서 건져 온 찰옥수수 먹는 동안이라도 그러고 싶으셨을 텐데, 그런 날에도 나는 나밖에 몰랐었다.
p.s. 지금도 엄마는 늘, 해주셨던 음식 맛으로 나를 찾아오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