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대하여: 생각일까, 마음일까

내가 선 이곳은 발판인가. 무대인가.

by 와온

과거는 바뀔 수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문한다. 이미 일어난 일을 어떻게 바꾸느냐고.

하지만 나는 그 질문을 조금 다르게 듣는다. ‘바뀌는 것이 사건인지, 아니면 사건을 바라보는 자리인지’에 대한 전제가 생략된 질문으로.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의미에서 과거는 완결된 사건의 집합이다. 하지만 그 사건을 기억하고 호명하는 주체가 ‘지금의 나’라면 과거는 박제된 기록이 아니다. 현재와 함께 호흡하는 해석의 영역이 된다.


브런치 스토리에서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을 꺼내 놓은 어느 작가의 글을 보았다. 일곱 살, 그 무구한 나이에 겪어야 했던 상처들을 세밀하게 복원해 내는 그의 문장을 읽었을 때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왜 그는 일곱 살의 기억을 이토록 아프고도 정성스럽게 매만지고 있는 것일까.

마치 여린 짐승이 아무런 치료 방편이 없어서 오로지 혀로 제 상처를 핥아 치료하려는 듯 말이다.


그것은 단순히 과거의 고발이 아니라, 그 모진 시간을 견뎌내고 현재의 자리에 선 자신을 비로소 안아주고 싶다는, 스스로를 향한 가장 간절한 환대 같아 보였다.

일곱 살은 반박이 불가능한 나이지 않는가. 아무런 책임도 없고, 무한한 사랑으로 보호받아야 하며, 무엇보다 일곱 살짜리의 말은 의심받지 않는다. 아이의 기억은 순진무구하여 이미 윤리적이다.

나는 그 글을 읽으며, 그의 기억이 과거를 증언하고 있는지, 아니면 현재의 화자를 지탱하고 있는지를 생각했다.


나 역시 ‘동거인’이라는 차가운 활자로 가족관계증명서에서 추방당했던 유년의 기록을 반복해서 써 내려왔다. 그렇다면 나 또한 사면받지 못한 채 마음의 유배지를 부유하던 나 자신에게 비로소 ‘존재의 증명’이라는 따뜻한 외투를 입혀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기억의 효용은 어디에 있을까.


예전 장기실종팀에서 근무하던 때다.

내가 법최면(최면상담) 기법을 장기실종수사에 적용하던 시기였다. 한 민원인을 만났다. 서너 살 무렵 부모와 헤어져 고아원에 맡겨진 환갑을 가까이 앞둔 남자였다. 자신의 본명조차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그의 모든 공부상 기록은 고아원에서 새롭게 만들어져 부여된 것이었다.

사전 면담에서 그는 어머니를 ‘학식 있고 교양 있는 선생님’으로 묘사했다. 어머니와 단둘이서 당시 용인자연농원에 놀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자신의 실수로 버스를 타고 보니 어머니가 계시지 않았고, 그렇게 고아가 되었다 말했다.

어머니의 나이를 알 수 없으나, 이미 돌아가셨다면 제사를 모실 날이라도 알고 싶다 했다.

그런데, 면담이 깊어질수록 내 판단은 그 남자의 설명과는 다른 방향으로 기울었다. 수압에 갇혀 수면 아래로 계속 가라앉는 듯한 막막함이 쌓여갔다. 그 남자의 유년에 관한 서사는 허술했고, 마치 특정 사실을 떠올리지 않기 위해 지어 올렸으나 정교하지 못한 성벽 같았다.


“어머니는 학교 선생님이었어요.”

“예쁘고 착했어요. 아버지는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요.”


그는 좋은 꿈을 꾸는 듯 나의 질문에 대답했다.

“2층 빨간 벽돌집에서 살았어요. 예쁜 어머니랑… 행복했죠.”


공원 폐장 무렵이었는지 날이 저물었을 때, 어머니와 함께 사람들에게 섞여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었다고 했다.

“정류장에 먼저 도착했는데 어머니가 안 오시는 거예요. 버스가 와서 사람들이 막 타고 있는데도”

“그냥 혼자 버스를 탔어요. 어머니 손을 놓고 함부로 다닌 거예요. 제가..”

“저를 많이 찾으셨을 건데… 어머니께 죄송하죠…”

어머니를 원망하지 않았으며, 되려 죄책감을 말했다.


연령 역행을 시도할수록 더 견고하게 닫혀, 무의식의 정보는 넘어오지 않았고, 언어로 된 그의 의식적 신념만 반복될 뿐이었다.

기억이 없어서 나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나오지 않도록 ‘지켜지고’ 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가 고의로 자신을 유기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면, 자신은 ‘버려진 아이’가 되는 것이다. 그러한 정체성은 지금까지 그가 어렵게 유지해 온 자기 존엄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두려움이기에, 그것이 그를 붙잡고 있는 것 같았다.

나의 판단에, 그는 유기된 아이였다.


그러나 그의 무의식은 사실을 보존하기보다, 삶을 보존하는 쪽을 택한 듯했다.

내가 그를 도울 수 있는 게 없었다. 그 남자에게 아무런 설명을 할 수 없다는 게 막연히 죄스러웠다. 미안하다는 말 외에는 그를 배웅할 말이 없었다.


기억은 과거의 기록이기보다 현재의 나를 유지하기 위한 해석인 경우가 많다. 우리는 과거를 통해 지금의 나를 설명한다. 그리고 그 설명은 종종 미래를 향한다. 내가 어떤 사람으로 남고 싶은지, 어떤 평가를 받고 싶은지에 대한 바람을 포함한 채로 말이다.

어떤 이는 과거를 자신을 긍정하는 재료로 삼아 스스로를 돕기도 한다. 그에게 과거는 ‘발판’이다. 반면 어떤 이는 같은 경험을 상처와 차별의 이름으로 현재에 끌어와 반복 재현한다. 그에게 과거는 ‘무대’다. 이야기는 끝나지 않고, 관중의 동정과 동의가 커튼콜을 만들어 낸다.

과거를 내려놓아도 나를 설명할 ‘다른 언어’가 있는 사람은 그 기억을 발판으로 둘 수 있지만, 과거를 떠나면 자신을 설명할 말이 사라지는 사람에게 기억은 놓을 수 없는 정체성이며 무대가 된다.

나는 나의 과거에게 질문을 던지는 편을 택한다. 그 기억이 지금 나에게 어떤 기능을 하고 있는지.


아픈 기억은 사실이기 때문에 남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견딜 수 없기 때문에 다르게 남는 경우도 있다. 과거를 어디에 둘 것인지는 매번 현재의 내가 결정한다. 과거를 발판으로 두고 딛고 앞으로 나아갈 것인지, 무대로 남겨서 그 위에 계속 오를지.

물론, 나는 아직도 자주 헷갈려한다.


p.s. 법최면(최면상담)은 사실을 확정하는 기술이 아니라, 기억의 가장자리를 더듬어 사건 추적의 ‘단서’를 얻기 위한 보조적 시도임을 밝혀 둔다. 나 역시 유년의 결핍을 기록하며 이 무대에서 내려갈 단서를 찾는 중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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