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타 테켄트럽의[빨간벽]그림책을 읽고
브리타 테켄트럽이 쓴 [빨간벽]이라는 그림책이 있다. 빨간벽을 넘어 무엇이 있는지 궁금한 생쥐는 사자, 여우, 곰에게 묻는다. 그러나 그들은 궁금하지 않다. ‘시커먼 없음‘만 있을 뿐이라고 대답한다. 마침내 생쥐는, 벽을 넘어 날아온 비둘기를 타고 여러 가지 색깔이 가득한 아름다운 세상을 발견하게 된다.
벽으로 막힌 세계가 궁금해 다른 동물들에게 코를 맞대고 묻는 생쥐는, 혼자 담을 넘어서지는 못한다. 자신의 손을 잡고 함께 담을 넘어줄 친구, ‘너라면 그곳에 갈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해줄 친구를 기다리는 생쥐의 모습 속에 자꾸 내가 보였다.
함께 할 친구를 찾고 있었다. 잠재력을 믿고 자신을 펼쳐갈 수 있는 세계로의 도전. 결혼을 한 여성이지만, 아이의 엄마이지만 꿈을 꾸고 있었다. 어떤 일을 해내는 것이 중요하진 않았다. 어렵고 작아지는 시린 날, 등을 토닥여줄 친구를 원했다.
친구를 만나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은 좌절되었다. 어른이 되어 친구를 사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했다. 엄연한 사회생활일 뿐, 어린 시절 싸워도 같이 또 같이 어울리는 친구처럼 될 순 없는 것 같았다. 한 번 틀어지면 끝나는 인연. ‘결이 다르다’는 한 마디면 모든 것이 설명되는 관계는 위태롭고 조심스러웠다. 내 의견을 내세우기보다는 한 걸음 떨어져 모두의 의견을 맞춰보려 애썼다. 이번엔 그래서 실패한 것 같았다. 상대는 나에게 애매모호함을 느꼈지만 사회생활의 관례를 따르는 관계에서는 더 묻지 않았다. 서로의 의사를 존중한다고 표현했다. 소통을 시도하는 사람이 외려 이상해질 것 같은 분위기에 지레 겁을 먹고 물러섰다.
내가 원하는 대로 친구를 만날 수 있다면, 어떤 친구를 만나고 싶은 걸까. 딱 2가지 조건을 꼽았다. 나를 고객으로 바라보지 않는 친구, 이득이 될 부분만 취해가는 것이 아니라 단점 가득한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해줄 수 있는 친구. 아아, 사회생활에 치인 단내가 나는 조건들이다. 노래를 잘하는 친구, 웃는 모습이 예쁜 친구, 같이 아이스크림 먹으러 갈 친구라고 왜 이야기할 수 없었을까. 앞으로 다가올 친구에게 벌써 미안한 마음이 든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부르던 노래의 한 소절이 맴돈다.
“괜스레 힘든 날 턱 없이 전화해
말없이 울어도 오래 들어주던 너. “
- 안재욱의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