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비우는 빛

제임스 터렐 《James Turrell: The Return》전시 감상

by 김정승

빛 앞에 앉아 있었다.

아무 말도 없이,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빛이 천천히 변해가는 것을 바라보는 동안,

나는 어느새 빛의 일부가 되었다.


페이스갤러리에서 열린 제임스 터렐의 전시는 시각의 본질을 묻는다.

오랜만에 작품을 감상하며 오히려 충전되는 기분을 느꼈다.

마치 명상을 끝낸 뒤처럼 마음이 맑아졌다.

감상 후에 남은 것은 정보나 감정도 아닌 고요함이었다.


작품은 관람자가 다가갈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다.

가까이 다가서거나 손을 뻗을 수 없다.

이 물리적 거리감은 자연을 마주할 때와 닮아 있다.


광대한 하늘처럼, 터렐의 작품은 그저 '존재'한다.

우리는 그 앞에서 바라볼 수는 있지만, 개입할 수는 없다.

작품과 관람객 사이에는 침묵의 경계가 놓여 있다.


설치 작품에는 사운드 장치가 없다.

소리 없는 공간에서 오직 시각에만 집중하게 만든다.

섬세하고 은은하게 변하는 빛은 자연광을 바라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온다.

어느 순간, 내가 빛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빛이 나를 감싸는 것 같은 감각이 든다.

감각은 내부에서 외부로, 다시 내부로 흐르며 새로운 감응을 일으킨다.


작품은 군더더기 없이 단정하다.

'볼 수 있는 것'만 남기고, 나머지는 지운 듯하다.

오로지 시각에만 의존하는 이 작업은 작가의 철학을 명료하게 드러낸다.

확고하고 절제된 태도는 오히려 더 많은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갤러리 내부는 조용하다.

그러나 잠시 머물다 보면 바깥의 도로 소음이 은근히 스며든다.

그 불완전한 외부의 소리는 작품의 명상성을 오히려 더 또렷하게 만든다.


빛을 바라보며 묵상하고 있으니, 어느 순간 도시의 소음과 공간의 침묵이 하나로 겹쳐지는 느낌이 든다.

몸은 이곳에 있지만 의식은 어딘가로 흘러가는 듯하다.

그 틈에서 나는 조용히 사라진다.


하얀 벽의 프레임과, 살짝 떨어진 곳의 반투명한 막 사이로 스며드는 빛은

건물 천장에 뚫린 작은 구멍을 통해 하늘을 바라보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빛은 직접 다가오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멀리서 은은하게 머물며, 조용히 감싸 안는다.


어둠 속에서 마주한 유일한 빛은 따뜻하다.

그 앞에 앉아 있으면 마치 자궁 속에 들어온 듯한 포근함이 밀려온다.

알 속에 품겨 있는 생명처럼 보호받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 안온함은 생각을 흘려보내게 하고, 마음을 비우며

마침내 잠 속으로 천천히 빠져들게 만든다.


나는 그 빛 앞에서 서서히 사라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빛 그 자체가 되었다.




《James Turrell: The Return》전시정보

- 전시기간 : 2025년 6월 14일 - 9월 27일

- 장소 :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 267, 페이스갤러리 (1-3층)

- 요금 : 무료(온라인 사전 예약 필수)

- 예약사이트 : https://booking.naver.com/booking/12/bizes/1367749

- 소요 시간 : 회차당 최대 60분

- 관람 인원 : 회차당 최대 20명 / 30분 간격 회차제 운영

- 운영 시간 : 매주 화-토, 오전 10시 - 오후 6시 *오후 5시 입장 마감

- 휴관일 : 매주 일요일, 월요일 및 공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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