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의 실을 엮어, 생으로 흙으로

시오타 치하루, <RETURN TO EARTH> 감상

by 김정승


전시장에 들어서면 빨간 선들이 시야를 붙잡는다. 멀리서 보면 단순한 선이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가느다란 실과 철사들이다. 수많은 선들이 서로 얽히고 엮여 응축된 덩어리를 이루고 있다.


빨간 선들은 마치 신체 안의 모세혈관처럼 직접적으로 모든 것이 보이진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감정과 에너지의 흐름을 시각화하는 듯하다.


실과 철사는 모두 무언가를 엮어 형상을 만들어내는 물리적 구조를 이룬다. 그러나 두 재료는 정서적으로 상반된 속성을 보여준다.


실은 감싸고 흡수하며, 서로를 지지하고 연대하는 따뜻한 감정을 환기시킨다. 때로는 모성애적인 품음과 회복의 에너지를 불러일으킨다.


반면 철사는 빛을 날카롭게 반사하며 단단한 긴장감과 거리감을 발산한다. 둥글게 말린 형상일지라도 그 선은 뻣뻣하고 날카로워 포용적인 인상을 주지는 않는다.


철사로 만들어진 조형물은 차갑고 단단한 긴장을 품고 있어 고통의 실체를 시각화한다. 이 형상은 끝내 무너지지 않으려는 몸의 내밀한 저항처럼 다가온다.


작품에서 동일한 조형 방식인 '선들을 엮는 행위'가 실에서는 연결과 회복의 이미지로 작용하지만 철사에서는 속박과 얽매임에 더 가깝게 다가온다. 이는 작가가 말하는 삶과 죽음, 생성과 소멸 사이의 경계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방식과도 맞닿아 있다.


얽힘은 연결이자 구속이며, 통증이자 치유일 수 있다.



선으로 그려진 인물의 형상은 그들을 둘러싼 감정과 에너지의 흐름에서 흘러나온 조각의 흔적처럼 느껴진다.


작가의 세계에서 자아는 고정된 점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뻗어나가고 다시 응축하는 생명선 같아 보인다.


질기게 얽히고 버티며 달라붙는 모습은 그 자체로 살아 있으려는 의지의 시각화다. 특히 천 위를 기어 다니는 듯한 실의 결은 유기체가 뿜어낸 생명선처럼 또렷하게 살아 움직인다.


그 뻗어나감은 생명 그 자체와 닮아 있다. 캔버스를 끈질기게 붙잡고 있는 실은 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집요함과도 닮았다.


실의 한 획은 날카로운 직진이지만, 엮이고 얽히다 보면 곡선을 이루고, 곡선은 줄기를 만들고, 줄기는 흐름이 되어


마침내 무언가를 품는 공간이 되거나 흘려보내는 길이 되기도 한다.


서로 엮인 이 선들이 인간을 꼭두각시처럼 이끄는 것만 같지만, 때로는 인간도 그것을 온 힘을 다해 휘두르며 휘청이듯 방향을 정한다.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얽매임 보다는 흔들리는 삶 속에서 스스로를 지탱하며 타인과 연대하는 형식과 닮은 듯 하다.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원형의 형상은 고통의 기원을 연상시킨다.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처럼 수축하면서도 주변으로 뻗어나가는 선들은 별자리와 같은 생명의 가능성을 뿌린다.


파괴의 중심에서는 오히려 창조가 잉태된다.

고통의 흔적이 아이러니하게도 생의 동력이 되는 순간이다.


마지막 방에서 만난 검정 실의 산들은 우주의 저편에서 날아온 입자들이 흙을 향해 조심스레 손을 뻗는 듯한 풍경 같았다.


실 사이를 걷다 보면 늘어진 실이 머리를 스친다. 그 실은 관람자를 중앙의 흙으로 인도하는 영혼의 통로처럼 느껴진다.


수많은 이들이 각자의 머리로 실을 맞댄 채 함께 서 있다면, 그 풍경은 어떤 공동체의 초상일까.


아래로 내려앉은 실들은 생명을 품을 듯한 주머니처럼 보이지만, 결국 다시 흙으로 돌아가 사라질 운명을 품고 있다.


시오타 치하루는 실이라는 매개를 통해 우리가 맺고 있는 모든 연결을 직조한다. 그 연결은 단절의 순간을 지나야 비로소 새로운 형태로 태어날 수 있다. 그렇기에 실들은 끊어질 듯 이어지고, 휘몰아치다가도 고요히 엮인다.


<RETURN TO EARTH>는 그 고요 속에서 삶이 다시 엮이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시오타 치하루(Shiota Chiharu), <RETURN TO EARTH> 전시정보

- 전시기간 : 2025년 7월 25일 - 9월 7일

- 장소 : 가나아트센터 (서울 종로구 평창동)

- 입장료 : 5,000원

- 운영 시간 : 화요일 ~ 일요일 10:00 ~ 19:00 (월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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