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조각의 기억
어머니의 장례식, 서로 다른 이유로 형제는 울지 않았다.
순이는 마흔한 살에 눈을 감았다.
스물한 살과 열세 살 형제를 세상에 남긴 채.
“정호형. 엄마가 돌아가셨데.”
사촌이 출입문 앞에 갑자기 나타나 말했다.
바닥에 앉아 설거지를 하던 정호는 손을 멈췄다.
고개를 출입구 쪽으로 돌렸다.
눈썹을 가운데로 모으며 외가 쪽 사촌동생을 쳐다보았다.
“응?”
정호는 천천히 일어서며 고개를 약간 내밀며 물었다.
“형, 엄마가 죽었다고, 형 데리고 오래.”
‘엄마’와 ‘죽었다’는 단어는 정호의 머릿속에서
갈 곳을 찾지 못해 한참을 맴돌았다.
사촌이 왜 자신에게 그걸 전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잠시 부엌에는 손에 쥔 수세미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만이 들렸다.
부엌에서 단칸방 문을 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데요.”
아버지는 누워있었다.
작은 부엌에 맞닿은 창호 미닫이 방문은
이미 전처의 소식을 아버지에게 전했다.
아버지의 눈물이 귀를 타고 흘러, 베개를 가만히 적셨다.
아버지는 오른손으로 보호대를 한 허리를 조심히 부축하고
왼손으로 바닥을 밀며 일어나 앉았다.
꽁초에서 모은 담배가루를 신문지에 말았다.
성냥불을 붙이자 담뱃불이 확 타오르더니,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사라질 거면, 제발 잘 살기라도 했어야지…”
아버지는 한숨을 쉬며 나직이 말했다.
코를 타고 흐른 눈물은 입에 문 담배를 적셨다.
정호는 아버지의 눈물을 이해할 순 없었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 조그만 턱으로 모여 떨어졌다.
앉은뱅이책상 위 라디오에서는
88 장애인올림픽 개막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세계의 모든 장애자에겐 용기와 희망을,
온 인류에겐 사랑과 이해를 심어주는 뜻깊은 대회가…
정호는 개회사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장애자라는 단어는 선명히 남았다.
그 순간, 집을 나간 두호형이 무척 그리웠다.
장례를 치르러 장흥에 간다는 외가 식구들이 사촌의 집에 모여 있었다.
가는 길에 학교 친구 행기네 집에 들렀다.
“엄마가 돌아가셨어. 학교에 전해줘.”
‘엄마’라는 말이 입에서 나오는 순간,
오래된 겨울 아침이 떠올랐다.
정호의 국민학교 1학년 첫겨울방학, 어느 날 아침이었다.
“형이랑 놀러 가자.”
중학생인 두호가 정호에게 말헀다.
할머니와 아버지는 일터로 출근하고 단 둘만 있었다.
두호는 정호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빨간 볼의 하얀 각질에 바셀린을 발랐다.
갈라져 딱지가 앉은 손등도 꼼꼼히 챙겼다.
나일론 옷장에서 모자가 달린 외투를 꺼내어 입혔다.
벙어리장갑을 끼워주고 함께 집을 나섰다.
형제는 평화당 앞에서 멈췄다.
평화당은 여수시내에 있는 고급 제과점이었다.
두호는 쇼윈도에 눈을 가까이 대고 안을 살폈다.
“잠시만 여기 있자.”
정호는 달콤한 냄새에 끌려 진열된 빵과 과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림으로 보던 버터크림 케이크의 화려한 꽃모양을 유심이 쳐다보았다.
“두호야, 오래 기다렸어? 정호야…”
정호는 낯선 음성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고개를 돌렸다.
곱게 차려입은 30대 중반의 여인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커다란 눈에 눈물이 살짝 맺힌 채 아름다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정호는 자신도 모르게 형의 뒤로 몸을 약간 숨겼다.
“정호야, 엄마야.”
두호형이 말했다. 정호는 왠지 모르게 가슴이 빨리 뛰었다.
“안녕하세요.”
정호는 예의 바르게 허리를 숙이며 엄마에게 인사했다.
조용한 클래식 음악, 반짝이는 테이블과 의자.
고급스러운 제과점 안은 정호에게 낯선 세상이었다.
순이는 정호를 유리 진열장으로 데리고 가 먹고 싶은 것을 고르라 했다.
정호는 먹고 싶은 것들이 많았지만 붙어 있는 가격표를 보고 망설였다.
그리고 진열장 넘어 종업원의 단정한 차림에 괜히 주눅이 들었다.
결국 어머니가 빵과 제과를 고루 주문했다.
빵과 따뜻한 우유가 테이블에 위에 놓였다.
“정호야, 먹어.”
건너편에 앉은 순이가 정호에게 말했다.
정호는 두호형을 쳐다봤다.
형은 고개를 끄덕이며 크림빵을 하나 집어 정호에게 주었다.
정호는 잠시 망설이며 빵을 두 손으로 가만히 쥐었다.
그리고 어머니를 짧게 흘깃 보고 빵을 베어 물었다.
처음 겪는 단맛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입을 다물고 조용히 턱을 오물거렸다.
하얀 크림이 입술 가장자리에 남았다.
고개를 약간 숙인 채 혀로 입가장자리를 핥았다.
눈만 살짝 들어 어머니를 몰래 보았다.
낯선 얼굴이 부끄러워 시선을 피했지만,
아름다움에 자꾸 눈이 끌렸다.
“정호야, 엄마 기억 안 나?”
순이가 정호에게 우유잔을 건네며 말했다.
정호는 ‘엄마’라는 단어를 알고 있었다.
주변에서 흔히 듣는 단어지만 자신은 뱉지 못한 말이었다.
정호에게 엄마는 얼굴을 갖지 못한 단어였다.
어머니는 정호가 젖을 떼기도 전에 집을 나갔다.
네 살 무렵 돌아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나갔다.
그 후 아버지는 어머니가 자식들을 만나지 못하게 했다.
어머니는 정호의 의식에 작은 조각 하나 남기지 못했다.
엄마의 질문에 정호는 뭔가 잘못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얼굴이 붉어졌고 금방이라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빵을 쥔 채 손을 가만히 무릎에 올리고 고개를 숙였다.
그런 정호를 보자 두호의 가슴에 뜨거운 것이 휙 스치고 지나갔다.
자신과 같은 엄마를 가졌지만 엄마가 없는 정호.
두호는 정호의 손목을 잡고 엄지로 천천히 쓰다듬었다.
“엄마, 정호가 동물을 너무 좋아해요.
얼마 전엔 꼬랑에서 갓난 쥐새끼를 주어왔어요.
물에 젖어서 기어 다니는 게 불쌍해서 데려왔다고.
정호가 서랍에 수건을 깔아 집이라고 만들어주고,
저녁에 꺼내 보여주는데 할머니가 기겁을 하고 놀래서.
하하하…”
두호는 정호에게 당신의 기억을 더듬는 엄마가 안쓰러웠다.
어머니는 정호가 자라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정호가 말을 배우기 시작할 네 살 무렵 다시 떠난 뒤 돌아오지 못했다.
두호에겐 정호가 그때가 가장 예쁠 때였다.
엉뚱한 질문을 자주 해 귀찮기도 했다.
하지만 귀여운 말실수는 웃음이 나오게 했고,
골똘히 단어를 골라가며 자기 생각을 말할 때는 사랑스러웠다.
자신을 형이라 부르며 다리에 매달려 올려볼 때는
정호 이마의 얇은 솜털까지 귀여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호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어머니가 모른다는 게 속상했다.
“정호가 똑똑해요.
장기를 가르쳐 줬더니 3~4학년 애들도 이겨먹어요.
그리고 시키지 않아도 아침에 이불도 딱딱 게고…”
두호는 시간이 쫓기듯 목소리를 높여 빠르게 말을 이어갔다.
어머니에게 정호에 대해 모든 걸 알려주고 싶었다.
“동생 잘 돌보고,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어머니는 두호에게 말했다.
그리고 순이는 정호 앞에 쭈그려 앉았다.
정호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바라보았다.
자라온 시간과 자라 갈 시간을 모두 읽어내려는 듯,
오랫동안 지긋이 보았다.
정호는 엄마와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하지만 떨리는 손을 통해 엄마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정호는 자신도 모르게 어머니 손위에 자신의 손을 포개었다.
어머니는 정호를 끌어안았다. 고운 분냄새가 일었다.
두호는 곁에서 등을 돌리고 입으로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정호는 어머니에게 안긴 채 손을 뻗어 형의 손을 잡았다.
두호는 정호의 손을 꽈악 쥐었다.
엄마와 형의 눈물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이 슬퍼하고 있다는 것은 알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호는 형이 슬프면 자신도 슬펐다.
까닭 모를 서러움에 예쁜 얼굴이 구겨지며 눈물이 흘렀다.
“엄마랑 또 보자.”
“네, 어…”
이유는 모르지만 엄마라 불러 드리면 위로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정호는 끝내 낯선 단어를 내뱉지 못했다.
형제가 길모서리를 꺾을 때까지 어머니는 제과점 앞에 서있었다.
형은 모서리를 꺾기 전 어머니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건널목에서 잠시 멈추었다.
“아버지한테 엄마 만났다는 얘기 하면 안 돼. 알았지?
그러면 형 혼나는 거 알지?”
정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호형의 손에는 빵을 가득 담은 노란 봉지가 들려있었다.
정호는 순간 조금 전의 달콤한 기억에 입이 침이 고였다.
그리고 할머니에게 처음 맛본 빵들을 빨리 가져다주고 싶었다.
어머니와 두호형의 이별장면은 기억에서 금방 사라졌다.
정호는 남은 빵을 먹을 생각에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정호에게 어머니와의 첫 만남은 달콤한 빵으로 남았다.
순이는 탐진강을 끼고 있는 장흥 시골마을에서 눈을 감았다.
죽기 6개월 전 간암 판정을 받았다.
그녀는 손을 쓸 틈도 없이 빠르게 약해졌다.
누군가 부산 신발공장에 있는 두호에게 소식을 알렸다.
두호는 장흥으로 와서 어머니의 병간호를 했다.
정호는 엄마, 죽음, 외가, 장흥 등 모든 게 낯설었다.
하지만 형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에 마음이 부풀었다.
정호는 3년 동안 형을 만나지 못했다.
두호는 고등학교 1학년 때 학비가 없어 중퇴했다.
그리고 부산에 일자리를 얻어 가출을 하였다.
정호는 어른들을 따라 어머니 집의 마당으로 들어섰다.
단층 양옥집의 현관 앞 전구가 켜지며 마당 한편을 비추었다.
형이 현관문을 열고 나오고 있었다.
형의 삐뚠 걸음을 한눈에 알아본 정호는 자신도 모르게 형을 부르며 뛰어갔다.
두호도 기대하지 않았던 정호의 목소리를 향해 빠르게 걸었다.
정호는 형에게 안겼다.
두호에게 정호를 다시 안은 건,
온통 아픔이었던 어머니의 죽음에서 유일한 기쁨이었다.
어른들은 마당에서 장례식 준비로 분주했다.
두호는 정호를 데리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을 지나 안방으로 들어갔다.
두호는 불을 켜지 않았다.
안방 창으로 스며든 차가운 달빛이 방안을 비추고 있었다.
큰 탁자 위에 어머니가 누워있었다.
두호는 정호와 함께 그 앞에 섰다.
“정호야, 엄마야.”
어머니는 고요했다.
푸른 달빛에 물든 어머니의 얼굴은 낯설었지만 아름다웠다.
정호는 문득 달빛에 하늘을 오르는 선녀가 떠올랐다.
난생처음 사체를 보았지만 작은 두려움도 생기지 않았다.
자신도 모르게 손을 내밀어 어머니의 손등을 감쌌다.
순간 얼음처럼 차가운 손에 정호는 숨을 멈추었다.
그리고 뭔가 차가운 것이 가슴을 할퀴고 지나갔다.
손을 잠시 움츠렸지만, 이내 다시 지긋이 무게를 실어 자신의 손을 어머니의 손에 포개었다.
자신의 온기로 어머니를 녹이려는 듯 조심스럽게 어머니의 손등을 더듬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정호에게 어떠한 따뜻함도 남기지 못했고,
그가 이해하지 못할 차가움만 남겼다.
정호에게 어머니와의 두 번째 만남은 차가운 달빛으로 남았다.
“아이고 네가 정호냐? 이 이쁜 것을 두고 어찌 먼저 갔을까?”
낯선 어른들의 동정에 적절한 슬픈 얼굴을 그릴 수 있게 되자 장례식이 끝이 났다.
어머니와 가까운 친지분들 몇이 남아 장례식 정리를 도왔다.
천막을 해체하고 돗자리를 걷고 술병들을 정리했다.
두호는 어머니가 병중에 입던 옷 몇 벌과 간호할 때 사용했던 수건들을 들고 나왔다.
“형이랑 놀러 가자.”
집 앞 백 미터쯤에 탐진강이 있었다.
강둑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니 강이 넓어지며 깊고 잔잔해졌다.
강둑에서 강으로 내려가는 좁은 길을 내려가니 강으로 향한 작은 공간이 있었다.
“어머니가 걸을 수 있을 때 여기 매일 왔어.
낚시도 하고 통발도 던져두고 책도 읽고 이야기도 하고…
어머니가 너 많이 보고 싶어 했어.”
두호는 불을 피웠다.
들고 온 어머니의 옷과 수건을 하나씩 불 속에 던졌다.
그것들은 불꽃을 품었다 천천히 말라갔다.
팔에 둘렀던 자신과 동생의 상장을 풀어
재로 변해가는 어머니의 옷 위로 떨구었다.
상장은 불길에 닿자 고통을 느끼듯 뒤틀렸다.
사그라드는 상장을 바라보던 두호는
갑자기 울음이 터졌다.
장례식 내내 참았던 눈물이었다.
두 손을 꽉 쥐고, 턱을 꾹 물었지만,
참았던 것들은 확 타올라 끝내 터져 나왔다.
말로 붙잡을 수 없는 진통이었다.
입술을 깨물었고, 이마를 떨었고, 숨을 삼켰다.
정호는 작은 어깨로 형을 감싸 안았다.
어느새 자라 형을 안을 수 있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불은 천천히 꺼져갔다.
부드러운 바람이 재를 강으로 데려가 가라앉혔다.
형제는 나란히 앉아 강을 바라보았다.
남서쪽 용두봉 쪽으로 해가 져가고 있었다.
강물 위에 퍼진 노란 윤슬이 잔잔하게 반짝였다.
물속에 잠겨 있던 통발이 두호의 눈에 들어왔다.
며칠째 잊고 있던 통발이었다.
걷어 올리자 물고기 몇 마리가 뒤척였다.
손바닥만 한 붕어 두 마리와 손가락만 한 붕어 두 마리.
정호는 물고기들을 조심히 내려 보았다.
두호는 말없이 고기를 바라보다 통발을 풀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고기들을 하나씩 물로 밀어냈다.
고기들은 물살을 타고 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정호야,”
두호가 조용히 말했다.
“언젠가 우리도 네 식구가 돼서,
평화당 가서 팥빙수 먹고, 오동도에서 사진 찍고,
돌산대교 아래에서 회 한 접시 먹는 날이 올 줄 알았어.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을까.”
정호는 고기들이 흘러간 물살을 대답 없이 바라보았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두호와 정호.
바라던 네 식구의 외출은 이젠 붙잡을 수 없는,
다만 흘러 보내야 하는 것들이었다.
지나온 시간 속, 마음 깊은 이야기들.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기록합니다.
매일의 삶, 지나온 기억, 그리고 작고 소중한 온기들.
이야기의 다음 장은 곧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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