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을 때리지 못한 날

결핍 속에서, 가장 따뜻한 형벌

by 따뜻한시선

국민학교 1학년 정호, 결석을 숨기기 위해 폐허가 된 터미널로 향했다.

형과 마주한 밤. 나무자는 벌이 아니라 사랑이었다.



“형이 잘못한 거야, 빨리 때려.”

두호는 느티나무에 두 손을 짚으며 정호에게 말했다.


“형, 잘못했어요.”

정호의 손에는 아버지의 목수 나무자가 들려 있었다. 팔길이만 한 그 자에는 손으로 그은 눈금들이 새겨져 있었다. 정호는 나무자 끝을 바닥에 기댄 채 쥐고 있었다. 형과 나무자를 번갈아 바라보며 훌쩍였다.




교문으로 향하는 여러 갈래의 등굣길이 합쳐질 때마다, 정호는 조금씩 더 몸을 웅크렸다.

앞서 걷는 아이들이 메고 있는, 로봇이나 공주가 그려진 단단한 가방을 흘깃 쳐다보았다.

정호는 어두운 회색의 두꺼운 캔버스 책가방을 메고 있었다. 두호형이 물려준 가방이었다.

금속 갈고리 버클이 전면에 있었다. 버클을 열면 앞쪽에는 큰 주머니가 두 개 있었고 교과서와 공책을 넣는 안쪽은 칸이 길게 나뉘어 있었다.

둥글게 각진 아래 양쪽 모서리는 도시락에서 새어 나온 김치국물의 얼룩이 검붉게 남아 있었다.


아이들은 신발주머니를 들고 있었다. 뱅뱅 돌리며 걷는 아이, 머리에 모자처럼 쓰는 아이, 멀리 던져 놓고 뛰어가는 아이, 등굣길의 활기가 하늘로 퍼졌다.

정호는 빈 두 손을 양쪽 가방끈 안으로 끼우며 고개를 숙였다.


학교 건물 입구는 신발을 갈아 신는 학생들로 북적였다. 아이들은 실내로 들어서기 전, 신발주머니에서 실내화를 꺼내 바닥에 툭 던졌다.

실내화로 갈아 신은 뒤, 몸을 구부려 신고 왔던 신발을 주머니에 넣었다.

모두가 비슷한 동작을 반복하자, 입구 앞은 잠시 막히곤 했다.

정호는 그 짧은 순간이, 매를 기다리며 줄을 서는 것처럼 긴장되었다.

모두가 하는 의식을 건너뛰고, 실내화 없이 들어갈 때 의아하게 쳐다보는 아이들의 눈길이 견디기 힘들었다.

그는 발걸음을 돌려, 천천히 학교 건물을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조회가 시작되기 직전, 마지막에 조용히 교실로 들어갔다.


2교시가 끝났다. 주번인 정호와 짝꿍은 함께 우유를 받으러 갔다.

쌓여 있는 우유상자에는 딸기우유가 섞여 있었다. 정호는 빨간색의 딸기우유 팩을 보며 침을 삼켰다.

짝꿍과 나란히 우유상자를 들고 교실로 돌아왔다. 교탁에 우유상자를 올려 두고 정호는 교실을 말없이 나왔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참에서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2교시 후의 쉬는 시간은 약간 긴 편이었다.

‘퍽’하는 소리가 계단참 아래 입구에서 들렸다. 사내아이 서너 명이 모여 우유팩을 발로 밟아 터트리고 있었다.

한 아이는 먹지도 않은 새 우유팩을 밟았다. 하얀 우유가 방사형으로 터지며 바닥을 적셨다.

정호는 눈을 찡그리며 창에서 약간 물러났다.

멀리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이 일으킨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교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자 짝꿍인 우성이가 우유를 아래로 내밀었다.

“반 남았어. 너 마셔”

정호는 얼굴이 붉어졌다. 우성이가 내민 우유를 멋쩍게 가만히 바라만 보았다.


그러자 우성이는 말없이 자신이 마셨던 입구를 닫고 우유팩의 반대쪽을 뜯어 열었다. 정호에게 다시 건네며 조용히 말했다.

“배불러서. 여기로 마셔. 깨끗해.”


4교시 미술수업이 시작되자, 아이들은 분주하게 수업 준비물을 꺼냈다.

학생들은 몇 가지 색상의 큰 도화지를 책상에 깔았다. 그리고 알록달록한 수수깡, 가위, 목공풀 등을 올렸다. 소란스러운 교실 풍경에서 정호만이 멈춰 있었다. 허벅지 위에 깍지 낀 양손을 내려다보았다.

우성이는 자신의 도화지 두 장중 아래장을 빼내 정호 책상으로 옮겼다.

그리고 두 책상이 맞닿아 있는 경계 위에 수수깡, 가위, 목공풀을 두었다.

정호는 우성의 손끝만 바라봤다.

우성은 왼편으로 고개를 돌려 조용히 말했다.

“우리 뭐 만들까?”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렸다.

“자 여기까지 하고, 내일까지 환경미화비랑 방위성금 안 낸 사람 가져오고…”


선생님은 칠판 끝을 흘끗 보고 정호에게 눈을 돌렸다. 정호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음… 오늘 수업 마치자. 반장!”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은 청소를 시작했다. 주번인 정호와 우성이는 교탁과 선생님 책상을 청소했다. 그리고 칠판을 닦기 시작했다.

칠판 왼쪽 아래에는 분필로 ‘환경미화비 X : 15’, '방위성금 X : 15’가 두 줄로 적혀 있었다.

우성이는 팔을 길게 뻗어 칠판을 위아래 닦으며 왼쪽으로 이동했다. 우성은 숫자 15를 보자 오른손을 칠판에 붙이고 든 채로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16번인 우성은 지우개로 숫자 15를 쓱 내리며 닦았다.

숫자 '15’는 희미하게 남았다.

정호의 번호였다.




2학기가 시작되었다. 우성은 조회 시간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선생님은 우성이 전학을 갔다는 짧은 소식만 전했다.

정호는 우성이가 잘라 준 커다란 점보지우개의 반쪽을 가만히 만졌다. 다시는 우성이와 지우개 따먹기 놀이를 할 수 없었다.

잘린 면을 맞대며 ‘우성 정호 합체!’라고 외치며 웃던 우성이 떠올랐다.

정호는 자신의 책상에 어긋나게 맞닿아 있는, 우성의 빈 책상을 바라보았다.

그 자리에 우성이가 다시 돌아올 것 같았다. 그러고도 한동안, 정호는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지우개를 쥔 손에, 자꾸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며칠 뒤, 우유급식비 통지서를 받은 다음 날부터 정호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오전 또는 오후반이었던 정호는 학교를 다니는 척했다. 그건 아주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학교를 나설 때도 집으로 돌아왔을 때도 집은 비어 있었다. 누구에게도 “다녀오겠습니다.” 또는 “다녀왔습니다.”라고 말할 일이 없었다.

아버지는 일용직 목수로 새벽 일찍 나갔다. 할머니는 두 손자의 아침을 차려주고 쥐포공장으로 출근했다. 중학생 두호형도 할머니와 함께 집을 나섰다. 저녁이 돼서야 식구들이 모였다.

멀건 소금물에 밀가루를 띄운 수제비로 저녁을 때웠다. 그러면 하루의 피로가 몰려왔다. 식구들의 고단함은 정호의 학교생활에 관심을 가질 여유를 주지 않았다.


정호는 누구 하나 신경 쓰지 못하는데도 집에 있지 않고 제시간에 학교를 다니는 척했다.

학교가 아닌 버려진 구 시외버스터미널 폐허로 등하교를 하였다. 터미널은 확장과 함께 여수시로 진입하는 아랫길과 윗길 입구로 이전했다. 구 터미널은 건물이 무너진 체 방치된 커다란 공터였다.

쓰러져 포개진 커다란 벽체 사이로 꽤 괜찮은 공간들이 있었다. 그곳은 정호에게 눈에 띄지 않게 반나절을 충분히 보낼 수 있는 안식처가 되었다.

그곳에서 정호는 부족함으로 움츠러들거나 얼굴을 붉힐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한 달하고도 보름이 지난 어느 날 정호는 하교 시간에 맞춰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어차피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날따라 공터에서 만난 여러 친구들과 전쟁놀이를 하는 게 재미있었다.

어두워질 때까지 그 친구들과 놀이를 하였다. 하나둘 집으로 돌아갔고 정호도 집으로 향했다.

할머니가 집에 돌아왔을 때 늘 있던 정호가 없었다.

정호의 책가방도 없었다. 시간이 지나도 정호가 들어오지 않자 슬슬 걱정이 되었다.

중학생인 두호가 돌아오자 할머니는 두호와 함께 정호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정호의 동네친구에게 정호는 한 달이 넘게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는 뜻밖의 이야기를 듣는다.




“왜 학교를 안 갔어?”

아버지는 손에 나무자를 쥐고 있었다.

양반다리를 하고 있는 아버지 앞에 정호는 무릎을 꿇고 있었다.


“우유값 때문에…”

아버지는 나무자를 방바닥에 가만히 내려놓았다. 우유값도 주지 못하는 처지가 아이에게 미안했다. 이제 국민학교 1학년인 학생이 한 달이 넘게 결석해도 집에 알리지 않은 담임에게 화가 일었다.

하지만 찾아갈 염치가 없었다.


“학교 안 다니고 거짓말할 거면 나가. 니 애미한테 가.”

목소리엔 힘이 없었다. 아버지는 정호를 꾸짖을 자격이 없다고 느껴졌다.

정호는 잠시 정말 엄마라는 사람에게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정호는 젖먹이 시절 떠난 엄마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할머니는 훌쩍이는 정호를 데리고 나왔다.

부엌문 앞에서 두호가 불안하게 서성이고 있었다. 두호는 정호가 아버지에게 맞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정호는 형에게 혼이 날까 겁이 났지만 형을 보자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형에게 안기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버지는 부엌에서 소주 대병을 들고 작은방으로 건너갔다. 두호는 안방에서 나무자를 들고 나왔다.




“형 따라와.”

정호는 자를 들고 절뚝이며 걷는 형의 뒤를 따랐다.

정호는 형이 자신을 때릴 거라 여겼지만, 이상하게 무섭지 않았다.

발걸음이 향한 곳은 묘똥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돌보는 이 없이 잊힌 무덤터를 그렇게 불렀다.

그곳은 두호가 술 취한 아버지의 폭언과 매를 피하는 안식처였다.

묘똥에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었다.


두호는 알고 있었다.

작은 결핍은 아이를 서서히 안으로 접게 만든다.

위축과 부끄러움, 그리고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퍼지는, 조용한 소외감까지.

수업료, 육성회비, 방위성금, 적십자회비…
무슨 돈인지조차 모르는 사납금의 미납 명단 끝에는, 언제나 두호의 이름이 남았다.

하지만 절뚝이는 오른쪽 다리는, 누구도 미납에 대해 묻지 않게 만드는 조용한 면죄부였다.

그건, 주장하고 싶지 않은 외로움이었다.

그렇게 일찍 찾아온 무거운 감정들이, 두호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는 누구보다 먼저 철이 들었다.




어느 날, 종례가 끝난 뒤였다. 선생님은 교탁에 종이봉투 하나를 올려두고 말했다.

“두호, 잠깐 나와.”


교실은 잠깐 조용해졌다. 오른발을 약간 끌며 교탁 쪽으로 걸어갔다.

성한 왼발을 디딜 때마다 마루가 삐걱거렸다. 아이들의 시선은 곁눈으로 두호를 훑었다.

선생님이 공책과 연필이 든 봉투를 내밀었다. 두호는 두 손으로 봉투를 받으며 고개를 숙였다.

돌아서는 순간, 교탁 너머에서 선생님의 말이 들렸다.


“두호, 잘해서 학교에서 주는 거야. 부끄러워하지 마.”

두호는 대답 대신 고개를 더 깊이 숙였다.


늘 ‘이해받는 쪽’에 있으면서 또 한 번 고개를 숙이는 자신이 싫었다.

자리에 돌아와 봉투를 가방 안에 밀어 넣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도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칠판에는 ‘불우학생 지원’이라는 말이 분필로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두호는 저 작은 아이가 예전의 자신처럼, 말없이 허물어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매일 건축폐허에서 시간을 보내던 정호의 모습이 떠오르자, 가슴이 찢겼다.

그 모든 걸 미처 알아채지 못했고, 다독여주지 못했던 자신이 미웠다.

두호는 터져버릴 듯 솟구치는 감정을 막으려, 이가 부러질 만큼 입을 꽉 다물었다.


“네가 학교에 안 간 건, 너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형이 잘못한 거야. 그러니까 형을 때려. 빨리”

두호는 목젖으로 울음을 꾹 누르며 말했다. 그래도 고이는 눈물을 떨구지 않으려 하늘을 바라봤다.


정호는 나무자를 바닥에 던지고 형의 다리에 매달리며 어깨를 들썩였다.

“형, 잘못했어요. 다음부터는 절대 안 그럴게요.”

두호는 느티나무 껍질을 손톱이 부러질 듯 꽉 쥐며 부르르 떨었다.


“정호야 형이 제일 사랑하는 걸 알지?”

정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형을 올려다보았다.


“약속 딱 하나만 해. 무슨 일이 있어도 학교는 절대 빠지면 안 돼. 알았지?”

“네.”

정호가 울먹이며 또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리고 하나 더. 밥 먹고 꼭 이 닦아야 해. 알았지? 형이 없어도 이 두 개는 꼭 지켜야 해. 꼭 학교 가기, 이 닦기, 알겠지?”

정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형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두호는 정호의 머리를 가슴에 꼭 안았다.


두 아이는 말없이 울었다.

서로에게 몸을 기대고, 어둠속에서 작은 나무처럼 조용히 떨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나니,

마음 한편이 이상하게 따뜻해졌다.


정호는 고개를 들어 형을 바라보았다.

형의 눈엔 커다란 보름달이 밝게 비치고 있었다.


달빛 아래, 귀뚜라미 소리가 조용히 형제를 감싸 안았다.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기록합니다.

매일의 삶, 지나온 기억, 그리고 작고 소중한 온기들.

이야기의 다음 장은 곧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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