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단팥빵

굶주림 대신, 사랑으로 건넨 단팥빵.

by 따뜻한시선

쥐포를 자르던 겨울 오후,

할머니 손목에 발라드리던 안티푸라민 냄새와 함께 떠오른 단팥빵 이야기.



쥐포를 자르다 할머니는 손목을 돌리며 옅은 신음을 내었다.

“할머니! 안티푸라민?”

정호는 웃는 간호사 얼굴이 그려진 연고 뚜껑을 익숙하게 돌려 열었다.

금속용기 안쪽 모서리에 남은 연고를 손가락을 세워 퍼낸 뒤, 목장갑과 소매 사이를 벌려 할머니의 손목에 작은 손으로 약을 펴발라주었다.

시원한 향이 잠시나마 마른 비린내를 방에서 밀어냈다.


“아구 내새끼.”

할머니는 정호를 한팔로 꽈악 껴안았다.




1980년대 초반 여수는 쥐치 가공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공장에서 만들어진 쥐포는 그대로 유통되거나 채를 썰듯 잘려 양념이 되어 밑반찬으로 판매되었다.

쥐포를 자르는 일은 주부들에게 소일거리가 되었고, 정호의 동네에도 쥐포가 담긴 라면박스보다 약간 큰 종이상자가 부지런히 오르내렸다.

한 상자에는 5kg의 쥐포가 담겨 있었고, 모두 자르는 데 2~3시간 정도가 걸렸다.

한 박스를 처리하면 2,000원 정도의 수입이 생겼다.

할머니는 하루에 2~3박스를 잘랐다.

아침을 치우면 으레 날이 짧은 조경용 가위를 들고 쥐포를 자르기 시작했다.




정호의 손은 조경용 가위를 한손에 쥐기엔 아직 작았다.

쥐포를 자를 만한 힘도 부족했다.

하지만 정호는 할머니 곁에서 뭐라도 하고 싶었다.


할머니는 가끔 쥐포 하나를 반으로 접어, 일정하게 칼집을 낸 뒤 정호에게 건넸다.

정호는 쥐포 하나를 결에 따라 손으로 찢으며 한참을 씨름했다.


“할머니 또 줘!”

정호는 손을 할머니에게 내밀었다.


“벌써 다했어?”

할머니의 눈꼬리에 부드럽게 주름이 번졌다.


가위를 가만히 내려놓은 할머니는 정호의 내민 손을 잠시 바라보다,

쥐포보다 작은 손을 세월을 안은 마른 두 손으로 감쌌다.




아버지의 허리 통증이 심해지면서, 일용직 목수로 나가는 날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국민학교에 갓 입학한 정호의 값싼 학용품마저 살림에는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할머니는 쥐치 가공공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아이고 할머니 막내아들 학교 갔다 오는가?”

현주엄마가 가방을 메고 열린 대문 앞을 지나가는 정호에게 애틋하게 말을 건넸다.

현주네 마당 아상에서 현주엄마와 은철엄마가 쥐포를 자르고 있었다.


“집에 와도 할머니가 없으니까. 서운허겄다.”

은철엄마가 허리를 펴며 정호를 바라보았다.


정호는 두 손으로 가방끈을 움켜쥐고 어설프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바쁜 일이 있는 척, 발걸음을 재촉해 집으로 향했다.


아줌마들의 따뜻한 눈길이 등 뒤로 느껴졌다.

마음 한켠이 따뜻해지는 것 같으면서도,

왠지 모를 쑥스러움과 숨고 싶은 마음이 함께 떠올랐다.


“아휴 정호할머니도 짠해. 어미 없는 손주 둘 까지 키우고 있으니.”

“글게, 공장 댕김서 점심도 안묵고 손주 챙긴다고 싸가지고 오더라고.”

담너머로 들려오는 소리에 발걸음이 느려졌다.




단팥빵.

매일 공장에서 저녁 늦게 돌아온 할머니는 단팥빵을 가져와 정호에게 건네주었다.

투명한 봉지에서 빵을 꺼내 반으로 가르면 단팥의 단내가 먼저 코로 번졌다.

그리고 가른 안쪽을 먼저 베어물면 입안은 달콤함으로 가득찼다.


정호는 할머니 곁에서 빵을 먹는 그 순간이 하루 중 가장 행복했다.

하지만 그 행복이 할머니의 굶주림으로 채워졌다는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정호는 가슴 안쪽이 꾹꾹 눌리는 것 같았다.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애써 발자국 소리를 더내며 걸어갔다.




정호는 집 앞 꼬랑을 바라보며 대문 앞에 앉았다.

아무도 없는 집의 적막함이 익숙치 않아, 항상 대문 앞에 앉아 잠시 시간을 죽였다.


어제 내린 비로 늘 비린내로 탁한 꼬랑물이 맑아졌다.

산의 물줄기를 따라 생긴 생활하수로인 꼬랑은, 비온 다음날에는 작고 맑은 계곡으로 변해 있었다.

한참을 오후 빛에 반짝이는 꼬랑물 흐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자리를 툭털고 일어난 정호는, 올 봄에 새로 칠한 함석대문을 약간 들어 밀었다.

삐뚠 대문이 시멘트 바닥을 긁으며 내는 소리에 정호는 매번 소름이 돋았다.


주인집의 등줄기에 굴껍데기처럼 달라붙어 있던 정호네 셋방은,

비좁은 부엌을 따라 방 두 칸이 겨우 이어진 구조였다.


정호는 혹시 아버지가 계시나 하는 기대에 안쪽 작은 방 앞으로 갔다.

미닫이 문을 살짝 여니 두텁고 눅눅한 냄새가 새어 나왔다.

뒤안으로 붙은 작은 창으로 꿉꿉한 공기가 들어와,

벽과 천장에 엉겨 붙은 니코틴을 머금고 부엌으로 번졌다.

희미하게 신신파스의 시원한 향이 섞여 있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는 계시지 않았다.

정호는 문을 닫고 부엌에 서서 문득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버지의 허리에는 늘 신신파스가 붙어 있었다.

아버지의 허리에 파스를 붙이는 것은 정호의 몫이었다.


파스를 붙이기 전엔 항상 엎드린 아버지에게 올라 균형을 잡으며, 작은 발로 종아리와 허벅지 그리고 허리까지 밟으며 안마를 하였다.

안마를 끝내고 붙어 있던 파스를 때어내었다.

거기에는 항상 아버지의 땀과 엉겨 검게된 끈끈한 자국이 사각모양으로 남아 있었다. 정호는 그 자국을 마치 아버지의 고통을 벗겨내려는 듯 손가락으로 섬세하게 문질렀다.


벗겨낸 자국을 엄지와 검지로 둥글게 말았다. 작고 검게 둥굴어진 자국을 재털이에 버리고 아버지의 허리에 새 파스를 붙였다.


아버지에게 냉랭한 새 파스의 냄새는 고통에 대한 방어막 같았다.




정호는 부엌에서 신발을 벗고 큰방으로 들어갔다.

베개를 끼고 엎드려 이불을 등에 덮고, 『해저 2만리』를 펼쳤다.


바다괴물로 알려졌던 노틸러스호의 정체가 밝혀지고,

네모 선장이 태평양을 향해 여행을 시작할 때쯤,

정호는 스르륵 잠이 들었다.




함석대문이 열리며 우우웅 울리는 낮은 소리에 정호는 잠이 깨었다.

기대감에 귀를 향했지만 발소리는 마당을 지나 주인집으로 사라졌다.


함석철판의 진동이 사라지며 내는 얇은 쇳소리에 정호의 솜털이 곧두섰다.

담너머 가로등 빛에 방범창의 쇠꽃무늬가 방의 벽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마치 살아서 꿈틀거릴 것 같았다.


천정 가운데 매달린 형광등 손잡이는 너무 먼 거리였다.

발가락 끝이라도 이불 밖으로 비어져 나가면 그림자가 야금 먹을것 같았다.


정호는 이불을 코밑까지 당겨 덮었다.

오천리 갯가에서 할머니가 날라온 쥐치 냄새가 뭉글 새어나왔다.




정호는 눈만 내어놓고, 비에 젖어 마른 자국이 남은 천정을 바라보았다.

마른 자국에서 여러 표정의 얼굴들이 보였다.

그러다 무서운 얼굴이 보이면 하얀 미닫이 문 창호지를 흘깃 바라보았다.




그렇게 얼마쯤 지나자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부엌문이 열리며 할머니가 정호를 부르자,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호는 빠르게 할머니에게 안겼다.


“아구 내새끼.”

할머니는 정호의 머리를 가슴에 안았다.


할머니의 손목에서 안티푸라민의 시원한 향이 잠시 일었다.

옅어진 그 향은 무언가를 오래 참고 견디며 희생한 사람에게 베인 인내 같았다.


정호는 새 비린내를 안고 돌아온 할머니를 꽈악 안았다.

갑자기 한층 더 악을 쓰며 울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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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기록합니다.

매일의 삶, 지나온 기억, 그리고 작고 소중한 온기들.

이야기의 다음 장은 곧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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