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숨어서 울고 있었다.
졸업식이 있었다.
혼자였지만, 혼자가 아니었던 날.
“형, 오늘은 학교 갔다 언제 와?"
정호가 두호의 다리를 붙잡고 올려다보았다.
"오늘은 금방 올 거야. 졸업식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이야."
두호는 정호의 머리를 헝클며 대답했다.
두호는 다리에 매달린 동생을 세 걸음도 안 되는 거리의 방문까지 끌고 갔다. 정호는 아침마다 등교하는 형의 성하지 않은 오른쪽 다리에 매달려 끌려가는 장난을 좋아했다. 다섯 살인 정호는 두호에게 어머니가 남긴 큰 선물이었다.
두호는 국민학교 졸업식을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다.
할머니는 손주들 끼니 챙기는 것 외엔 세상물정에 어두웠다. 그저 손주들 굶기지 않으려는 노력만으로도 하루가 바빴다. 두호의 소풍이니 체육대회니 하는 행사에 신경 쓸 여력은 없었다.
두호가 소풍이나 체육대회를 한다고 하면 이웃집에서 천 원을 빌려, 달걀을 삶고 사이다와 빵을 사서 몇백 원과 함께 아침에 챙겨주었다. 졸업식이라고 말하면 또 돈을 꾸러 가야 할 것이고, 두호는 할머니가 현주 엄마에게, 수정이 할머니에게 돈을 꾸러 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는 목수였다. 간혹 일당을 받아 외지에서 일을 했다. 며칠 일을 하고 돌아오면 대개는 외상 술값을 갚고, 남은 돈을 할머니에게 건넸다.
일이 없을 땐 매일같이 술에 취해 돌아왔다. 술에 취한 날이면 으레 동네입구부터 정호의 이름을 목청껏 불러댔고, 집에 들어와선 두호에게 집을 나간 어머니의 험담을 쏟아냈다.
두호가 견디다 못해 눈에 날을 세우면 아버지의 손이 어김없이 올라갔다. 두호는 이를 악물고 그 손을 막지도, 피하지도 않았다. 그런 태도는 오히려 아버지를 더욱 사납게 만들었다. 그러면 할머니가 두호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런 일들이 잦아지자 두호는 술에 취한 아버지가 정호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집을 나섰다. 발걸음이 향한 곳은 묘똥이었다. 동네 아래, 돌보는 이 없어 평평해진 무덤들이 모여 있는 곳.
아버지가 잠든 후, 할머니가 두호를 데리러 그곳까지 내려왔다. 어두워지면 누구도 찾지 않는 조용한 묘똥은, 두호에게 가장 마음 편한 곳이었다.
졸업식의 꽃다발, 기념사진, 외식 같은 건 두호에겐 없는 이야기였다.
어머니는 두호가 졸업식을 혼자 치를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다. 멀리 서라도 숨어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에 학교로 향했다.
교문 안쪽, 수위실 뒤편에 몸을 숨긴 채 꽃다발을 꼭 쥐고 서 있었다. 혹시나 두호 아버지가 나타날까 주변을 살폈다. 그가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아이 앞에서 헤어진 부모가 서로 언성을 높이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1년 전, 아빠는 술에 취해 돌아왔고 엄마는 또다시 잔소리를 퍼부었다. 그날따라 아빠의 손찌검은 더 거칠었다. 그는 엄마를 커다란 붉은 물통 안에 집어넣고 마구 때렸다.
엄마의 비명이 점점 약해질수록, 두호의 초점 없이 커져 있던 눈은 서서히 날카로워졌다. 그는 절뚝이는 다리로 아빠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아빠가 가볍게 밀치자 두호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두호는 부엌에서 날카로운 것을 들고 다시 달려들었다.
그 순간, 두호는 처음으로 아빠가 아닌 '아버지'를 향해 날을 세웠다. 또다시 달려드는 아들을 손쉽게 떨쳐내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잠시 멈칫했다.
두호의 눈빛이, 금속보다 깊이 아버지를 찔렀다. 그리고 이내, 아버지는 한동안 두호를 바라보다, 텅 빈 눈으로 발을 들어 올렸다.
어머니는 물통에서 기어 나와 두호를 감싸 안고, 아버지의 발길질을 대신 받았다.
그 품 안에서 두호는 어렴풋이 알았다. 이제 '엄마'는 '어머니'였다. 자신이 품어야 할 하나의 삶이라는 것을.
그날 이후, 어머니는 영영 집을 떠났다.
두호가 돌을 막 지났을 때, 순이는 남편 창무와의 갈등 끝에 두호를 데리고 집을 처음 나왔다. 그리고 아들과 단 둘의 새로운 삶을 준비했다.
집과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어린 두호를 잠시 친정에 맡겼다. 하지만 자리를 잡기까지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그사이 두호는 지독한 소아마비에 걸렸다. 증상은 심했고, 친정에서도 감당이 어려웠다. 결국 두호는 친할머니에게 맡겨졌다.
창무와 할머니는 치료를 위해 애썼지만, 두호의 오른쪽 다리는 결국 불편하게 남았다.
돌아온 순이는 두호에 대한 자책으로 다시 창무와 살기 시작했다. 두호가 아버지에게 날을 들기 전까지는.
졸업식장. 상장 수여 시간이 되었고 두호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순이는 몸을 숨긴 채 두호를 찾았다. 절뚝이며 교단으로 오르는 두호를 보자 목이 메었다.
"최우수상 김두호. 위 학생은 6년 동안 본교에 재학하면서..."
삐이이이잉— 스피커가 울부짖었다.
자랑스러워야 할 순간, 두호는 혼자였다.
"... 타의 모범이 되었으므로 이에 최우수상을 수여함. 1982년 2월..."
두호는 수여식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 자리를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이상으로 졸업식을 마치겠습니다. 졸업을 축하합니다."
사회자의 마지막 말과 함께, 조용했던 운동장이 꿈틀거렸다. 반듯한 줄을 서 있던 졸업생들 곁으로 하나둘 가족들이 다가왔다. 손과 품이 따뜻하게 섞였다.
두호는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누구를 찾는 척하며 조용히 교문 쪽으로 움직였다. 순이는 그 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위아래로 크게 흔들리는 두호의 절뚝거림이 눈에 더 잘 띄었다.
운동장을 벗어나려던 순간,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호야..."
두호는 순간적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어머니에게 빠르게 다가갔다.
남은 조화를 떨이하던 꽃다발 노점, 솜사탕 리어카, 풍선인형과 군것질 노점들 사이로, 두호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서둘러 빠져나왔다.
"졸업 기념, 한 컷!"
카메라 아저씨의 외침이 멀어졌다.
서정시장 안쪽, 오래된 중국집에 들어서자 어머니는 조용히 손을 내려다보았다.
조금 전, 졸업식장 밖에서 자신을 이끌던 아들의 손. 작고 여려야 할 손이 단단히 자신의 손을 쥐고 있었다.
그 손끝에 남은 것은 성장보다 먼저 찾아온 책임감이었다.
아들을 따라 걷던 짧은 순간, 어머니는 보호받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감정이 낯설고, 아팠다. 그 아이가 누군가를 지켜야 한다고 느끼는 마음이, 너무도 빨랐기 때문이다.
탕수육과 짜장면이 한참을 지나 식탁 위에 놓였다.
두호는 젓가락을 들다 말고 잠시 망설였다.
"정호... 가져다주게, 만두 하나만 사주세요."
어머니는 순간 숨을 멈췄다. 주체하지 못할 것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자신이 주인공이어야 할 날에, 동생을 먼저 떠올리는 아이. 그게 모두, 자신 때문이라는 생각. 그리고 정호의 얼굴이 떠올랐다.
서글픔과 미안함, 부끄러움과 대견함이 한꺼번에 치밀었지만, 애써 누르며 대답했다.
"응. 그러자."
마치 함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처럼.
오른쪽 다리가 땅을 디딜 때마다 두호는 깊게 절뚝였다. 절뚝임에 맞춰 흔들리는 검은 비닐봉지를 그는 조심스레 왼손으로 고쳐 들었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상장을 말아 담은 케이스를 쥐었다.
봉지 속엔 정호를 위한 만두와 반쯤 남은 탕수육이 담겨 있었다.
그 순간, 두호의 입가엔 아주 작고 단단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정호가 기다리는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기록합니다.
매일의 삶, 지나온 기억, 그리고 작고 소중한 온기들.
이야기의 다음 장은 곧 찾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