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이후 치유의 글쓰기 (1)
교통사고의 기록
너무 끔찍한 기억이어서 떠올리기 싫지만, 잊지 않기 위해 써놓는다.
그 날은 너무나 평범하게 시작되었다. 정선에서 출발해 우리는 원주에서 아침식사를 하기로 했고, 제천을 지나고 있었다.
국도 1차선을 달리다가 제천 IC로 빠졌어야 했음을 뒤늦게 발견하고, 1차선부터 IC로 빠지는 3차선으로 무리하게 차를 틀었다. 아주 잠깐의 순간에 나도 ‘너무 늦었는데...’ 싶었지만, 이미 순간의 판단은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고 있었다.
소리는 ‘딱’ 소리에 가까웠는데, 아마 에어백 터지는 소리였던 것 같다.
눈을 뜨니 내 차 앞의 본네트 부분이 찌그러져 있었고, 에어백이 보였다. 조수석 유리는 깨져있었다. 차가 살짝 뒤로 밀렸다가 다시 앞으로 들이받았다. 나는 뒷차가 와서 또 들이받은 줄 알았다. 뒤를 돌아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매캐한 연기 같은 것이 공조기로 흘러나오는 듯 차 안에 차기 시작했고, 이상한 냄새도 났다.
자동으로 구조 전화가 연결됐다.
“사고 나셨습니까? 괜찮으세요? 많이 다치셨어요? 구급차 불러드릴까요?”
여자 상담사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나는 물어보는 질문에 모두 “네”라고 대답했다.
그 사이 조수석 친구 자리 쪽 문이 열리며 아저씨가 “괜찮으세요?”라고 물었다. 뒤에 따라오던 차였던 것 같다. 친구와 내가 “네”라고 하니, “일단 얼른 내리세요, 얼른 내리세요.” 다급하게 말했다.
친구가 먼저 내렸고, 나는 “네...” 대답은 했지만 안전벨트도 풀지 않은 채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머뭇거렸다.
곧 경찰에게 전화로 차량의 위치를 알려주고 친구를 바라봤는데 친구가 “얼굴에 피가 난다”고 했다.
사이드미러에 얼굴을 비춰보니, 내 볼이 빨갛게 쓸려 있었다. 그런데 얼굴이 왜 이렇게 부어 있었을까. 순식간에 얼굴이 이렇게 부을 수 있는 걸까?
친구에게도 괜찮냐고 묻는데, 내가 내뱉는 말이 환청처럼 들렸다.
친구는 보험사에 전화를 걸었다. 나는 엄마에게 전화했다. 얼굴이 너무 뜨겁고 입술이 아파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어눌한 말투가 되었다. 나중에 들으니, 엄마는 얼굴이 다쳤다는 내 말에 얼굴이 완전히 갈린 줄 알았다고 했다. 말이 너무 어눌했기 때문에... 엄마와 통화 중에 구급차가 도착했다.
구급대원이 서 있는 우리를 둘러싸고 어떻게 다쳤는지, 괜찮은지, 얼굴 상처를 함께 가서 치료할 건지, 아니면 차량을 처리하고 따로 치료할 건지 물었다. 나는 차량을 처리하고 따로 상처를 치료하겠다고 했다. 구급차는 그럼 가보겠다고 했고, 나는 “소독이라도 하면 안 될까요?”라고 물었다. 소독약을 쓰면 착색될 수도 있으니 그대로 병원을 가라고 했다. 잠시 후 다른 구급대원이 식염수를 듬뿍 묻힌 거즈를 건네줬다. “차가우니 얼굴에 대고 있으면 진정될 거예요.”
도착한 경찰은 내게 음주 측정기를 내밀었다. 오전 10시 27분 사고였지만, 그럴 수도 있지.
그리고 구급대원과 비슷한 질문을 했다. 어쩌다가 사고가 났는지. 다친 것은 묻지 않고, 보험사를 불렀는지 확인했다. 렉카차에서 전화가 왔다. 위치를 정확히 몰라 경찰이 옆에서 안내해줬다.
경찰은 견인차를 기다리며 내 차와 사고 현장, 망가진 가드레일을 사진으로 남겼다. 다른 경찰 한 분은 경광봉을 들고 차량 흐름을 통제하고 있었다.
렉카차가 도착했다. 이 분도 어쩌다 사고가 났는지 물었고, 내 차를 견인차에 연결하기 시작했다. 사륜차라 보조바퀴를 꺼내 바퀴에 채웠는데,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는 견인을 하면 되겠는데... 우리는 어떡하지? 견인 기사님에게 물었더니 “원래는 1분만 탈 수 있는데...” 하며 우리 둘 다 태워주셨다.
제천에서 서울까지 2시간여.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뎠는지 모르겠다.
친구에게 간간히 상황을 물어보고, 침묵하며 올라왔다.
목이 너무 말랐고, 입이 바짝 탔다.
차를 내려놓을 공업사에 도착하니 아빠가 나와 계셨다.
아빠는 우황청심환을 나와 친구에게 건넸다.
우리 집 골목길 입구에는 엄마가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는 상처 난 내 얼굴을 보더니 눈물을 흘렸다.
나와 내 친구를 꼭 안아주며, “이만해서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나와 내 친구도 함게 눈물이 났다.
사고 첫날은 ‘이만해서 다행이다’라는 말을 하긴 했지만, 솔직히 와닿지 않았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지? 왜 나는 그때 무리해서 차선을 바꿨을까?
‘딱’ 하는 소리와 함께 눈을 떴던 장면이 자꾸 떠올랐다. 꿈 같았던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다른 차와 부딪히지 않아서, 다른 사람을 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 정도에서 끝났다는 것도 다행이다.
목은 좀 뻣뻣하고, 얼굴 상처는 흉터가 될 수도 있지만… 우리는 걸을 수 있었고, 집에 와서 밥을 챙겨 먹고, 커피를 한 잔 마시며 눈물 반 웃음 반으로 사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사고는 이렇게 너무나 갑자기 찾아왔다. 그날 아침에도 몰랐다.
그치만 불행 중 다행으로 우리는 큰 부상 없이, 차만 망가진 채 집으로 돌아왔다.
당분간은 좀 귀찮겠지만, 당분간 돈이 좀 나갈 테고, 보험료는 오르겠지만 돈은 또 벌면 되니까.
ChatGPT에게 물어보니 이건 중요한 전환점일 수도 있다고 한다.
이제, 좋은 일만 생기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