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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프 Jan 30. 2022

취준생은 슬퍼할 시간이 없어요 EP3

'다가오는 설날을 맞이하고, 조상님들께 작은 소망을 비느라' 편

'취준생이 무슨 명절? 그 시간에 자소서 하나라도 더 쓰는 게 낫겠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하나는 있겠지?


사실 나도 별반 다르지 않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정말 죽어라 노력해야 될까 말까 한 게 요즘 취업이니까.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는 시간들이 모두 그저 낭비라고 생각했었다. 특히, 입시를 준비했던 고등학생 때. 한 일화가 생각난다. 꽤 오래전 엄마 아들이 군 복무 중에 휴가? 외출? (대충 둘 중 하나였던 듯)를 나오게 되어 부모님이 왕복 10시간 운전을 무릅쓰고 가셨던 적이 있다. 부모님께서 같이 가지 않겠냐 권유하셨지만,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차에서 10시간 앉아서 보내느니 그 사이에 문제집 한 권을 끝내겠다.'였었다. 


하지만, 4년 (코로나로 1년 정도는 비록 한국에서 지냈지만) 동안의 유학, 그리고 타지 생활을 하며 느낀 것이 있다. 무조건 시간이 있을 때, 기회가 있을 때, 가족과 친구, 소중한 사람들과 볼 수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함께 시간을 보내자. 미국에서는 대부분 학기가 9월 초, 그리고 1월 말에 시작한다. 곧 명절이 다가오는 한국을 뒤로하고 또다시 미국으로 향하면서 '아 이번 명절도 혼자겠구나'싶은 생각이 들었었다. 그리고, 한창 시험기간을 보내다 전화가 오지 않던 시간에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면, 나를 제외한 가족들이 둘러앉은 모습이 핸드폰 너머로 보인다. 그제야 '설이구나' 혹은 '추석이구나'를 깨닫고, 반갑게 내 안부를 전한다. 시끌벅적한 모습과 그리운 음식에 스멀스멀 향수병이 차오를 때쯤, 바빠 보이니 이만 전화를 끊겠다고 말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끝으로 통화가 끝나곤 했다. 한 순간에 정적이 나를 감싸면 조금씩 묻어두었던 그리움이 한순간 폭발하곤 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무뎌지긴 했지만, 명절 때마다 내가 한국과 반대편에 있구나를 실감하는 것은 여전했다.


나이가 조금씩 들어가면서 소중한 것들의 우선순위가 엎치락뒤치락한다. 요즘은 '시간'인 것 같다. 특히, 부모님, 할머니, 그리고 주변 어른분들의 나이가 자주 체감되곤 한다. 13살 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처음으로 '죽음'에 대한 경험을 했었다. 생각보다 '죽음'이라는 것은 내 주위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었다. 그 이후부터 사서 걱정을 하지 않으려 마음 먹지만, 사람의 인생은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라 하지 않는가? 그래서 함께 있는 순간을 소중히 하려고 노력하곤 한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 하지만, 주변에 사람이 정말 없을 때만 사진을 찍곤 했다. 그리고 사진 찍히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부모님, 가족, 친구들과 함께 있는 순간이 참 행복하다 느껴지면 주저하지 않고 사진, 그리고 영상들을 찍어보았다. 또 그 속에 나의 모습을 기록하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잠이 오지 않을 때, 인생이 무기력할 때, 그리고 특히 미국과 한국을 오가는 15시간의 비행 동안 나는 그런 추억들을 즐겨 보곤 한다. 행복했던 순간들을 회상하면 내가 마치 그 시간 속에 있는 기분이 들어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함께할 순간에 다시금 힘을 내곤 했다.


나는 1분 1초가 아까운 취준생이지만, 취준생이기 이전에 한 가족의 구성원이다. 그리고 특히 시간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으로 명절에는 많은 부담과 짐을 내려놓고 가족들을 만나러 간다. 비록 코로나이기 때문에 만나는 사람들은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며 얻는 따뜻한 기운은 여전하다.


01.22.22 인생 첫 강정을 만들다.


어머니가 강정 만드는 법을 배우셨다. 잊기 전에 복습을 해야 한다며 온 가족이 강정 만들기에 나섰다. 며칠 전부터 택배가 어마 무시하게 온다 했더니, 모두 강정 재료와 준비물이었다. 두 종류의 튀밥, 명인이 만든 조청과 올리고당, 직접 산 견과류와 크렌베리, 엄청 큰 쟁반까지. 그래도 오랜만에 신나 하시는 어머니를 보니 기분은 좋았다. 귀엽기도 하고, 내가 여유가 있다면 이런 활동 같이 해 드려야 싶기도 했다.


강정 만들기는 의외로 쉬웠다. 비율에 맞게 섞은 튀밥과 부순 견과류를 따뜻한 조청과 올리고당에 버무려 약간 식히고 손으로 모양을 만들면 끝. 그런데 처음에는 요령이 없어 따뜻한 상태에서 뭉치려다 모양도 안 잡히고, 너무 크게 만들기도, 또 너무 꾹꾹 눌러서 돌덩이가 탄생되었다. 그래도 그 짧은 시간 동안 하면 할수록 노하우가 생기고, 더 나은 강정들이 만들어졌다. 


강정 만드는 과정


직접 만들어서 일 수도 있지만, 너무 맛있었다. 시중에 파는 것보다 덜 달고, 더 고소했다. 물론 몇 개는 이가 부러질 정도로 딱딱했지만. 초등학생? 중학생? 이후로 이런 활동은 처음이라서 은근히 그때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다 만들었던 3판의 강정이 몇일만에 완판 되었다. 


아마 종종 만들어 먹을 것 같다. 어쩌면 우리 집만의 설맞이 활동으로 자리 잡을지도?


01.30.22 산소를 다녀오다.


산소에서 찍은 반대편 산과 하늘


사람이 몰리는 날짜를 피해 산소를 다녀왔다.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작은 어머니를 뵙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매년 빠지지 않고 (미국에 있을 때를 제외하고) 명절 때마다 찾아갔었다.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존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시지만, 그래도 그분들을 떠올리면 가슴 한구석에서부터 '그리움'과 유사한 감정을 느끼곤 한다. 


매 명절마다 열심히, 그리고 진심을 다해 내 소망에 대해 빌곤 했다. 아기였던 시절엔 사소한 (사실 그 당시에는 너무나도 컸던) 문제에 대해서부터, 점차 커가면서는 인생에 작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중대사까지. 하지만 나는 소원을 빌 때마저도 조심스러웠다. 혹시나 내 부탁이 무례하거나 예의가 없을까 봐, 또는 너무 무리한 부탁일까 봐. 나는 마음속으로 '늘 최선을 다할 것이니 아주, 아주 약간의 운이 작용하게 도와주세요. 그렇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아요.'라고 빌었다.


나는 이미 안다. 내가 어릴 적 엄마를 찾아오셨던 스님이 '딸아이는 노력한 만큼 이루고 살 운명이라' 점 쳐주셨을 때부터, 나의 노력이 없이는 큰 행운은 오지 않을 것을. 때로는 원망스러웠다. 아무 일면식도 없는 스님의 말 한마디로 내 운명을 스스로 가둔 건 아닌가 하고. 또, 운이라는 것이 필요할 때 늘 없어서.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스님의 말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그 말 때문에 더욱 노력하고, 그로 인해 내가 일궈낸 작고 큰 일들에 대해 더욱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아무래도 계속해서 개미처럼 한평생 노력하며 살 것 같다! 그러니 조상님들, 저는 로또 같은 큰 행운 바라지 않습니다 (어차피 내 운명에는 점쳐지지 않았을 것 같으니). 혹시 듣고 계시다면, 제 운명에 결여된 운을 아주 조금만 주세요. 최선을 다해 노력할 테니, 좋은 직장에 갈 수 있도록 한 끗의 운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잘 되면 조상님 덕입니다! 


다들 행복한 설 보내세요 :) ❤


취준생은 슬퍼할 시간이 없어요

다음 편에 계속


오늘의 추천곡 LANY - If this is the last time

(원곡 링크는 아니지만, 가사 번역이 있어 선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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