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에도 이유가 있을 거예요
매일 출근하는 길이 있습니다. 가늘고 길게 흐르는 탄천을 끼고 걷다 보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출근하기 싫던 마음도 덜 괴로워집니다. 전날 밤에 늦잠을 자서 피곤한 몸도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소리를 듣다 보면 기운 하게 됩니다.
아쉬운 점이 딱 하나 있기는 했습니다. 출근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강을 한 번 건너고, 나무로 된 계단을 타고 올라가야만 합니다. 그런데 가장 아래쪽에 있는 계단 하나가 언제든 부서질 것 같아 위험해 보였습니다. 균열이 여러 방향으로 나 있어 힘이 없어 보이고 위태로워 보였습니다. 제 발을 하나 올려놓다가 무너질까 걱정되었습니다. 때문에 그 계단은 지나치고 바로 위의 계단부터 올라타곤 했지요.
오늘 새벽에 비가 꽤 내렸습니다. 강물에도 물이 많이 차올랐습니다. 다행히 비가 억수같이 내리지는 않아서 강을 어찌어찌 건널 만은 했습니다. 강을 모두 건너고서 무심코 발을 계단에 올리려고 하는 순간, 특이한 점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늘 피해 다녔던 계단 하나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유심히 살펴보았는데 계단 하나가 강물에 잠겨있었습니다. 나머지 계단들은 침수당하지 않고 무사했는데, 그 계단 하나만은 강물에 잠겨서 고생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제까지 계단을 건너면서 불편한 점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유독 그 계단 하나만이 낡고 위험한 것 같아서, 제때 제대로 보수하지 않는 것에 대해 마음이 불편하기도 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어린아이들도 많이 지나가는 계단인데, 혹여나 계단이 무너지게 되어 사람들이 다치게 된다면 많이 위험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말없이 잠겨있는 계단 하나를 보며 기존의 생각이 조금은 바뀌게 되었습니다. 오늘만큼은 저 계단이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안쓰러웠지요. 하필. 유독. 그 계단만이 상태가 안 좋았던 것은 저렇게 침수되는 것을 반복하느라 그랬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물론 우리의 안전을 담당해야 될 계단의 상태가 건강하지 못한 것은 분명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문제가 없는지 정기적으로 점검을 하고, 문제가 있다면 제때 보수를 했어야 되는 일입니다. 다만 '왜 저 계단만이 상태가 안 좋을까?'에 대한 고민을 좀 더 일찍 할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습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때로는 관절이 상합니다. 어떨 때는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지요. 살아가면서 다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몸도 마음도 언젠가는 다칠 수밖에 없는, 그런 것들입니다.
다친 것들에 대해서 무조건 미워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좀 더 온화하게 바라볼 수는 없었던 걸까요. 오늘 평소보다 허리가 아프다면, '오늘 왜 허리가 아픈 거야'라며 신경질을 내기보다는 '그동안 허리를 많이 쓰면서 고생했던 거구나'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요즘 들어 왠지 자존심이 자주 상하는 것 같다면, '내 자존심은 왜 이것밖에 안될까'라고 화를 내기보다는 '그동안 자존심이 상할 만한 일이 많았던 걸까'라고 고민을 해볼 수도 있습니다.
우울, 불안, 분노와 같은 감정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을 너무 미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마음들도 결국 우리네 마음의 일부입니다. 이들을 미워하기를 반복한다면 결국 스스로의 마음을 미워하게 되고, 더 나아가 나를 미워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너무 미워하지 말고, 그냥 적당히 관심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내 몸이 아프고, 내 마음이 아픈 것은 아마도 충분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평생 아프고 싶은 몸과 마음은 없습니다. 아프고 싶어서 아픈 것이 아닙니다. 그냥 이유가 있어서 아픈 겁니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보다 온화하게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쉬운 길은 아닐 겁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싶은 삶이 있을 텐데, 그렇게 못되도록 막는 내가 미울 수도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삶이 또 생각하기 나름인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러한 생각의 변화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내려놓는 포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수용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