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과 크게 다투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어떨 때는 그 사람이 밉고, 또 어떨 때는 자신이 밉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자신과 타인 중에 누구를 탓해야 될지 혼란스러웠던 적은 없으셨나요? 그런 고민들에서 오는 마음의 짐이 있으셨다면, 오늘 이야기할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ein)의 대상관계 이론이 도움이 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생소한 개념들이 많아 낯선 산책길일 수도 있겠지만, 끝까지 함께 걸으시면서 보다 건강한 삶이 되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을 지금 읽고 계시는 분은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얼마나 긍정적으로 느끼시나요? 아마도 읽는 분들마다 대답이 다를 겁니다. 관계에 대한 주관적인 경험들은 주변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겠지만, 그 관계를 경험하는 사람의 내면에 따라 차이가 생기기도 합니다. 이런 차이가 대상관계(object relation)의 차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대상관계란 나와 대상(타인) 간의 관계에 대한 '내면의 이미지'입니다. 인간관계에 대한 이미지가 좋은 사람, 즉 긍정적인 이미지의 대상관계가 내재된 사람은 타인을 자주 우호적으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부정적인 이미지의 대상관계를 가진 사람은 타인을 비우호적으로 경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대상관계는 어디서 오는 걸까요?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출생 후의 시점으로 가야 합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들에게 모유는 생존을 위해 중요합니다. 현재처럼 모유수유 외의 영양법이 있기 전에는 어머니의 가슴이 없으면 유아는 영양부족으로 사망할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아이는 배가 고프면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 어머니의 가슴을 찾습니다. 이때 즉각적으로 자신의 배를 채워주는 어머니의 가슴은 아이 입장에서 좋은 대상(good object)이고, 반대로 즉각적으로 수유를 해주지 않는 가슴은 나쁜 대상(bad object)입니다. 아이의 어머니 입장에서는 억울할 만한 상황이죠. 늘 끼니를 잘 챙겨주다가도 아이의 배고픔에 한번 빨리 반응하지 못했다고 나쁜 엄마가 되어버리는 거니까요. 하지만 이때의 아이는 엄마의 그런 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는 상태입니다. 아이는 그저 지금 상황이 마음에 안 들면 과거의 어머니가 보여준 좋았던 모습들은 모두 잊어버릴 뿐이라, 어머니가 좋은 대상이자 나쁜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든요.
그렇게 아이는 자신에게 모유를 주지 않는 나쁜 대상(어머니)을 보면서 원망, 분노와 같은 공격성(agression)을 느끼게 되지만, 이런 감정은 아직 생후 수개월에 불과한 아이에게 감당하기에는 버겁습니다. 그래서 아이는 자신이 느끼는 공격성을 나쁜 대상에게 내던지게 되는데, 이 과정을 투사(projection)이라고 합니다.
투사라는 개념이 상당히 중요한 방어기제들 중 하나이기에 좀 더 설명해보고자 합니다. 투사를 뜻하는 projection이 프로젝터(Projector)와 비슷하죠? 프로젝터가 원래의 공간에 저장되어 있던 이미지를 또 다른 공간으로 옮겨주듯, 투사는 자신이 가진 부정적인 부분을 타인에게 전가시키는 과정입니다. 좀 더 간결하게 표현하면 투사는 남 탓과 비슷한 단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을 듯합니다.
이제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아이는 투사(남탓)를 통해 자신의 공격성을 어머니에게 전달합니다. 이로써 아이는 감당하기 힘겨웠던 감정을 해소할 수 있었지만, 문제가 생깁니다. 아이의 입장에서는 이제 공격자가 자신이 아니라 엄마로 바뀌었거든요. 아이는 엄마가 무섭게 느껴지는 것에서 나아가, 엄마가 자신을 공격하고 박해한다고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나(아이)-대상(어머니) 간의 관계', 즉 대상관계를 멜라니 클라인은 편집-분열자리(paranoid-schizoid position)라 이름 붙였습니다. 편집-분열이란 의심이 많아 고립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를 고려하시면 의미가 좀 더 직관적으로 와닿지 않으실까 싶네요.
아이는 6개월까지는 편집-분열 자리에만 머무릅니다. 6개월이 지나면 아이는 인지적 발달을 이루면서 모유를 금방 주는 엄마나, 모유를 늦게 주는 엄마나 같은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아이는 어머니의 가슴을 볼 때면 다음과 같이 갈팡질팡하게 됩니다.
'저 가슴은 내게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었어. 그럼 지금 저 가슴을 보면서 나는 좋아하면서도 싫어해야 하는 건가?'
이렇게 한 대상에 대한 정반대의 감정을 동시에 느끼며 갈팡질팡하는 감정상태를 양가감정(ambivalence)라고 하는데요, 애증이 대표적인 양가감정 중 하나입니다. 애증의 대상을 보고 있으면 내가 저 사람을 좋아하는 건지 싫어하는 건지, 상당히 혼란스럽지 않으시던가요? 보다 성숙한 우리들도 처리가 쉽지 않은 양가감정을, 미성숙한 아이가 이를 버텨내는 것은 상당히 쉽지 않은 일입니다.
편집-분열 자리에 있던 과거의 아이는 엄마에게 마음의 상처를 받으면, 무작정 '내가 엄마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날 싫어하는 거야. 내가 아니라 엄마가 나쁜 사람이라고!'라고 투사하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달라져서 남탓만 하기에는 좀 미안해졌습니다. 알고 보니 엄마는 나쁘기만 한 사람이 아니었고, 오히려 자신을 챙겨주기도 했던 좋은 사람이였거든요.
결국 양가감정에 빠진 아이는 공격성을 투사로만 해결하지 못하게 되고 해소하지 못한 공격성을 내면에 쌓아두기 시작합니다. 이 부분에서 공격성이 무서운 점이 나오는데요, 혹시 화를 참다 보면 결국 자신에게 화가 난다라는 얘기 들어보셨을까요? 이처럼 공격성은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늘 대상을 찾아다녀서, 주변에 공격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싶으면 결국에는 자신을 공격하게 됩니다. 이번 아이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누적된 아이의 공격성은 자신에게 향하게 되고, 아이는 스스로를 원망하고 자책하면서 우울한 감정상태로 빠지게 됩니다. 이러한 대상관계를 멜라니 클라인은 우울자리(depressive position)라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