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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스한 골방 Dec 01. 2023

남탓보다는 반성이 필요해요 (2)

멜라니 클라인의 대상관계이론

  어느덧 멜라니 클라인의 두 번째 이야기로 왔습니다. 혹시나 첫 번째 글을 읽지 못하신 분이 있다면 아래 링크에서 읽고 오시는 것이, 이번 글을 읽는데 더욱 도움이 되시지 않을까 싶어요.


  https://brunch.co.kr/@warmsmallroom/4


  이전 글을 시작할 때 말씀드렸습니다. 사람들과 갈등이 있을 때 반성과 남탓, 그 사이에서 혼란감을 느끼신다면 멜라니 클라인의 이론이 도움이 되실 거라고요. 그런데 저번 글을 읽고 나서 어떻게들 느끼셨을까요. 저는 다음처럼 느끼지 않으셨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정말 도움이 되는 게 맞아?


  사실 저도 저렇게 생각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은 이론에서 시작하지 않고, 일상생활에서 생길 수 있는 갈등을 예시로 들어서 시작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나서 저번 글에서 보셨던 추상적인 개념들이 어떻게 일상에 적용될 수 있을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다음 예시를 통해 2개의 친구관계를 비교해 볼까요.

편집-분열 자리에 있는 A가 있습니다. 어느 날 A는 막역한 친구 B에게 연락이 와서 한번 만나기로 했는데요, 만나기로 한 약속당일이 되자 A의 휴대폰에 B의 전화가 걸려옵니다. A가 전화를 받았는데, 급한 일이 생겨서 미안하지만 오늘은 얼굴 보기가 힘들 것 같다고 B가 이야기하네요. 그런 B에게 A는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요?
우울 자리에 있는 C가 있습니다. 어느 날 C는 막역한 친구 D에게 연락이 와서 한번 만나기로 했는데요, 만나기로 한 약속당일이 되자 C의 휴대폰에 D의 전화가 걸려옵니다. C가 전화를 받았는데, 급한 일이 생겨서 미안하지만 오늘은 얼굴 보기가 힘들 것 같다고 D가 이야기하네요. 그런 D에게 C는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요?

 

  두 이야기가 너무 비슷하지 않냐고요? 맞아요. 정확히 보신 겁니다. A가 편집-분열 자리에 있고, C가 우울 자리에 있는 것을 제외하면 내용이 동일합니다. 하지만 앞으로의 이들의 이야기는 상당히 달라지는데요, 함께 두 이야기를 마저 지켜보시죠.

  A는 갑작스러운 약속 취소에 정신이 아득해집니다. 분명히 B가 먼저 보자고 했는데 갑작스럽게 당일에 약속취소라니! A는 B에게 배신당한 것 같아 서운하고 원망스러운 마음도 듭니다. 이제 A는 B와 함께했던 행복했던 과거들까지 의심하기 시작하고, 이번 약속도 B가 나쁜 마음을 가지고 자신을 엿먹이기 위해 계획했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A는 B가 나중에도 자신에게 악의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결국 B의 전화번호를 차단하게 됩니다.
C는 갑작스러운 약속 취소에 정신이 아득해집니다. 분명히 D가 먼저 보자고 했는데 갑작스럽게 당일에 약속취소라니! C는 D에게 배신당한 것 같아 서운하고 원망스러운 마음도 들지만, C는 D와 함께했던 행복했던 과거들을 떠올립니다. 얼마 후 C는 친한 친구를 계속 원망하는 자신이 속 좁은 못난이 같다고 생각합니다. C는 D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결국 D에게 이번 일은 어쩔 수 없으니 다음에 보자는 문자를 보냅니다.


  두 이야기를 보시면서 어떻게 느끼셨을까 궁금하네요.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들은 A와 C 중 누가 더 잘 이해되시나요? 사람들마다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멜라니 클라인의 이론에 따르자면 A보다는 C가 정신적으로 성숙한 사람입니다. A의 편집-분열 자리는 생후 6개월 전의 아이들에게도 발견될 수 있지만, C의 우울 자리는 생후 6개월 이후가 되어서야 발견될 수 있다고 보았거든요.


  멜라니 클라인은 C를 성숙한 사람으로 것일까요? 그 답은 관계지속성에 있습니다. 약속당일에 정말 급박한 일이 생겼던 B가 나중에 여유를 되찾고, 다시 A에게 연락을 한다면 어떨까요. 이미 마음을 닫고 전화차단까지 한 A가 B의 사과를 받을 수가 없겠지요. 반면 C는 D를 한 차례 이해해 주었기에, D는 좀 더 용기를 내서 C에게 사과를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되면 C도 D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고요. 그렇게 막역했던 친구관계 중, A-B는 절교를 하고 C-D는 위기를 버텨냅니다.


  그럼 어떻게 A와 C 사이에 관계지속성의 차이가 생겼을까요? 이전 편에서 '분열'이라는 단어가 고립을 의미한다고 말씀드렸던 것이 기억나시나요? 이처럼 편집-분열 자리에 위치한 사람들은 위기를 맞을 때마다 남탓(투사)를 통해 스스로를 고립시켜 갑니다. A의 사례를 통해 이 과정을 다시 살펴볼게요.


A는 B에게 배신당한 것 같아 서운하고 원망스러운 마음도 듭니다. (A→B로의 공격성 발생) 이제 A는 B와 함께했던 행복했던 과거들까지 의심하기 시작하고, 이번 약속도 B가 나쁜 마음을 가지고 자신을 엿먹이기 위해 계획했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투사를 통해 공격성의 방향이 A→B에서 B→A로 역전; A가 B를 미워하는 것인데 B가 A를 미워한다고 반대로 생각하게 됨)


  이처럼 투사를 통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원망하고 미워하는 것처럼 느끼고, 점차 고립되어 가는 A의 삶이 행복할까요? 단언컨대 아닐 겁니다. 그래서 투사는 미성숙한 방어기제로 분류됩니다. 방어기제는 쉽게 말하면 자신의 마음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 부분도 정신분석에서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그만큼 분량이 많기에 방어기제에 대해서는 나중에 기회가 될 때 자세히 다뤄볼게요.


   반면에 우울자리에 있는 C는 A와 달리, 과거의 D의 보여줬던 좋은 대상(친구)으로서의 모습을 잘 추억합니다. 따라서 친구 D를 향한 공격성을 투사하지 않고, 본인이 D를 원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며 오히려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기도 합니다. 이때 C의 마음속 세계에서는 D를 원망하는 마음과 자신을 자책(원망)하는 마음, 이 두 마음이 균형을 맞추게 됩니다. 결국 C는 D를 무조건적으로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부분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를 보일 수 있게 됩니다. C가 보여준 모습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줄로 정리할 있겠습니다.


남탓이 아닌 반성을 통해 관계를 유지하다.


  여기까지 설명을 들으셨을 이상하게 느껴지실 수도 있습니다. 잘못은 D가 했는데 왜 반성은 C가 해야 할까요? 맞습니다. 당연히 D가 반성을 해야겠지요. 급한 일이 있을 수 있었다면 미리 알려줬어야 했는데 왜 말을 못 해줬는지 등에 대해서 D가 스스로를 돌아봐야겠지요.


  하지만 여기서는 도의적, 법률적 잘못을 따지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개인의 행복을 위해 각자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알아볼 뿐입니다. 더하여 반성이라는 것은 자신의 잘못을 돌아본다는 뜻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반성은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이제 다시 한번 이 갈등상황을 되돌아본다면 어떠실까요. C가 잘못이 없다고 해서 스스로 내면을 돌아보지 않았다면, D를 향한 원망이 줄어들기 어렵지 않았을까요?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남탓이 아닌 반성이 관계유지를 위해 필요합니다. 원망, 분노와 같은 공격성이 인생에서 줄어들 수 있다면 이를 통해 가장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은, 타인이 아닌 바로 본인입니다.


   그리고 사족일 수도 있겠지만, 정신의학 자체에서도 누군가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지양되는 편이기도 합니다. 잘하고 못함을 따지려고 눈에 불을 켜고 이야기를 듣는다면, 결국 주관적 평가와 판단이 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비판단적인 자세의 경청이 중요합니다. 굳이 정신과 진료실이 아닌 갈등상황에도 이를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잘못을 따지는 판단의 세계에서 한걸음 빠져나오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고, 그리되면 나도 모르게 내면을 갉아먹고 있던 원망과 분노를 다독여줄 수 있지 않을까요.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힘은 덤입니다. 덤치고는 아주 푸짐하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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