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들은 자신만의 스트레스 대처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스트레스 대처법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스트레스 대처법이 효과가 없는 것 같아서, 혹은 스트레스 대처법이 미숙한 것 같아서 고민이 되지 않으셨나요? 이러한 고민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글이 도움 되길 바랍니다.
사실 정신의학에서도 스트레스 대처법과 유사한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방어기제입니다. 쉽게 말하면 스트레스에서 오는 불안으로부터 마음을 방어하는 방법이에요. 그래서 방어기제를 알면 스트레스 대처법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아래에 흔히 사용되는 방어기제의 종류와 예시를 나열해 보았습니다. 참고로 각 예시 끝에 괄호로 쳐둔 부분이 해당되는 방어기제의 이름입니다.
스트레스를 줬던 사건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지내요 (부정)
스트레스를 준 사람을 욕하면서 풀어요 (투사)
스트레스를 줬던 일을 완전히 잊고 평소처럼 지내요 (억압)
스트레스로 힘들어도 웃으면서 넘어가려고 해요 (유머)
스트레스 주는 생각을 잠시 멈추고, 그동안 다른 생각들을 떠올려요 (억제)
다들 한 번씩은 해보셨을 만한 방어기제 아니신가요? 조지 베일런트(George Eman Vaillant, 정신과 의사)는 방어기제의 성숙도에 따라 다음과 같이 4종류로 분류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성숙한 방어기제를 사용할수록 건강하고 행복한 삶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도 하였습니다.
1. 병리적인 방어기제 - 부정
2. 미성숙한 방어기제 - 투사
3. 신경증적 방어기제 - 억압
4. 성숙한 방어기제 - 유머, 억제
더 많은 방어기제 종류들이 있지만 분량 문제로 앞서 설명드렸던 방어기제들만 우선 분류해 보았습니다. 이름들에서 유추할 수도 있으시겠지만, 1번에서 4번으로 갈수록 성숙한 방어기제들입니다.
먼저 가장 미성숙한 단계의, 병리적인 방어기제 중 하나인 부정을 볼까요? 부정이 자주 일어날 수 있는 곳 중 하나는 처음으로 암을 진단받는 순간입니다. 그 순간에, 정신이 멍해지고 아까 전에 들었던 암 진단을 부정하게 된다고 하시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정신적으로 버티기 어려울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평소보다 성숙하지 못한 방어기제를 사용하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암과 같이 두려운 진단이 자신의 삶에 덜컥 다가온다면, 그 순간을 진심으로 웃어넘길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요? 이처럼 갑작스러운 충격에 유머와 같은 성숙한 방어기제를 사용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단은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부정을 사용하게 되는 거죠. 하지만 암 진단 사실을 지속적으로 부정한 채로 새로운 병원을 반복적으로 찾아가면 당연히 건강이 악화되겠죠? 이처럼 장기적으로 봤을 때 병리적인 방어기제는 인생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어 주의해야 합니다.
미성숙한 방어기제인 투사는 어떨까요. 투사는 쉽게 말하면 남탓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 A의 잘못으로 사람 B에게 서운한 말을 듣더라도, A는 자신이 아닌 B가 잘못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는 거지요. 이렇게 투사를 거치면 A는 잘못이 없는 사람이 되어서 마음이 편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결국 이 사람의 주변에는 B와 같이 잘못이 있는 사람들만 가득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럼 주변에 좋은 사람이 없으니 당연히 불행에 가까워지겠지요. 그래서 투사는 성숙하지 못한, 미성숙한 방어기제로 분류됩니다. 투사에 대해서 더 궁금하신 분은 제가 이전에 작성한 멜라니 클라인 편을 보시면 더 도움이 되실 거예요. 링크는 바로 아래에 있습니다.
다음으로 신경증적인 방어기제인 억압을 보겠습니다. 억압은 쉽게 말하면 힘들었던 경험을 완전히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비교가 쉬우시도록 투사에서 썼던 예시를 그대로 써볼게요. A의 잘못으로 B에게 서운한 말을 듣습니다. 당연히 A는 서운한 감정이 들 수도 있겠지만, 이 감정이 있으면 B와 함께 지낼 때 불편한 마음이 계속 들 겁니다. 그래서 B에게 들었던 서운한 말뿐만 아니라, 서운했던 감정도 지워버립니다. 마음이 불편했던 기억들을 통째로 무의식 속으로 넣어버리는(망각하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A는 B를 원망하는 마음이 없어진 채로 서로 잘 지낼 수 있겠죠. 그래서 억압은 투사보다는 한 단계 높은 신경증적인 방어기제에 위치합니다. 그런데 만약 A가 B에게 속상한 일이 다시 터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A가 B에게 서운했던 기억을 지워버렸다고 하더라도, 무의식 속의 힘들었던 기억은 A가 B를 더욱 원망하게 만듭니다. A는 현재 느끼는 감정도 충분히 힘겨운데, 과거의 원망까지 견뎌야 하는 상황인 거예요. 그래서 억압의 방어기제를 자주 쓰는 사람은 평소에는 스트레스를 잘 버티는 듯합니다. 하지만 무의식 속에 숨기며 쌓아왔던 부정적 감정이 터지는 순간이면 급격히 우울해지거나 불안해져요. 이때 대인관계가 파국적으로 변화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신경증적 방어기제는 앞서 말씀드린 방어기제보다는 상대적으로 성숙하지만, 여전히 미성숙한 부분도 분명 있어 주의가 필요합니다.
이제 성숙한 방어기제 중 유머는 어떨까요? 유머는 말 그대로 스트레스 상황을 웃음(유머)으로 벗어나는 것입니다. 현재 처한 상황을 부정하지도, 남의 탓으로 돌리지도(투사), 망각하지도 않은 채로(억압) 현재의 부정적 상황을 보다 건강한 시선으로 볼 수 있게 도와줍니다. 객관적인 판단력을 잘 유지해 보다 적절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래서 유머는 성숙한 방어기제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억제를 볼게요. 억제와 억압은 철자뿐만 아니라 뜻도 유사하여 혼동되기 쉽습니다. 하지만 억압(repression)과 달리 억제(suppression)는 성숙한 방어기제입니다. 억제는 불편한 기억을 무의식이 아닌, 의식에 보관해 두거든요. 설명이 그리 명쾌하지는 않으시죠? 아까 예시로 들은 A와 B의 이야기를 다시 볼게요. A는 B에게 여전히 서운해하지만, B와 함께했던 좋은 추억들을 떠올립니다. 그렇게 A는 B가 미운 점이 있긴 해도 결국에는 고마운 친구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이와 같이 원망과 같은 부정적 경험을 완전히 지워내지 않고, 의식적으로 눌러두는 것이 억제입니다. 그래서 억제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한, 쉽지 않은 방어기제예요.
그럼 억제는 억압에 비해 무슨 장점이 있는 걸까요? 힘들었던 과거를 통편집하는 억압과 달리, 억제는 힘들었던 과거들도 모두 삶의 일부로 수용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당신의 고민은 안녕하신가요?' 편에서 설명드렸지만 고통은 경우에 따라서는 성장통이 될 수 있어요. 때문에 억제를 자주 사용하는 사람은 성장통을 겪으며 성숙해질 기회를 많이 맞이할 수 있습니다.
미성숙한 방어기제가 꼭 나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라면 미성숙한 방어기제를 통해 털어내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이 나은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한 가지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미성숙한 방어기제로 스트레스를 빨리 털어낸다고 해서 그만큼 빨리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속도는 느릴지라도, 보다 성숙하게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것이 행복에 가까워지는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마치 급할수록 돌아가라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요.
당신의 마음 갑옷은 튼튼하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