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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망 Oct 23. 2021

에세이 대신 짧은 소설을 씁니다.

"뭐? 소설을 쓴다고?"

그렇다. 어쩌다 보니 내가 소설 비슷한 걸 썼다.


 헛소리할 때 주로 많이 들었던 '소설 쓰고 앉아있네...'라는 말이 현실이 되었다. 요즘 내가 하는 일이 진짜 소설 쓰고 앉아있는 거니까... 그래서 옛날부터 사람들이 말이 씨가 된다고 했나 보다. 그 씨가 나한테 제대로 심어다. 적어도 지금은.


소설은 맨날 읽기만 했지 직접 쓴다는 건 엄두도 내지 않고 살아왔다. 그런데 뜬금없이 이제 와서 소설을 쓴다니 나 스스로도 어이가 없고 어색해서 주변에 얘기도 안 했다.


 처음에 소설스러운 글을 쓰게 된 건 사실 내 의지가 아니었다. 늘 일기와 에세이의 경계에서 오락가락하며 글을 쓰고 있었는데 언젠가 번아웃이 왔었다. 만사가 귀찮고 무기력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그 어떤 것도 재미가 없었다. 무기력함은 스스로 글을 읽는 것도 버거워했다. 아무리 글 읽어도 '공감'의 레벨에 도달하지 못했다. 소설이든 에세이든 어느새 나의 독서는 글자를 따라 눈동자를 움직이는 안구 근육운동이 되어버렸다. 내 삶에서 글이 더 이상 치유가 될 수 없었던 거다.


 무기력에 계속 머물고 싶지 않았던 나는 약을 챙겨 먹듯 음악을 들었다. 읽을 수 없으니 듣기라도 해야 했다. 나한테 필요한 감정의 주파수를 가진 음악을 열심히 찾아 헤맸고 그렇게 찾은 음악을 하루 종일, 며칠이고 무한 반복해서 들었다. 그렇게 듣다 보니 후렴구만 들리던 노래가 점차 가사 전체가 들리기 시작했고 악기 소리 하나하나가 가슴을 치며 들어왔다. 가뭄에 단비처럼 가슴에 노래가 흩뿌려지며 갈라진 논밭처럼 말라있던 감정의 밭에 작은 싹이 움트기 시작했다.


 어느 날부터 한 곡의 노래가 흐르는 동안
머릿속에서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노래를 들으며 머릿속에 생겨난 누군가가 나 대신 버라이어티 한 하루를 살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성별도 다양한 그들 덕분에 잊은 지 오래라 생각했던 다양한 감정들 깨어나기 시작했다. 노래를 통해 마음에 들어온 상상 속 주인공들이  무감각을 깨우고 무기력했던 심장을 열심히 요동치게 해 주었다.


 노래를 들으며 떠오른 이야기들을 통해 나는 무한반복의 삶 속에서 잠시 탈출할 수 있었다. 일상은 변함없이 흘러갔지만 소설 속 주인공이 머릿속에서 함께 살아 숨 쉬고 있으니 일상과 완전히 다른 삶을 동시에 살아가는 느낌이었다. 같이 울고 같이 설레 하며 단편영화 같은 영상이 머릿속에서 쫘악 펼쳐졌는데 그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자꾸자꾸 떠올리다 보니 하나의 짧은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그걸 적기 시작했을 뿐이다.


 노래를 들을 때마다 상상 속 주인공들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졸라댔다. 반 만 넘긴 책의 뒷 페이지를 훔쳐보듯 주인공들의 뒷얘기가 궁금해 열심히 머릿속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노래가 흐르면 나는 풋사랑에 설레는 10대 소년이 되기도 하고 치열한 하루를 보낸 취준생이 되기도 했다. 밥 한 끼 못 먹은 회사원도 되었다가 믿던 사람에게 발등을 찍히는 박사가 되기도 하고 사랑에 빠져 콩깍지 쓰 설렘 속에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된 일상에 지쳐가던 나는 이제 노래를 들으며 세상으로 눈을 돌려 타인의 삶을 적극적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삶에 공감할 수 있게 되자 다시 심장이 뛰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가장 신기한 건 특별할 것 없던 내 하루도 짧은 소설이 되어 입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는 다.


1. 마음을 달래 주는 노래 찾기
2. 약처럼 매일매일 정성 들여 노래 듣기
3. 노래와 함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야기에 집중하기
4. 상상 속 주인공의 삶에 푹 빠져보기
5. 까먹기 전에 글로 적기
6. 어색하고 이상한 부분 고쳐 쓰기
7. 글 다시 읽으며 감정에 젖기

 반복적인 이 활동 덕분에 나는 달라질 수 있었다.


 에세이를 쓰거나 읽으며 일상을 위로하던 나는 노래를 듣고 떠오른 단상을 짧은 소설로 썼다. 신기하게도 그 글이 에세이처럼 위로가 되고 일상의 활력이 되어 주었다. 내 삶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타인의 삶을 그려내는 동안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고 내 삶도 소설의 한 부분이 되어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타인의 삶도 조금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삶이 소설이 될 수 있었으므로.


누군가에게 생명력을 부여해주면서 내가 오히려 더 큰 생명력을 얻었다. 창조자로서 소설 속 주인공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공감해주면서 나도 함께 위로받고 격려받고 공감받았다. 그렇게 소설을 쓰는 동안 일상 속에서 외롭거나 허한 마음 점점 줄어들었다.


 이제야 어렴풋하게 내가 겪은 번아웃이 '감정'의 번아웃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똑같은 하루,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에는 늘 한계가 있었고 새로울 게 없는 감정의 빈곤함에 지쳐 나는 내 일상을 잠시 탈출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무기력함에 빠져 책도 읽을 수 없던 때에도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따끈따끈한 그 감정들을 애타게 그리워했나 보다. 살면서 다시 한번 느껴 보길 간절히 바라는 심장 떨리는 순간들, 위로가 되고 눈물이 흘렀던 다채로운 삶의 순간에 심장은 나를 다시 데려가고 싶었던 게 아닐까?


  스스로가 창조해 내는 이야기는 리모컨으로 쉽게 켰다 끌 수 있는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와는 감정의 밀도가 확연히 달랐다. 쓰는 과정은 힘들었지만 역설적으로 그 시간이 정말 짜릿하게 재미있었다. 나로 인해 세상에 생겨난 다양한 인물들은 노래가 흐르는 동안 생생하게 살아 움직였고 내게 더 많은 생명력을 부여해달라는 듯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약을 챙겨 먹듯 계속 음악을 듣고 소설을 써 모은 것이 바로 이 브런치 북이다. 나뿐만 아니라 일상에 지친 다른 누군가도 나와 같은 방식으로 위로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냥 평범한 주부다. 누군가가 내가 누구냐고 물어보면 그냥 애를 키운다고, 그것도 셋이나 키운다고. 가끔 일이 들어오면 프리랜서로 일을 하지만 10년간의 회사 생활도 이젠 추억이 되어간다고 말하며 점점 목소리가 작아지곤 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좀 다르게 이야기해보고 싶.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어봤을 때 단순히 '지금 책임지고 있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지금 가장 가슴 떨리는 것을 할 때의 나'로 대답해보고 싶다.


입 밖에 내지 않아도 벌써 심장이 두근거린다.


생각 만으로도 다시 활기가 생기는 것 같다.


"뭐하세요?"

라고 물어보면 이제 이렇게 대답해 봐야지.




저는 에세이 대신 짧은 소설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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