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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망 Sep 09. 2021

"한숨"

[음악단편소설] feat. 가수 '이하이'의 노래 '한숨'

https://youtu.be/5iSlfF8TQ9k



4분 40초 동안 흘러나오는 이 노래를 듣고 떠올려 본 단상입니다.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음악과 함께 읽어보세요. 




"수고하셨어요. 다음 46번 들어오세요."

"아... 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온다. 긴장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던 46번과 눈이 마주친다. 어색하게 눈을 피하며 계단을 내려온다. 그렇게 면접이 끝났다.


'실수를 너무 많이 했어.'

 속상한 마음이 밀려온다. 그래도 면접이라도 본 게 어디야. 이력서를 낸 곳은 이미 세 자릿수다. 얼어버린 내 머릿속만큼 바깥 날씨도 찬바람이 쌩쌩이다.


'어... 너무 춥잖아 이건...'

거세게 불어온 바람이 머리카락을 때려 얼굴에 부딪힌다. 코끝이 찡하고 매워지더니 갑자기 눈물이 핑 돈다.


'어... 왜 이래... 왜 눈물이 나고 난리야...'

바람이 지나간 것뿐인데 괜히 누가 따귀라도 때리고 간 것 같아서 괜스레 서글퍼진다.


'아... 밥도 못 먹었는데... 벌써 저녁이야...'

온몸이 꽁꽁 얼어서 배가 고픈지도 모르겠다. 허기를 느낄 감각도 얼어버린 것 같다. 주변에 가까운 편의점을 검색해본다. 이 골목만 돌면 된다. 이 골목만 돌면 바람도 좀 잦아지려나...

우선 걸어가자. 지금은.


'삼각김밥이라도 사가야지. 그거라도 같이 먹어야겠다.'

 이대로 자취방으로 들어가면 분명 또 컵라면으로 때울게 분명하다. 요즘 자꾸 속이 쓰리다. 한번 쓰린 게 울컥 올라오면 배를 움켜쥐고 온 몸을 웅크려도 사그라들지 않고 숨이 잘 안 쉬어진다. 예전엔 가끔 한 번씩 그랬는데 이젠 매일 올라온다. 우유라도 마시면 괜찮아지려나 해서 우유도 몇 번 사 먹었지만 그 정도에 내가 봐줄 거 같냐고 인사라도 하듯 어김없이 올라온다.


'그냥 병원을 갈까? 병원 가면 검사한다 뭐다 몇만 원은 들 거 아냐... 안돼... 그럴 돈 없어.' 

엄마한테 또 돈을 달라고 할 수는 없다. 그건 죽기보다 싫다. 이제는 엄마 전화를 받는 것도 쉽지가 않다. 더 이상 괜찮은 척하기가 너무 힘이 든다.


걱정 말라고...

엄마는 너를 믿는다고...

다 잘 될 거라고...

밥 찰 챙겨 먹으라고...

따뜻하게 입고 다니라고...

맨날 똑같은 말을 하는 엄마도 참 힘들겠다. 나보다 더 힘들 텐데. 엄마는 엄마라서 나한테 힘든 티도 못 내는데 그런 엄마 목소리를 듣는 게 이제는 내가 더 괴롭다.


응...

알겠어...

끊어 이제...


너무 미안해서 전화를 빨리 끊고 싶은 마음만 가득해진다. 이 전화가 끝나야 나의 초라함이 끝날 것 같아서. 내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더 들으려고 이것저것 물어보는 엄마한테 바쁘다고 핑계를 대며 서둘러 전화를 끊는다.


"1200원입니다."

삼각김밥 하나를 주머니에 넣고 편의점을 나온다. 멀리 언덕 위로 보이는 소나무 사이로 해가 진다. 검은 나무 그림자 사이에 금화 하나가 반짝이는 것만 같다. 손으로 잡아 보려 손을 뻗어도 절대 잡히지 않는다. 반짝이는 빛 사이로 그림자만 짙어질 뿐이다.


버스정류장을 그냥 지나친다. 추워서 발가락 감각이 없어진 지 오래다. 얼굴도 이제 감각이 없어 콧물이 나오는 줄도 몰랐다. 왠지 걸음을 멈추면 안 될 것 같다. 눈물이 올라오려는 걸 이를 악 물고 참고 걷는다.


횡단보도에 빨간불이 들어온다. 사람들 사이에서 걷기라도 해야 내가 나를 잊을 수 있는데 길에 멈춰 서 버리니 갑자기 멈춰진  몸의 무게 견디기 힘들다. 다리가 휘청거리고 쓰린 속이 올라올 것만 같다. 코트를 더욱 세게 움켜쥐고 발을 동동 굴러본다. 그래도 빨간불은 아직 바뀌지 않는다.


횡단보도에 멈춰 섰을 뿐인데... 내 인생이 이대로 멈출 것만 같다.


'나는 여기까지 인가 봐... 안되나 봐...'


"하아..."

한숨이 눈물과 같이 올라온다. 고개를 하늘로 들어 눈물이 다시 들어가게 해 본다.


'밖으로 흐르지만 말자. 사람이 한두 명도 아닌데 쪽팔리게 왜 이래.'

눈물을 삼키며 치켜든 눈앞으로 가로등 불이 하나둘 켜지고 건물들이 큰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고개를 들어 멍하니 쳐다본다. 파란불로 바뀐 횡단보도에 사람들이 우르르 건너가는 것도 모르고 눈앞의 큰 빌딩을 물끄러미 쳐다보고만 있다. 꼭대기층에서 1층까지 가만히 누구라도 찾는 듯 촘촘히 훑어본다.


불이 켜진 곳, 꺼진 곳...

저 사무실 안에는 누가 앉아있을까...

그 사람들은 저기 어떻게 들어갔을까...

야근해도 좋으니 나도 저 안에 있을 수 있으면 좋겠다...


"하아......"

한숨이 새어 나온다. 갑자기 주머니 속 삼각김밥이 먹기 싫어진다. 반찬 몇 개 없이도 맛만 있던 엄마 밥이 눈물 나게 그립다. 서둘러 끊느라 다 듣지도 못한 엄마의 목소리가 그립다.


있잖아 엄마.

맨날 걱정 말라고 하는데 사실 난 너무 걱정돼.

엄마는 나를 믿는다고 하지만 나는 나를 잘 모르겠어.

엄마 말처럼 다 잘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 잘되는 건 아닌 거 같더라.

밥 잘 챙겨 먹으라고 맨날 말하지만 난 사실 이제 그럴 염치가 없어.

아무리 따뜻하게 입어도 따뜻해지지가 않아.


목줄 달고 점심시간에 밥 먹으러 가는 사람들이 너무 부러워.

이렇게 많은 건물이 다 회사고 다 사무실인데.

왜 나 위한 책상 하나 없을까?

엄마 말대로 다 잘될까?

조금만 더 해보면 될까?

나중에 돌아보면 지금 이 시기가 정말 아무것도 아닐까?


근데 엄마... 나는 너무 힘들다.

나보다 힘든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 거라고 엄마가 말했잖아.

우리 정도면 괜찮은 거라고 했잖아.

근데... 나는 너무 힘들다.

그냥 너무 힘들어.


누가 보면 내 말들이 배부른 소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근데... 그냥...

지금은... 힘들어.


누구랑 비교하지 않아도... 그냥 나는 나대로 힘들 수 있는 거잖아.

나보다 힘든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내 힘든 마음은 무시해버려도 되는 건 아니잖아.

그냥... 힘들어.

엄마...

지금은...


쓰린 속이 또 올라온다. 흐르는 눈물은 이제 주체가 되질 않아 꽁꽁 언 얼굴을 흘러 땅바닥으로 떨어진다. 여기서 못 참으면 엉엉 소리 내 울 것만 같아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서러움을 온 힘을 다해 삼킨다. 지금 못 참으면 영원히 무너져 내릴 것 만 같 온 몸에 힘을 줘 속을 움켜쥔다.


참았던 숨이 온몸에 가득 찬다. 머리가 띵 할 정도로 온 몸에 숨이 차 올라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토하듯 뱉어낸다.


"후우......"

입술 사이로 거친 숨이 새어 나간다.


뱉은 숨을 따라 들어온 들숨에 다시 찬 공기가 온몸으로 퍼진다. 쓰린 속이 찬 공기를 만나 잠시 누그러진다. 머릿속까지 찬 공기가 스며든다.


 흐르던 눈물이 잠시 숨을 고른다.


온몸을 누르던 무게가 차가운 바람에 실려 흩어진다. 찬 공기에 번쩍 정신이 든 온몸 가득 소름이 돋는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흔들어 온 몸에 붙어있던 어두움을 털어내 본다.


다시 한번 크게 한숨을 내쉬고 더 큰 들숨으로 온몸을 채운다.


초록불이 켜진다.


찬 공기를 몰고 온 바람이 가라고 가보라고 등을 떠민다.


조심히 앞을 향해 발을 뗀다.








숨을 크게 쉬어봐요.

당신의 가슴 양쪽이 저리게 조금은 아파올 때까지.


숨을 더 뱉어봐요.

당신의 안에 남은 게 없다고 느껴질 때까지.


숨이 벅차올라도 괜찮아요.

아무도 그댈 탓하진 않아.


가끔은 실수해도 돼. 누구든 그랬으니까.

괜찮다는 말, 말뿐인 위로지만.


누군가의 한숨 그 무거운 숨을

내가 어떻게 헤아릴 수가 있을까요.


당신의 한숨 그 깊일 이해할 순 없겠지만,

괜찮아요. 내가 안아줄게요.



가사_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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