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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망 Sep 13. 2021

"버터플라이"

[음악단편소설] feat. 가수 '러브홀릭스'의 '버터플라이'

https://youtu.be/WCH8lSKBCm0



4분 9초 동안 흘러나오는 이 노래를 듣고 떠올려 본 단상입니다.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음악과 함께 읽어보세요.




늦었다. 발을 동동 굴러도 엘리베이터가 더 빨리 내려오진 않는다.

23층...

15층...

11층...

9층...

이제 7층이다.

어서 빨리 열려라 문아. 타자마자 닫힘 버튼을 다다다다 줄기차게 눌러댄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얼굴 익숙하지만 여전히 어색하게 서로의 눈을 피하는 이웃들이 서있다. 문이 닫히고 있는데도 버튼을 닫힐 때까지 누른다. 빨리! 빨리! 빨리! 빨리!


눈앞에서 마을버스를 놓친다. 헉헉 숨을 몰아쉬는 목에서 피 맛이 난다.


'아... 또... 지각하겠네.'

발을 동동 구르며 다음 마을버스를 기다린다. 내리자마자 지하철 입구를 향해 달린다. 아무리 달려도 항상 타던 지하철을 붙잡아 탈 수 없는 걸 알면서도 급한 마음에 우선 뛰고 본다. 밀려드는 사람들 틈에 끼어 지하철 속으로 들어간다. 구석에 빈자리가 좀 있다. 비집고 들어가 문 옆 손잡이에 등을 기대고 잠시 한 숨을 돌린다. 빈 속이 쓰리다.


'에이 뭐 사 먹을 시간도 없겠다.'

에스컬레이터 앞에 이미 긴 줄이 생겼다. 숨 한번 크게 쉬고 계단을 오른다. 두 칸씩 뛰어오르며 의미 없는 숫자를 머릿속으로 센다. '이, 사, 육, 팔, 십, 이, 사, 육, 팔, 이십.... 아... 계단 왜 이리 많아...'


이미 조용한 사무실에 눈치를 보며 들어간다. 건조한 눈으로 흘깃 쳐다보는 팀장님과 눈이 마주친다. 반사적으로 멈춰 서서 꾸벅 고개를 숙인다. 컴퓨터를 켠다. 책상 서랍을 뒤져 사탕 하나를 입에 문다. 침 한번 삼키고 나니 이제야 띵한 머리에 피가 돈다. 다행이다. 어제 야근하며 자료를 좀 보완해 두었다. 다시 한번 확인을 하고 프린트 해 바로 팀장님 자리로 가져간다.


"이게 내가 해오라는 게 아닐 텐데."

"네? 지난번에 그 부분 고쳐오라고 하셔셔..."

"고치는 건 고치는 거고 내가 새로 추가하라는 건 하나도 안 했네?"

"아... 그거 생각해보라고 하셔서 자료 지금 찾고..."

"아... 생각해 보라고 해서 생각만 하고 있었어? 있다가 회의 때 그거 안 필요해? "

"회의 전까지 추가해놓겠습니다."

다시 책상에 앉는다. 서류더미를 급하게 뒤적인다. 그때 자료 찾아서 프린트 해 둔 게 있을 텐데... 꼭 찾으려면 눈앞에 안 보인다. 파일을 열어 모니터로 하나하나 확인하며 급하게 자료를 쳐 넣는다.


'아... 비슷한 도형 내가 만들어 둔 게 있었는데... 어딨지? 어딨지?'

파일을 6~7개를 클릭해서 열어두고 쓸만한 도형이 있는 페이지를 찾는다.

'여기 있다! 아 다행...'

Ctrl+C, Ctrl+V. 단축키를 눌러가며 페이지를 채운다. 손만 보면 흡사 피아노를 치는 것 같다. 어릴 때 피아노 치기 좋은 손이라 칭찬받았던 긴 손가락은 이제 종일 키보드를 치고 있다. 잠시 머릿속으로 피아노 선율을 떠올린다. 콩쿠르 대회를 준비했던 그 곡은 지금도 기계처럼 손이 움직인다.


오전이 다 갔다. 사탕 한 개로 버틴 내가 가엽다. 프린터를 걸어놓고 커피를 한잔 타러 간다. 정수기에서 흐르는 뜨거운 물이 손에 튄다. 놀라서 흔들린 손 때문에 커피 물이 옷에도 튄다.

'아... 뭐냐 오늘...'

종이컵을 이로 물고 두 손으로는 프린터를 들고 확인하며 자리에 앉는다. 몇몇 개 오타와 줄 바꿈이 눈에 거슬린다. 수정하려고 창을 연다.


"있잖아. 어제 이사님한테 보고한 중간보고자료 좀 나한테 보내줄래?"

"아. 네!"

만들던 자료를 잠시 멈추고 프로젝트 문서함을 연다. 하도 여러 번 수정한 파일이라 뭐가 최종본인지  모르겠다. 눈이 바쁘다.


"중간보고 때 이사님이 말씀하신 거 찾아서 비교해놨어? 엑셀로 하면 금방 하겠더만."
"아, 아직... 지금 회의자료..."

"별것도 아닌 건데 너무 늦네. 손이 느린 거야? 머리가 나쁜 거야? 중간보고자료 바로 좀 보내라니까."

"아. 네!"

아... 도대체 창이 몇 개나 열려있는 거야... 정신이 하나도 없네.

급한 마음에 창 닫기 버튼을 다다다다 눌러댄다. 팝업창들이 뜬다. 내용을 보지도 않고 버튼을 눌러댄다.


헉...


어?


방금 나 뭐한 거야?


저장 안 한 거야?


자동 저장! 자동 저장!!


꺼져있었어?


아냐 아냐... 어디 있을 거야.


어디 있지?


어디 있지?


없어?


...


진짜?


...


에이씨...


눈물이 핑 돈다. 오전 내내 만든 파일이 날아갔다.


"참나... 자료 하나 보내는 게 그게 오래 걸릴 일이야?"

"아, 아뇨... 바로 보내드릴게요."

숨을 한번 크게 내쉬고 다시 파일을 찾는다. 식은땀이 흐른다. 


"아니다. 그거 점심 먹고 나서 봐야겠다. 밥 먹고 보내. 일 봐!"

"아..."

대답을 잃었다. 잠시 멍하니 모니터만 쳐다본다.


'에이씨...'

목구멍이 뜨겁다. 파일을 다시 찾아 클릭한다.


"점심 안 드세요?"

"아... 네... 다녀오세요. 저는 할게 좀 남아서..."

빈 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율무차 두 봉지를 뜯어 종이컵에 넣는다. 물을 가득 넣고 젓는다. 걸쭉한 율무차가 만들어졌다. 밥 대신 마시고 다시 자리에 앉는다. 입 속에 땅콩이 돌아다닌다. 와그작와그작 씹어 삼킨다. 뭐라도 씹었으니 된 거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의도 끝 다시 자리에 앉는다. 늘 그렇듯 자료는 내가 만들었어도 공은 다른 사람 차지가 된다.


'그 사람이 워낙 잘하니까...

 잘했지... 그 사람이.

 잘하더라. 정말...

 아...

 난 왜 이리 안 풀리냐...'


오늘의 내 모습이 참 하찮다. 시간 날 때 뭐라도 먹으러 나갈까 했지만 식욕이 사라진 지 오래다.

쓴 물이 목으로 올라온다. 핫쵸코 한봉을 뜯는다. 이번엔 핫쵸코다. 적당히 식혀  한입에 삼킨다. 아... 입이 달다. 바로 양치를 하러 간다.


몇 번 또 모이고 다시 할 일을 받아 자리로 온다. 한다고 했는데 늘 아쉬운 소리를 듣는 내가 참 한심하다. 스스로에게 실망도 하고 금방 했던 실수를 또 하며 후회를 한다. 그렇게 하루가 지난다.


창밖이 어두워지고 사무실 자리도 한 명씩 비워진다. 조용히 전원 버튼을 누르고 짐을 챙겨 일어선다. 회사를 나서며 이어폰을 찾아 귀에 꽂는다.


너의 하루는 그렇게 하찮지 않다고, 초라하다 생각지 말라고 누군가 얘기해주었으면 좋겠다. 


언젠간 너도 빛날 거라고, 너도 날개를 펴고 멀리 날아갈 수 있을 거라고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내일이 늘과  다르지 않을 거라 해도 지금은 노래 한곡에 지친 마음을 달랜다.


중간고사망친 23층 학생도...

종일 책상에 앉아 문제집을 푼 15층 재수생도...

하루 종일 민원에 시달린 11층 공무원도...

아르바이트를 하며 취업준비를 하고 있는 9층 취준생도...

오늘 한 끼도 못 먹은 7층 회사원도...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하루를 시작한 그들 모두 지금 있는 장소는 모두 다르지만, 지친 하루의 끝을 위로하고 내일 다시 살아갈 힘을 내기 위해 각자의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지친 마음에 노래가 위로가 되어 흐른다.






어리석은 세상은 너를 몰라

누에 속에 감춰진 너를 못 봐

나는 알아 내겐 보여

그토록 찬란한 너의 날개


겁내지 마 할 수 있어

뜨겁게 꿈틀거리는

날개를 펴 날아올라 세상 위로


태양처럼 빛을 내는 그대여

이 세상이 거칠게 막아서도

빛나는 사람아 난 너를 사랑해

널 세상이 볼 수 있게 날아 저 멀리


꺾여버린 꽃처럼 아플 때도

쓰러진 나무처럼 초라해도

너를 믿어 나를 믿어

우리는 서로를 믿고 있어


심장의 소릴 느껴봐

힘겹게 접어놓았던

날개를 펴 날아올라 세상 위로


벅차도록 아름다운 그대여

이 세상이 차갑게 등을 보여도

눈부신 사람아 난 너를 사랑해

널 세상이 볼 수 있게 날아 저 멀리


가사_이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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