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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망 Sep 11. 2021

"신청곡"

[음악단편소설] feat. 가수 '이소라(with 슈가)'의 '신청곡'

https://youtu.be/ij0SQZcqnPU



4분 41초 동안 흘러나오는 이 노래를 듣고 떠올려 본 단상입니다.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음악과 함께 읽어보세요.




"잠깐만요. 이박사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의료 통계정보에 의하면 2020년 기준, 우울증으로 병원 진료를 받은 우리나라 환자 수는 대략 402만 명이라고 합니다. 이 숫자가 잘 안 와닿으시죠?"


"아, 알고 있습니다."


"서울과 경기를 제외한 광역시 중 가장 인구가 많은 곳이 어딘 줄 아시죠?"


"아니..."


"네, 부산이죠. 부산 인구가 다 합하면 339만 2천 명이예요. 바글바글한 부산의 모든 시민들이 작년 한 해 한 명도 빠짐없이 병원을 갔다고 가정해도 작년 우울증 진료받은 전체 환자 에는 모자란다고요."


"아니 그건..."


" 67만 5천 명 정도 되는 제주도의 인구수만큼 부산시 인구수에 더해져야 작년에 우울증으로 병원의 도움을 받은 환자수가 되는 겁니다. 이제 감이 좀 잡히시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두통으로 진료받은 사람들은 몇 명 정도인지 아세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015년에 조사한 자료를 보면 두통으로 진료받은 사람은 261만 명 수준으로 집계되었어요."


"."


"누가 더 많죠? 뭐로 병원에 더 갔는지 보이시죠?"


"이제 제가..."


"이것만 먼저 말씀드리고요. 우리가 조금 아프다고 쉽게 병원을 갑니까? 견딜만하면 버티고 버티는 게 사람 심리입니다. 돈 드는 게 무섭고 검사가 두렵고 조금 기다리면 괜찮아질 것 같고 그렇거든요. 그런데 머리 아파서 병원 간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우울감을 호소하며 병원을 직접 찾아갔다는 겁니다. 상황 파악이 좀 되십니까?"


"아, 제가 그걸 모르는  아니고..."


"이박사 님. 국민들이 정신과 찾아가는 게 쉬운 줄 아세요? 감기 걸려 이비인후과 가는 거랑 절대 같이 보면 안 되죠. 굳이 의료통계정보를 참고하지 않아도 국민들의 정신건강에 빨간불이 켜진 게 보이잖아요. 다양한 앙케트 업체에서 조사된 자료들을 보면 국민들 중 세명 중 한 명은 코로나 블루겪고 있다고 대답했다는 거 뉴스에서 보셨죠? 4인 가족이면 우리 가족 중 한 명은 지금 우울감 호소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아, 그 앙케트 조사는..."


"이박사 님, 우울한 사람만 우울증에 시달리는 게 아닌 게 더 문젭니다. 주변에 '난 우울한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막 화가 나'하고 말하는 사람들 꼭 있어요. 있죠? 이분들은 우울증 아닌 것 같죠? 그럼 큰 오산이라는 겁니다.  '분노' 또한 우울증 증상의 또 다른 양상이라고 하는 거 들어 보셨어요?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침울한 감정을 경험하는 것보다 분노하는 게 더 쉬운 표출 방법이라 누군가는 그 우울감이 분노로 표출되는 겁니다. 아시겠어요?"


"그렇죠 그건. 근데..."


"주변에 "화"가 가득한 사람들은 본인이 우울증이라 절대 생각 안 해요. 매사에 불만이고 화가 나도 이분들은 절대 병원에 안 가신다고요. 지금 내가 어디가 아픈 게 아니라 원래  화가 많은 성격이라고 생각하고 평생 화내며 사세요. 그 주변에서 상처 받은  사람들이 마음에 병이 나는 거예요. 그 화 때문에. 아시겠죠? 한없이 무기력 한 사람도, 매사에 화가 나는 사람도 그 원인을 들여다보면 결국 우울증이 내면을 지배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학생들, 선생님, 직장인, 주부, 공무원, 군인, 료진, 배달원, 소상공인들 할 것 없이 모두 지금 '우울증'을 호소하고 있어요. 병원에 갈 상황 안되는데 더 이상 견디기 힘든 분들이 이렇게 많은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두통약처럼 우울증 약이 상비약이 될 수 없는 이유가 도대체 뭡니까?"


"장 의원님.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초과되어 자유토론은 이만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장 의원님 의견은 충분히 전달되신 것 같은데... 그렇죠? 남은 시간은 이 박사님의 반론을 듣고 방송을 마무리해야 할 것 같은데요. 장 의원님 동의하시죠? 네... 그럼  이 박사님?"


"저는... 사회적 우울감에 대한 현상을 절대 가볍게 보지 않습니다. WHO에서 2020년의 인류를 괴롭힐 3대 질병으로 심장질환, 교통사고, 우울증을 예측했죠. 이미 2010년에 Science on에서 조사한 자료에서는 2020년부터 우울증이 모든 연령에서 나타나는 질환 중 1위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 예측고 그 예측은 안타깝게도 현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울증 약이 두통약처럼 상비약이 되는 건 조금 다른 문제라고 판단됩니다. 마트에 상품을 하나 더 진열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지요. 전 세계적으로 퍼진 우울감에 대한 논의는 다양한 국제학회에서도 각 분야의 전문가가 모여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항우울제는 신경계에 직접 작용해  호르몬에 영향을 끼치는데 환자의 증상에 따라, 상태에 따라 사용해야 하는 약의 종류와 용량이 다릅니다. 많은 부분에서 아직까지도 연구 중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두통약처럼 쉽게 일반화하기 어려운 거죠. 그래서 저는..."


"아, 아쉽지만 방송 시간이 다 되어 이만 토론을 마쳐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박사님의 고견은 또 다른 토론 자리에서 곧 이어 나갈 수 있기를 바라며 토론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3번 카메라가 토론 참여자를 시계방향으로 비추며 방송 종료를 알리는 시그널이 나온다. 사회자가 패널들과  서로 인사를 주고받는다. 이 박사는  옷에 꽂았던 마이크를 정리하며 테이블에 놓여있던 자료를 가방에 넣는다. 장 의원 옆에는 두 명의 비서가 다가와 정리를 돕는다. 장 의원이 비서들을 뒤로 물리며 이 박사 곁으로 다가온다.


"수고하셨습니다. 선배님!"

잘 잠기지 않는 가방을 잠그는 이 박사의 손을 억지로 잡으며 혹시나 아직 켜져 있는 카메라를 의식하는 듯 주변을 눈으로 훑는다. 장 의원이 작은 목소리로 이 박사 귀에 대고 본심을 밝힌다.


"형님! 제가 좀 세게 나갔죠? 이해해 주세요. 요즘 제가  할 말 하는 이미지로 상한가 치고 있어서 이미지 좀 굳히느라 허허허. 이해하시죠?"

장 의원이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로 웃으며 굳은 이 박사의 표정을 풀어보려 애쓴다.

  

"그래도 어떻게 술자리에서 내가 한 말을 그대로 네 입으로 뱉냐? 부산이랑 제주도까지 어떻게 네 말로 만드냐고..."


"아, 저 그때 형님 말씀 듣고 완전 소름 돋아서... 어디서든 써먹으려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허허. 그게 형님 앞에서 쓰게 될 줄은... 허허허... 죄송해요. 제가 밥 살게요. 좀 봐주세요. 허허허"


멀리서 보면 마치 토론자리에서 제대로 반격 못해 맘 상한 이 박사를 장 의원이 풀어주는 광경으로 보다.


장 의원 비서가 곁으로 다가와 바로 다음 스케줄을 가야 한다며 재촉한다. 장 의원 유세 자리에서 하듯 두 손으로 이 박사의 오른손을 꼭 쥐고 깍듯하게 인사한 후 자리를 뜬다.


입이 쓰다. 방심하는 게 아니었다. 아꼈던 후배라 뜬금없는 연락에도 흔쾌히 자리에 나갔는데 이런 계획이 숨어 있을 줄은 몰랐다. 정치란 게 참 무섭네. 장 의원의 말들이 하도 어이가 없어 토론 내내 입뻥긋 못한 스스로가 원망스럽다.


 박사도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간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쉬기가 어렵다. 문을 나서니  까만 하늘에서 비가 쏟아진다. 오늘따라 주차된 차가 멀다. 가방을 어깨에 메고 정장 마이를 치켜들어 비를 피하며 주차된 으로 뛰어간다.


차 문을 열고 들어가 앉으니 익숙한 평온함이 몸을 감싼다. 익숙한 냄새, 익숙한 전자음, 익숙한 의자. 깊게 호흡하여 부족한 산소를 채운다. 불안정했던 그의 심장 박동도 익숙한 리듬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생수통을 찾아 한 모금 입에 넣고 주머니 속 진정제를 꺼내 먹으려다... 잠시 손을 멈춘다. 



눈을 감고 빗소리를 듣는다.


약보다 더 간절한 게 떠오른다.


시동을 켠다. 


음악 어플을 켜서  이소라의 '신청곡' 플레이한다. 


노래 첫마디의 피아노 반주가 흘러나오자 심장 깊은 곳에서 찌릿하게 뭔가 반응을 한다. 


드럼 파트가 시작되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하던 심장박동이 자연스레 음악 위에 얹힌다.


이제야 숨이 잘 쉬어진다.


수천 번, 수만 번 들었던 이 노래에 몸이 먼저 반응하고 한 곡이 다 끝나기 전 마음이 진정되어가는 걸 느낀다.


바로 '무한 재' 버튼을 누른다.


기어를 바꾸고 액셀을 밟는다.


도로 위 수많은 자동차 행렬에 무사히 합류한다.






창밖엔 또 비가 와

이럴 땐 꼭 네가 떠올라 잠이 오지 않아


내방엔 이 침묵과 쓸쓸한 내 심장 소리가

미칠 것만 같아


So I turn on my radio

낯선 목소리가 들려오고


And on the radio

슬픈 그 사연이 너무 내 얘기 같아서


Hey DJ

Play me a song to make me smile

마음이 울적한 밤에 나 대신 웃어줄

그를 잊게 해 줄 노래


Hey DJ

Play me a song to make me cry

가슴이 답답한 밤에 나 대신 울어줄

그를 잊게 해 줄 노래


치열했던 하루를 위로하는 어둠마저 잠든 이 밤

수백 번 나를 토해내네 그대 아프니까

난 당신의 삶 한 귀퉁이 한 조각이자

그대의 감정들의 벗 때로는 familia

때때론 잠시 쉬어 가고플 때

함께임에도 외로움에 파묻혀질 때

추억에 취해서 누군가를 다시 게워낼 때

그때야 비로소 난 당신의 음악이 됐네



가사_타블로, BTS 슈가




참고: 소설 속 대화의 통계 자료는 신문기사 및 기관의  발표자료를 토대로 실제 수치를 반영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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