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마살 이야기 17 Uzbekistan, Tashkent
여행자라는 이름하에 우린 '때로는'의 마법을 만끽해 볼 필요가 있다.
그 '때로는'이라는 녀석은 당신의 여행을 한층 더 풍성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 여행자 MAY의 '때때로 괜찮지 않았지만, 그래도 괜찮았어' 중에서
드디어 학교에 돌아가기 전 마지막 여행지, 우즈베키스탄에 오게 됐다. 하지만 마지막이었던 탓에 이제는 새로운 여행지에 대한 설렘보다는 앞날에 대한 걱정이 머릿속을 꽉 채우기 시작했다. 이런 내마음과 같은지 회색 구름이 번진 하늘 위로 약간의 냉기를 품은 봄비가 부슬부슬 떨어지고 있었다.
비가 오는 낯선 거리의 쓸쓸함과 함께 걸었다. 뚜렷한 대책 없는 인생 길처럼 어느 곳으로 가야겠다는 목적지는 없다. 역시 계획같은 것도 없다. 그저 걷고 걷다가 우연히 마주하는 것들로 계획의 빈자리를 채울 계획이었다. 그렇게 정처 없이 걷다가 어느 모스크가 보이는 곳으로 향했다. 잠시 들어가기 전 손을 깨끗이 씻고 신발을 가지런히 놓은 후 색이 바랜 초록색의 카펫을 따라 밟았다. 숨조리조차 엄숙한 이곳에서 모두가 그윽한 눈빛으로 같은 방향을 향해 수십 번씩 무릎을 굽이고 바닥에 머리가 닿도록 기도를 한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기도를 방해하지 않도록 먼발치에 앉아 그 모습을 바라본다. 무엇을 위해 그들은 저렇게 간절히 기도하는 것일까. 저런 모습을 볼 때면 모두들 각자의 간절한 꿈이든 목표를 품고 사는 것처럼 보인다. 저들의 간절함이 그들이 믿는 신께 닿기를 작은 소망을 품고 나도 기도를 올려본다.
밖은 여전히 비가 조금씩 내리며 우산이 없는 나를 눅눅하게 만들었다. 무언가 공허하기만 하다. 다시 목적 없는 발걸음을 시작됐다. 그리고 어디선가 이명처럼 흐릿한 음악이 달팽이관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소리의 근원지로 이끌려 가보니 아미르 티무르 박물관 옆에서 큰 행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나우르즈’가 우즈베키스탄에서도 있었던 것이다. 다양한 먹거리 부스, 플리마켓 그리고 다채로운 공연들이 조용한 타슈켄트 거리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 유독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우리나라의 트로트와 비슷한 디제잉이었다. 사실 디제잉이라기보다 휴게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트로트 메들리를 틀어놓은 것 같다.
그 앞에는 전통의상을 입은 수많은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춤을 추고 있다. 심장을 바운스하게 만드는 뽕짝 비트와 사람들의 춤사위에 매료되어 분수 앞에 앉아 박수를 치며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는데, 갑자기 한 소녀가 나의 손을 잡고 춤을 추고 있는 무리로 데려갔다. 그러고 나서 소녀는 나를 사람들 사이로 떠밀며 가운데 자리를 선점하게 했다. 상황은 거절할 수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일어났다.
그 다음, 그녀는 내 손을 뿌리치고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그녀에 박수에 따라 나를 둘러싼 무리들은 모두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피는 못 속인다는 말처럼 나는 A형이라는 혈액형을 속일 수 없다. 그래서 A형의 가장 대표적인 성격대로 나는 소심하다. 물론 소심해서 문제가 될 것은 없지만 문제는 내가 아주 진득하게 소심하다는 것이다.
예를들면 학교에서 조별 과제에 대한 발표를 내가 맡게 되었을 때는 늘 청심환 하나를 꿀꺽 마시고는 사람들 앞에 섰다. 고작 엄지손가락 만한 작은 병 하나에 5,000원씩이나 했지만 나는 기꺼이 그 돈을 지불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발표하는 내내 오래된 경운기처럼 덜덜덜 떨리는 목소리를 제어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또한 사랑 앞에서도 예외는 없었다. 학창시절에 짝사랑하는 여자 아이가 있었다. 그때 무려 2년 동안이나 그녀를 좋아했음에도 타이밍만 재다가 같이 밥 한번 먹어 보지 못하고 끝을 마주했다. 차라리 뭐라고 시도해봐서 비극적인 결말이라도 맞이했다면 지금처럼 아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를 생각하니 그 모습이 머릿속에 선명히 그려진다. 그녀는 참 예뻤었다. 그리고 어떨 때는 귀엽고 어떨 때는 청순해서 참 카멜레온 같았다. 웃을 때는 초승달처럼 휘어지는 눈웃음과 입술을 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에 규모 7.0의 대규모 지진을 일으켰다. 주먹만한 작은 얼굴에 어떻게 눈코입이 다 들어갔는지 신기했고, 똘망똘망한 눈을 보고 있노라면 1급수의 계곡물처럼 참 맑아서 내 모습이 훤히 보였다. 예술적인 콧날은 세계적인 조각가 미켈란젤로의 손에 의해 탄생된 것처럼 한 치의 오차없이 완벽했고, 분홍빛 입술은 마치 꽃술을 닮아 지나가는 꿀벌을 유혹할만큼 달콤해보였다. 그녀에 대한 묘사가 길었다. 역시 사람은 사랑에 대해서라면 참으로 감수성이 풍부해지는 듯 하다. 그냥 내가 소심하다는 소리다. 뭐 아무튼 그랬다.
이런 A형 중에서도 트리플 A형인 내게 여행은 많은 것들을 가능하게 했다. 그중 하나는 바로 낯선 내가 될 수 있는 용기였다. 낯선 곳에서 나는 데이트 신청도 못한 찌질이가 될 필요도, 발표도 못하는 겁쟁이가 될 필요도 없었다. 대신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가 주는 느낌에 따라 기존의 나를 벗어던지면 되는 것이었다. 일상 속에서 누군가의 시선으로 인해 꽁꽁 감추어두었던 내모습 그대로 말이다.
LMFAO의 Party Rock Anthem이 전 세계를 강타했던 시절 나는 열심히 바닥을 긁었던 사람 중 하나였다. 나는 들고 있던 야상과 가방을 그 자리에 내려놓고 비트에 몸을 맡겼다. 그리고 유일하게 자신 있는 셔플 댄스를 추기 시작했고, 신발 밑창이 다 갈리도록 거친 바닥을 긁고 또 긁었다. 나의 신발 밑창과 함께 심장은 뜨겁게 불타오르는 듯 했다. 보아라, 나의 출구없는 매력을.
나를 뜨겁게 대펴준 그 소녀, 알함둘리아.
너를 꼭 기억하겠어..!
여행을 하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낯선 땅에서 새로운 나의 모습을 하나씩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아닌 오로지 나의 의지들이 촘촘히 모여 곧 나의 여행이 되었다.
그래서 여행이란
나를 찾아나서는 탐험이자
내가 되어가는 모험이었다.
여행이란 그랬다.
당신의 꿈을 이루는 것을 막는 사람은 당신 자신밖에 없다.
- 톰 브래들리
지하철 노선도를 살피고 있는데 어떤 여성이 '안녕하세요'라고 말을 건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국의 땅에서 들려온 자연스러운 고국의 발음이다. 말을 건넨 그녀를 보니 한국인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 “안녕하세요, 혹시 도움이 필요하세요?”
- “네. 밀리리 보그 역에 가려고 합니다.”
그녀는 친절히 개찰구 앞까지 나를 안내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오셨나요?"
-"아니요, 저는 우즈벡 사람이에요."
-"그렇군요. 그런데 어디서 한국말을 배웠나요?"
-"아 저는 세종학당에서 한글을 공부하고 있어요."
'자주, 애민, 실용' 정신이 깃든 자랑스런 우리 한글을 배운다니 참으로 자랑스런 순간이었다. 그리고 세종학당에 대해 조금 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과연 그곳에서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타슈켄트에서 지하철을 타기 위해 개찰구를 찾아 헤매던 내게 누군가 인사말을 건넸다.
선명하게 들리는 "안녕하세요"였다. 여행객이 많이 없는 우즈벡에서 우리나라말을 듣게 될 줄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순간 뒤를 돌아봤는데 얼핏 한국사람같기도 하지만 약간의 이국적인 모습으로 보이는 소녀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국에서 여행을 왔냐고 그녀에게 물었는데 자신은 우즈벡사람이며 세종학당에서 공부 중인 학생이라고 소개했다.
얼마 뒤 세종학당이란 곳에 호기심에 생겨 직접 그곳을 찾아나섰다. 뿌옇게 흙먼지가 휘날리는 공사현장을 지나 골목으로 들어서서 걸음을 계속가다 보니 눈에 익숙한 낱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또박또박 써진 글씨체를 보니 누가 봐도 세종학당이 확실했다.
당차게 태극문양이 그려진 초록색 대문을 밀고 들어갔는데 괜히 뻘쭘한 마음에 대문 근처에서 쭈뼛쭈뼛 두리번거리자 몇몇 학생이 곁눈질로 힐끔힐끔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선 경계하는 그들에게 먼저 "안녕하세요" 인사말을 꺼냈다.
그들의 흝어보던 눈빛이 그제서야 나를 바라보며 인사를 했다. 그리고 머지 않아 열댓 명의 친구들이 내게 호기심을 보이며 에워싸기 시작했다. 그 아이들은 지금까지 배운 한국말을 자랑하고 싶었는지 마치 고위공직자의 인사청문회처럼 질문 세례를 막 퍼붓기 시작했다.
-"당신은 어디서 왔나요?"
-"저는 대한민국에서 왔습니다."
- “당신은 이름이 무엇입니까?”
- “제 이름은 김종민입니다.”
- “당신은 트와이스를 아십까?”
- “네 알고 있습니다.”
- “트와이스에서 누구를 좋아합니까?”
- “저는 사나를 좋아합니다”
- “왜 우즈베키스탄을 오셨습니까?”
- “여행하고 싶었습니다.”
- “당신은 우즈베키스탄을 좋아합니까?”
- “네 저는 우즈베키스탄이 정말 좋습니다.”
이후에도 심층적인 질문들이 이어졌고, 나의 청문회는 큰 마찰 없이 무사히 끝이 났다.
그리고 나에 대한 검증이 끝났으니 이번에는 내가 그들에게 한국어를 배우는 이유에 대해 질문을 했다. 그리고 그때 알게 된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학생은 고려인들이었다는 사실이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자신들의 뿌리인 한국에 대해 꼭 배워야 한다고 했고, 그것이 세종학당에 오게 된 계기라고 했다. 그리고 현재는 한국어를 열심히 배워 본국으로 가서 공부하고 싶다는 새로운 소망이 생겼다고 한다.
죽음을 무릅쓰는 먼 길을 유랑하며 국민을 보살피지 못하는 본국이 원망스러울 법도 한데 여전히 그들은 대한민국의 뿌리를 되새기며 살아가고 있었다. 살아남은 자들도, 살아가는 자들도.
그들에게 있었던 혹독한 이주과정과, 고난 속에서도 잃지 않았던 고국 향한 그리움을 생각하니 절로 마음이 숙연해진다.
잠시 뒤 그들과 함께 수업을 듣기로 했다. 그리고 교실에 들어가 수업이 시작하기 전 늘상 그랬듯 맨구석으로 자리잡고 앉았다. 교실 안은 아직 각종 소음으로 시끌벅적했다. 뒤늦게 온 학생들이 흠칫하며 나를 바라보고, 나는 다른 나라의 언어로 인사를 나눌 필요없이 익숙한 우리나라말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곧이어 수업이 시작되자 아이들은 선생님의 발음을 열심히 따라하지만 그들의 노력과는 다르게 아직 한글에 패치되지 못한 혀를 통해 어눌한 발음이 새나오는 모습이 귀엽게 보였다. 그리고 교과서를 보며 관자놀이에 힘이 잔뜩 들어가 골똘하는 모습을 보며 대신 풀어주고 싶은 욕구가 을 느낀다.
잠시 뒤 그들과 함께 수업을 듣기로 했고, 교실에 들어가 수업이 시작하기 전 늘상 그랬듯 맨구석으로 자리잡고 앉았다. 평소라면 다 못 뜬 피곤한 눈으로 강의실에 앉아 허덕지덕 수업을 따라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딱딱한 나무의자 앉아 선생님을 기다리는 것도, 익숙한 교실의 분위기도, 그냥 모든 게 좋았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눈언저리에 힘이 빠지고, 껌뻑거리는 눈꺼풀의 흐느적거림은 막을 수 없었다. 그냥 분위기가 좋았던 것이지 수업이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역시 세상에서 최고의 명강은 휴강이랬던가. 수업 시간이 지루한 것은 한국이나 우즈벡이나 도긴개긴이었다.
하지만 잠깐 찾아왔던 졸음이 달아나고, 뒷자리에서 비록 서툴지만 열정적인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니 부모가 된 마음처럼 그저 흐뭇하다. 그리고 문득 세종학당 교실에 앉아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있으니 꼬깃꼬깃 구겨 넣었던 추억 하나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대학교 3학년 때 학교에서 모집한 해외자원활동에 지원한 뒤 합격하여 2주 동안 지역아동센터와 가난한 시골 마을의 교회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때 당시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나’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물음표를 던지던 시기였고, 캄보디아는 그 물음에 느낌표를 던져주었던 이정표와 같은 곳이었다.
'내가 지금 공부하고 있는 전기를 통해서 세상의 어두운 곳을 밝게 비추는 일을 하겠어!'
언제나 그때를 떠올릴 때면, 세계의 평안을 위한 나의 이글거림은 거스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고동쳤던 마음은 살얼음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종종 희끗하게 얼은 마음 사이로 기억이 되살아나지만 뚜렷한 기억과는 별개로 감정은 이미 많이 무뎌져 버린 후였다. 현실적 조건과 나의 능력을 전반적으로 고려해봤을 때, 세계의 평화는 막론하고 나의 평화조차 찾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국제 개발에 대한 꿈을 포기하고 지금 하고 있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때를 그리워해서 일까 세종학당의 작은 교실에서 학생들의 열정 어린 모습을 보니 캄보디아에서 만난 아이들의 얼굴이 하나 둘 떠올랐다. 그리고 깊은 곳에 내재되어 있던 기억과 잊고 살았던 감정들이 다시금 내 마음에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이미 다 게워낸 줄 알았던 꿈이었는데 마음은 아직도 희미하게나마 희망을 품고 있었나, 갑자기 왜 이런 마음이 드는지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느낄 수 있는 것은 그때의 열기는 아니지만,
온기는 여전히 가슴 안에 남아 그것을 다시 꿈꾸게 하나 보다.
꼭 무언가 하지 않아도 된다.
꼭 무엇이 될 필요도 없다.
다만 앞으로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나는 누구보다 나를 응원할 것이다.
내 인생의 요술 램프 지니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니까.
낭만 없는 여행 에세이 담고 있습니다.
글/ 사진_ Instagram@jongminzz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