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마살 이야기 15 Kazahstan, Almaty
행복해서 삶이 소중한 게 아니라 삶이 소중한 것을 알기에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한 것
이석원의 '언제 들어도 좋은 말' 중에서
어느날 TV속의 여행프로그램을 보며 히치하이킹을 하며 여행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었다. 허름한 배낭을 들처매고 걸으며 지나가는 차를 향해 엄지를 펼쳐보였다.
그모습을 보며 당당하고 씩씩한 그의 모습에 감명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히치하이킹이라함은 소심한 내게는
크나큰 도전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의 당당한 모습에 나또한 그런 멋진 여행경험을 만들어보고자 다짐했지만 히치하이킹은 소심한 내게 큰 도전의식으로 여기게 하였다. 우리는 가끔 우리가 이룰 수 없는 것을 이룬 대상을 보며 그들을 동경하곤 한다. 고작 주먹 속에서 엄지 하나 펼쳐 보이는 게 뭐가 그리 어렵나 할 수 있지만, 항상 도전과 담을 쌓고 드러나기 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 가려지길 원했던 나에게는 그들의 모습을 동경할만큼 멋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동경은 당장 피치못할 상황에 처한다면 그것들 조차 이겨낼 용기가 생겼다. 쉽게 말해 궁지에 몰린 상황에 처하니 도전적으로 되었다.
앞서 말한 상황이라함은 아무런 대책없이 일단 빅 알마티 호수를 가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시내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워낙 외곽이라 대중교통을 통해 다다를 수 없는 곳이었다. 그래서 대부분 다른 나라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은 택시를 대절하는 방법을 택한다. 하지만 용기보단 객기라고 해야하나. 돈은 없지만 가고 싶었기에 일단 부딪혀보자는 심산으로 무작정 알마티호수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갈 수 있는 버스를 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스에서 내린 종착지에서 4시간은 족히 가야 다다를 수 있는 알마티 호수는 나의 뒤늦은 후회를 불러일으켰다. 비록 오랜만에 북적이는 도심을 벗어나 고요한 산을 걸으며 지천에 널브러진 아름다움을 감상하기도 잠깐이지, 머지않아 막막한 길 앞에 생존본능이 일깨워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어떤 대중교통도 더이상 다니지 않는 이곳에서 나의 유일한 생사는 오로지 엄지손가락에 나의 운명이 달려있었다. 그러나 워낙 소극적인 성격 탓에 괜히 당당히 엄지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거절당하면 어떡하지라는라는 생각을 하며 상처 받을까 두려웠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멈춰주길 바라며 계속 차를 쳐다봤지만 운전자가 그것까지 헤아릴 리가 없다. 마치 어린 아이가 공부도 하지 않고 받아쓰기 100점을 맞게 해달라고 신께 간절히 기도하는 꼴이나 다름없었다. 정말이지 아무런 노력과 시도도 하지 않고 무엇을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어리석은 놀부심부였다.
그래서 마음을 다시 한번 다잡아봤지만, 막상 엄지를 당당히 꺼내 보이겠다던 굳은 다짐이 무색하게 막상 차가 달려오면 잠깐 숨었던 소심한 마음이 반짝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이렇게 무의미한 다짐을 반복하다가 결국 아무런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무엇이 두렵고 무엇이 그렇게 창피했던 던 것일까. 내가 엄지 하나 들어서 히치하이킹을 한다고 비난받을 일도 나는 왜 용기 내지 못하는 것일까. 스스로 생각해도 내가 너무 미련했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우선 마른 모래가 가득한 공터에 앉아 허기진 배를 채우며 마음을 다잡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가끔 이렇게 용기가 부족할 때 하는 나름의 자기 주문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20초의 용기'이다.
'그래 언젠가 본 어떤 영화에서 처럼 20초의 용기를 내보는 거야, 진짜 딱 20초만.
창피해도 용기를 내는 거야. 그럼 분명 상상도 못 할 근사한 일이 생길 거라고 했어.'
과자 한 봉지를 비우고 다시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엉덩이의 먼지를 털며 힘차게 일어났다. 저 멀리 세차게 달려오는 빨간 승용차를 보고 턱 밑까지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20초의 용기를 되새기며 주먹 깊숙이 파묻혀 있던 엄지를 땅줄기에서 돋아나는 죽순처럼 솟구쳐 보였다.
그 쭉 뻗은 팔과 짜리몽땅한 엄지에 나의 가냘픈 용기를 힘껏 담아냈다. 그러자 달려오는 자동차는 속도를 줄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더니 비상 깜빡이를 켜고 천천히 내 앞에 멈추었다. 그리고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앞 문을 열고 제끼며 말했다.
‘바오? 바오! 그그그... 빅 알마티 레이크!
(바오:빅 알마티 레이크의 카자흐스탄 언어)
누군가의 영웅담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았던 20초의 용기가 내게도 일어났다. 여행하며 늘 상상하고 꿈꾸었던 낭만이 이루어지는 가슴 짜릿한 순간이다. 마음먹은 것을 실행으로 옮기기까지 나의 내면에서 숯한 도전과 실패가 있었다. 그래서 쥐어짜낸 용기의 크기 만큼이나 기쁨의 크기도 클 수밖에 없었다.
시내와 달리 산에 올라오니 눈이 제법 높게 쌓여 있다. 가득 쌓인 눈 때문에 자동차는 정상까지 올라갈 수 없었고 나는 도중에 차에서 내렸다. 가는 길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콧물을 번지게 하는 기운찬 바람을 뚫으며 눈밭에 남겨진 발자국을 따라 올라 가기로 했다. 그리고 곧 겨울이라 눈이 뒤덮여 과연 호수인지 분간하기조차 쉽지 않은 알마티 호수에 도착했다.
고개를 들어 그 모습을 바라보자, 눈이 내려앉은 산과 호수에는 추운 계절의 냉혹함은 없었다. 다만 걸출한 아름다움이 주는 포근함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그 아름다움에 가까이 다가갈 수 없지만 바라만 보고 있어도 나는 충분히 행복했다.
잠시 찬바람과 함께 불어오는 행복을 느끼다 문득 무언가 달라졌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가 언제부터인가 소소한 것들에 행복을 느끼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소소한 행복에는 무엇을 가지면 행복할 거야, 무엇을 이루면 행복할 거야. 와 같은 전제조건이 필요 없었다.
생각해보면 그간 행복에는 전제조건이 필요했고, 그속에는 남들보다 높은 고지에 도달하기 위한 욕망이 담겨있었다. 그렇게 욕망의 항아리에 열심히 물을 채워보기도 했지만 그것은 마치 깨진 항아리 같은 것이라 아무리 채우고 채워도 충족시킬 수 없었다. 오히려 채우려고 갈망할수록 더 갈급해졌다.
가져도 궁핍했고 이뤄도 불안했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하지만 히치하이킹 한 번에 하늘 높이 뛸 것처럼 기쁘고, 흰이 가득 내려앉은 알마티 호수를 말없이 바라보는 나는 이미 행복했다.
그래서 한번 생각해본다.
행복이란 과연 무엇일까.
알마티호수 앞에 선 나는
생각했다.
그 답은 바로
지금 이 순간
알마티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빅 알마티 호수에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주로 택시를 대절하거나 버스를 타고 종착지에 내려 걸어가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홀로 하는 여행에서 택시를 대절하는 것은 부담스런 일이었기에 버스를 타고 간 후 벤츠보다 값진 두 다리로 걷는 걸 선택했다. 다만 흠이 하나 있다면 걸어 올라가는 시간만 해도 4시간이라는 것.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산 깊숙이 위치한 종착역에 도착했다. 그러자 시내에서는 한참 멀리 보이던 설산들이 어느새 당장이라도 오를 수 있을 것처럼 눈 앞에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북적이는 도심을 벗어나 고요한 산을 걸으니 별안간 평안이 찾아오고, 지천에 널브러진 아름다움이 내 걸음과 동행하니 지루함 같은 것은 없었다. 이 아름다움에 끝자락에서 곧 마주하게 될 알마티 호수를 생각하니 들뜨는 마음은 하늘 높이 설렌다.
'정상을 향해 가즈아!!'
.
.
.
.
하지만 머지 않아 히말라야도 등정하겠다는 용기와 포효는 한 여름밤의 꿈처럼 홀연히 사라졌다.
걸어 오르는 데 4시간, 내려오는 것까지 생각하면 8시간. 그리고 혹시라도 길을 잃기라도 한다면 참으로 암담하다. 그렇기에 가끔 더 나은 방안을 찾기 위한 탈룰라급의 태세전환은 필요한 법이다. 그리고 걷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 유일한 방법으로 히치하이킹이 있다. 다만 한 번도 해보지 않았을뿐더러 워낙 내성적인 성격이기에 꼭꼭 숨은 엄지를 꺼내 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상황이 상황인지라 소심하고 말고 이유를 덧붙이며 따질 여유도 없었다. 그저 지금은 용기를 내야할 이유만 찾으면 될 일이었다.
마침 아득히 먼 곳에서 차 한 대가 달려온다.
"가즈아, 가즈아!!"
.
.
.
.
에베레스트도 등정하겠다는 용기와 포효가 무색하게 엄지를 꺼내지 못했다. 괜히 당당히 엄지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거절당하면 어떡하지라는라는 생각을 하며 상처 받을까 두려웠다. 그리고 곧 다른 차가 달려왔다. 혹시 계속 쳐다보면 내 마음을 저절로 알아주고 멈추지 않을까 싶었지만, 운전자가 그것까지 헤아릴 리가 없다. 마치 어린 아이가 공부도 하지 않고 받아쓰기 100점을 맞게 해달라고 신께 간절히 기도하는 꼴이나 다름없었다. 정말이지 아무런 노력과 시도도 하지 않고 무엇을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어리석은 놀부심부였다.
그렇게 두 대의 차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냥 보내버렸다. 그러나 아직 기회는 남아있다. 곧 다시 한번 멀리서 달려오고 있었다. 좋아 이번에는 진짜 해보는 거야.
그러나 엄지를 당당히 꺼내 보이겠다던 굳은 다짐이 무색하게 막상 차가 달려오면
-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어. 다음에 오는 차에 도전하자.’
그렇게 차가 휑 떠나고 또 다른 차가 슝 달려오면
- ‘저 차는 너무 빨리 달린다. 분명 멈춰주지 않을 거야, 다음 차에 도전하자.’
이렇게 무의미한 자기합리화를 반복하다가 결국 아무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무엇이 두렵고 무엇이 그렇게 창피했던 던 것일까. 내가 엄지 하나 들어서 히치하이킹을 한다고 비난받을 일도 나는 왜 용기 내지 못하는 것일까. 스스로 생각해도 내가 너무 미련하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다.
우선 마른 모래가 가득한 공터에 앉아 허기진 배를 채우며 마음을 다잡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가끔 이렇게 용기가 부족할 때 하는 나름의 자기 주문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20초의 용기'이다.
'그래 언젠가 본 어떤 영화에서 처럼 20초의 용기를 내보는 거야, 진짜 딱 20초만.
창피해도 용기를 내는 거야. 그럼 분명 상상도 못 할 근사한 일이 생길 거라고 했어.'
과자 한 봉지를 비우고 다시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엉덩이의 먼지를 털며 힘차게 일어났다. 저 멀리 세차게 달려오는 빨간 승용차를 보고 턱 밑까지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20초의 용기를 되새기며 주먹 깊숙이 파묻혀 있던 엄지를 땅줄기에서 돋아나는 죽순처럼 솟구쳐 보였다.
그 쭉 뻗은 팔과 짜리몽땅한 엄지에 나의 가냘픈 용기를 힘껏 담아냈다. 그러자 달려오는 자동차는 속도를 줄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더니 비상 깜빡이를 켜고 천천히 내 앞에 멈추었다. 그리고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앞 문을 열고 제끼며 말했다.
‘바오? 바오! 그그그... 빅 알마티 레이크!
(바오:빅 알마티 레이크의 카자흐스탄 언어)
성공이었다. 정말 20초의 용기를 냈더니 누군가의 영웅담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근사한 일이 내게도 일어났다. 여행하며 늘 상상하고 꿈꾸었던 낭만이 이루어지는 가슴 짜릿한 순간이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아주 쉬운 것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쥐어짜낸 용기의 크기 만큼이나 기쁨의 크기도 클 수밖에 없었다.
나를 태워준 기사에게 땡큐 땡큐를 몇 번이고 외치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리고 이내 어색한 침묵이 찾아왔다. 차를 타고 가는 내내 고맙다는 말만 반복할 수는 없었고 무언가 얘기를 꺼내야 할 것 같았다. 우선 얘기를 꺼내기 앞서 감사의 의미로 주머니에 넣어 둔 누룽지 사탕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무슨 얘기를 꺼내야 할까 고민하던 중 그가 먼저 내게 말을 건넸다.
- "어디서 왔니?"
- "나는 한국에서 왔어!"
- "오 정말이니? 나 한국에 걸그룹 가수를 알고 있어!"
- "누군데?"
- "블랙핑크"
그가 운전 중에 주머니 속 핸드폰에서 제니의 사진을 보여주었고, 나는 그가 블랙핑크의 팬이라는 자명한 사실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 핸드폰 속 플레이리스트에 있는 블랙핑크 음악을 틀었다.
첫 히치하이킹이라 운전자와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지 몰랐는데 다행히 대화의 공백은 음악으로 풍성하게 채울 수 있었다. 전주에 들려오는 가느다란 휘파람 소리가 유난히도 반가운 날이다.
시내와 달리 산에 올라오니 눈이 제법 높게 쌓여 있다. 가득 쌓인 눈 때문에 자동차는 정상까지 올라갈 수 없었고 나는 도중에 차에서 내렸다. 가는 길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콧물을 번지게 하는 기운찬 바람을 뚫으며 눈밭에 남겨진 발자국을 따라 올라 가기로 했다. 그리고 곧 겨울이라 눈이 뒤덮여 과연 호수인지 분간하기조차 쉽지 않은 알마티 호수에 도착했다.
고개를 들어 그 모습을 바라보자, 눈이 내려앉은 산과 호수에는 추운 계절의 냉혹함은 없었다. 다만 걸출한 아름다움이 주는 포근함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그 아름다움에 가까이 다가갈 수 없지만 바라만 보고 있어도 나는 충분히 행복했다.
잠시 찬바람과 함께 불어오는 행복을 느끼다 문득 이곳에서 내가 무언가 달라졌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가 언제부터인가 소소한 것들에 행복을 느끼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소소한 행복에는 무엇을 가지면 행복할 거야, 무엇을 이루면 행복할 거야. 와 같은 전제조건이 필요 없었다.
생각해보면 그간 행복에는 전제조건이 필요했고, 그속에는 남들보다 높은 고지에 도달하기 위한 욕망이 담겨있었다. 그렇게 욕망의 항아리에 열심히 물을 채워보기도 했지만 그것은 마치 깨진 항아리 같은 것이라 아무리 채우고 채워도 충족시킬 수 없었다. 오히려 채우려고 갈망할수록 더 갈급해졌다.
가져도 궁핍했고 이뤄도 불안했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하지만 히치하이킹 한 번에 하늘 높이 뛸 것처럼 기쁘고, 흰이 가득 내려앉은 알마티 호수를 말없이 바라보는 나는 이미 행복했다.
그래서 한번 생각해본다.
행복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 답은 바로
지금 이 순간
행복은 이 순간
지금은 한 순간
행복이란 것은 미뤄둘 수 없으니
지금 남김없이 행복하기로 했다.
낭만 없는 여행 에세이 담고 있습니다.
글/ 사진_ Instagram@jongminz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