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화석이다

역마살 이야기 14 Kazahstan, Almaty

by 역맛살

낯설고 외롭고 서툰 길에서 사람으로 대우받는 것,

그래서 더 사람다워지는 것,

그게 여행이라서.


- 이병률의 '내 옆에 있는 사람' 중에서


다음 여정을 위한 비행기를 타기 위해 9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모스크바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절벽만큼이나 가파른 좌석에 등허리를 끼워 맞출 생각을 하니 자리에 앉기 전부터 등허리가 뻑적지근하다는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했을 당시만 해도 아주 합리적인 가격에 예매를 했다고 좋아했지만 역시 싼 값에는 이유가 있었다. 내가 예매한 기차는 뒤로 젖힐 수 없는 고정식의자였는데 마치 양반처럼 허리를 꼿꼿이 자세를 하고 밤샘기차를 타야하니 당연히 저렴한 가격일 수 밖에 없었다.

곧이어 23시를 넘어가며 자정이 되어갈 무렵, 저녁기차는 역을 떠나 새로운 행선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밤은 깊었고 잠은 쏟아지는데 막상 뉘일 곳 없는 내 머리는 자꾸만 중심을 잃고 옆사람의 어깨로 툭툭 두드렸다. 몇 번인지 헤아릴 수 없는 박치기가 여러번 이어지다 새벽 5시가 되어 기차는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과연 내가 잠을 잤는지 안 잤는지 알 수조차 없는 혼돈한 정신이었다. 그렇게 잠과 졸음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새벽의 사투 때문인지 유난히도 눈커풀의 중력을 거스르기 힘든 날이었다. 그러나 또 다시 비행기를 놓치지 않을까하는 공포는 순식간에 새벽녘의 피로를 장외홈런으로 날려버리듯 강력하게 나를 일깨웠다.

그뒤 몇 번의 버스와 지하철을 번갈아 탄 후 공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루블을 긁어 모아 생존을 위한 소량의 식량을 구매했다. 그러나 나의 뱃속은 블랙홀처럼 모든 것들은 홀연히 사라지게 만드는 곳처럼, 아무리 과자를 입에 넣어도 잠시의 허기짐만 달랬을 뿐 어떠한 포만감도 느낄 수 없었다. 이런 상황을 두고 어른들은 이렇게 말했나 보다. "애는 뱃속에 거지가 들었나"


[카자흐스탄의 도시, 알마티 도착]

설렘보다는 피로에 쩌들어 도착한 카자흐스탄의 옛 수도 알마티에는 러시아보다 좀 더 일찍 봄기운이 찾아왔다. 공항 밖에 나가 깊게 들이마신 공기에는 흐릿하게나마 봄기운이 느껴지는 듯 했다. 그리고 그것은 곧 히트텍과 목도리, 야상으로 겹겹이 감싼 중무장이 무의미해졌음을 의미했다.

한층 따뜻해진 날씨에 대비를 하지 못한 탓에 봄냄새와 함께 몸냄새도 진동했고, 간질거리는 봄기운과 함께 등짝이 간질거렸다. 야상 점퍼를 벗었지만 외투가 감싸고 있던 텁텁한 열기가 이미 체크남방에 베겼는지 옷에서 피어오르는 냄새가 사라지지 않았다. 사실 정확하게 옷에서 나는 냄새인지 씻지 못한 피부에서 나는 냄새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딱 한 가지 정확히 느꼈던 것은 씻지 못한 몸과 빨지 못한 옷의 조화는 평범한 냄새보다 훨씬 다채로운 냄새를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마치 너구리와 짜파게티의 조합으로 사천식 짜장의 맛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인지 우연히 찾아온 봄은 '우연히 봄'이라는 사랑 노래처럼 달달하지 않았다.


꾀죄죄한 모습으로 매리를 찾던 중, 저 멀리 매리와 그녀의 어머니가 나를 픽업하기 위해 공항까지 마중 나온 것이 보였다.

매리는 학교 국제협력부에서 짧게 만난 사이였다. 가깝지 않지만 인사정도는 사이였는데 매리는 카자흐스탄에 온 나를 위해 공항까지 픽업을 와주었다. 그 뒤로 숙소체크인과 환전 또한 도와주기로 했다.

그리고 때마침 내가 도착한 시간이 저녁을 먹을 시간이었고 그들은 내게 저녁식사까지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무엇을 먹고 싶냐는 그들의 질문에 나는 카자흐스탄 전통음식이 먹고 싶다고 했다. 그때 우리나라의 가성비 좋은 국밥집 같은 곳을 생각하며 말했던 것이었는데, 이런 예상과 달리 매리의 가족이 나를 데려간 곳은 거대하면서 호화스러운 전통 레스토랑이었다.

그 레스토랑은 이런 거지같은 모습으로 레스토랑 문턱에 발을 들여놓기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러시아에서부터 시작된 일명 ‘러시아발 굶주림’은 염치보다는 본능에 충실하도록 만들었다. 곧이어 카자흐스탄식 파스타, 소의 연골, 스페인식 만두와 호박만두, 묵사발 비슷한 음식들이 나왔다. 사실 그 음식들은 단지 나의 추측이었을 뿐 사실 하나같이 무슨 음식인지 모르는 것들이었다. 그래도 내게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들의 사랑과 정성을 최선을 다해 맛있게 먹는 것뿐이었으니.


호화스러운 만찬들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름의 달달함과 묵직한 포만감을 선사해주었다. 그들의 호의에 대한 감사로 몽골에서 산 초콜릿 와인과 누릉지 사탕을 건네며 말했다.

- “제게 이렇게나 많은 것들을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감사는 무슨, 우리는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이야. 그리고 너는 우리에게 귀한 손님이니까.”

매리 어머니의 짧은 대답에 나도 모르게 갑자기 가슴 깊이서 울컥한 감정이 들기 시작했다. 비록 서툰 땅을 거니는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가족의 포근함때문이기도 했고 보잘 것 없는 나를 소중히 여긴다는 감동때문이기도 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학교를 다니며 느꼈던 것 중 한 가지가 있다면, 내가 무언가 소중하거나 특별한 존재라기보다는 불편하거나 마치 그림자같은 존재였다는 사실이다. 아마 졸업반이 되었을 즈음이었을까, 사람들은 나 같은 사람을 보고 시조새, 암모나이트와 같은 구시대의 유물정도로 여기며 불편해하기 시작했다. 나또한 그런 불편함때문인지 친한 동기친구들 외에는 벽을 쌓고 지냈던 것 같다. 그리고 어느순간 주변의 친구들도 서서히 취업을 하거나 취업준비를 위하여 제갈길을 떠나거나 휴학을 하기 시작했다. 나 또한 학년이 올라갈수록 해야할 일들과 더불어 스스로에 대한 더 많은 책임감을 가져야 했기에 주변에 신경쓸 여유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편하다는 이유로 혹은 해야할 것이 많다는 이유로 혼자이기를 택했다. 아니 어쩌면 혼자가 된 외로움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핑계거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어찌됐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외로움과 무뎌졌고 익숙해졌다.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어느순간 주위사람들은 없어지고 나를 찾아주는 사람 또한 사라져가며 누군과의 관심에서 점점 잊혀져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여기든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물론 혼자라는 사실또한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나는 내가 가야할 길을 묵묵히 견디며 나아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점점 희미한 존재가 되어간다는 것은 가끔씩 참 허전하고 공허했다.



희미해지더라도

흐릿해지더라도


기억 속 어딘가

남아있을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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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낭만 없는 여행 에세이 담고 있습니다.


글/ 사진_ Instagram@jongminz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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