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마살 이야기 12 Russia, S.T. Pterberg
바람이 오면
오는 대로 두었다가
가게 하세요
그리움이 오면
오는 대로 두었다가
가게 하세요
아픔도 오겠지요
머물러 살겠지요
살다 간 가겠지요
세월도 그렇게
왔다간 갈 거예요
가도록 그냥 두세요
- 도종환 시인의 '바람이 오면'
어둠이 내려앉은 도시, 고막에 달달한 감동을 선사하는 음악들이 거리 곳곳에서 아련히 들려온다. 여전히 스산한 바람이 스미는 차가운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음악으로 채운 거리의 풍경은 따스했다. 그러다 문득 어디선가 잔잔한 기타의 멜로디가 바람과 함께 흐르며 나의 귓가를 스쳤다. 음악에 홀린 듯 이끌려 간 곳에서 벽에 기대어 홀로 연주하고 있는 기타리스트가 보였다. 50만원이 넘는 큰 지출이 때문에 어떤 것에도 궁색한 주머니 사정이었지만, 고독하게 거리 위의 낭만을 채워주는 기타 공연은 굳게 닫힌 나의 주머니를 열어젖히는 만능열쇠와 같다. 그렇게 철옹성같은 지갑을 열어 작은 마음의 표시를 한 뒤 그의 연주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곧이어 서로를 목도리처럼 감싸고 있는 몇몇 커플들이 내 주위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렇다, 음악이 있는 곳에는 낭만이 있었고 연인들도 있었다. 혼자는 나 혼자인 것 같은 이 시간 속에서 나의 허전한 옆구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추운 겨울의 한기말고는 없었다.
하멜론의 피리 소리라도 들었는지 사람들은 음악소리를 듣고 점점 더 모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번잡해진 그곳을 피해 나는 광장을 벗어나 조용한 곳으로 발길을 옮기기로 했고, 나의 발길이 닿은 곳은 네바다 강이었다.
겨울의 강추위에 모두 얼어버린 네바다 강은 거리 위에서 뿜어져 나오는 주홍색 가로등 불빛을 희미하게 머금었다. 비록 몸을 움츠러들게 만드는 강추위지만 겨울이라는 계절이 가지는 차분함은 나름의 낭만이 있었다.
그렇게 얼마동안 강 앞에 앉아 좋아하는 음악 하나를 들었다. 그 잔잔한 풍경에 고요한 저녁 감성이 더해졌고 이어폰으로 들려오는 음악은 무르익은 분위기를 덧칠했다.
혼자서도 외로움 같은 것 없이 잘 지내고 있었는데, 문득 찾아온 예리한 감수성은 태연스러운 삶의 테두리 안에 평온함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멍하니 앉아 네바다 강을 바라보다 어느새 작은 눈물방울들이 모여 내 눈동자를 흐리기 시작했다.
가끔 나는 알 수 없는 외로움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이렇게 불쑥 찾아온 외로움 사랑에 관한 그리움일까.
아니 그 명확한 주체는 없다.
잠시의 사랑도 아니고,
지나간 사랑도 아니고,
혼자만의 사랑도 아니다.
그저 무엇에 대한 사랑.
'무엇'이라는 뜻처럼 그 명확한 주체는 정해지지 않았고 밝힐 필요도 없는.
그래서 그리움이 맺힌 눈물의 주체는 정해지지 않았고 밝힐 필요도 없다.
나는 단지 외로웠을 뿐이고, 그것이 눈물로 표현된 것뿐이니
밤이 깊어 그리움이 깊은 밤
밤이 깊어 외로움도 깊은 밤
누군가 보고 싶은 이밤
낭만 없는 여행 에세이 담고 있습니다.
글/ 사진_ Instagram@jongminzz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