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마살 이야기 13 Russia
처음에 러시아를 경험 전에는 새로운 곳을 여행한다는 설렘보다는 미지의 공포가 마음 속에 자리잡았다. 인종차별주의자 스킨헤드, 웃음기 없고 불친절함, 불곰같이 과격한 성격 등 내안에 있는 여러 가지 편견때문이었다. 또한 막상 여행을 떠나려고 하니 눈에 들어오는 것들은 인종차별에 의한 살인이나 집단폭행 같은 온갖 부정적인 내용들이었다. 원래 뉴스란 부정적인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하더라도 막상 내가 여행할 곳에 그런 일이 있다라고 한다면 마치 대부분이 뉴스내용처럼 위험할 것만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실제로는 극히 소수의 일이라고 치더라도 그런 일이 내게도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그래서일까 이런 막연한 두려움은 나의 풍부한 상상력과 케미를 이루며 생생히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생각했던 러시아와 경험했던 러시아는 분명 달랐다. 물론 처음에 만났던 환전소의 여직원이나 숙소의 호스트를 만났던 그때만 해도 일사불란하게 솟구치는 확신으로 ‘역시, 사람들 말을 틀리지 않았어!’ 생각한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어떤 책에서 ‘잘 웃지 않는 러시아인들’이라는 제목으로 웃음이 적은 러시아인들에 대해 쓴 글을 봤다. 책의 내용대로 여행하는 동안 러시아 사람들의 웃음을 별로 보지 못한 것 같다. 아니면 이미 머릿속에서 잘 웃지 않는다는 편견으로 인해 유독 웃음기 없는 모습만 눈에 보였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돌이켜 생각해보니, 잘 웃지 않는 모습 때문에 사람들이 차가워 보였을지는 몰라도 분명 그들은 안쓰러운 이방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온기를 품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어떤 버스를 타야 할지 몰라 멘붕에 빠진 내게 먼저 다가와 도움을 필요하냐고 물어봐줬던 커플, 여행책자를 보며 지하철 타기를 망설일 때 도와줬던 역무원들, 기차역 티켓을 뽑아줬던 학생, BTS팬이라면서 초콜릿 하나를 선물로 줬던 어린 소녀, 샤슬릭을 대접해주었던 어느 아저씨.
그때 감사했던 분들에게 얼핏 주어 들은 러시아말로 마음을 표현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악의없이 한국어로 욕을 하고 말았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감사한 나의 마음을 정확하게 전하고 싶다.
시바시바 말고 쓰파씨바!
편견처럼 얻기 쉽고, 또한 버리기 어려운 것은 없다.
블로그와 카페에서 러시아에 대한 정보를 찾던 중, 많은 사람들이 러시아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종차별주의자인 스킨헤드, 웃음기 없고 불친절한 러시아인들, 거대한 백인들의 몸집, 불곰같이 과격한 성격. 아마 이것들이 러시아 하면 떠오르는 생각들일 것 같다. 그래서일까 나의 이런 막연한 공포심은 풍부한 상상력과 케미를 이루어 더욱 두려움을 키워나갔다. 괜히 혼자 길을 걸으면 누군가 내게 인종차별을 하지는 않을까 혹은 무슨 실수라도 했다가는 효도르의 얼음 파운딩이 쏟아지는 않을까 걱정됐다. 또 막상 여행을 떠나려고 하니 눈에 들어오는 것들은 인종차별에 의한 살인이나 집단폭행 같은 온갖 부정적인 내용들로 인해 등골이 오싹했다. 그런 일이 내게도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이러한 이유로 러시아에 발을 딛기 전까지 새로움의 설렘보다는 미지의 공포가 마음 속 대부분에 자리잡았다.
하지만 생각했던 러시아와 경험했던 러시아는 분명 달랐다. 물론 처음에 만났던 환전소의 여직원이나 숙소의 호스트를 만났던 그때만 해도 일사불란하게 솟구치는 확신으로 ‘역시, 사람들 말을 틀리지 않았어!’ 생각하고 있었지만.
버스 정류장에서 어떤 버스를 타야 할지 몰라 멘붕에 빠진 내게 먼저 다가와 도움을 필요하냐고 물어봐줬던 커플, 여행책자를 보며 지하철 타기를 망설일 때 도와줬던 역무원들, 기차역 티켓을 뽑아줬던 학생, BTS팬이라면서 초콜릿 하나를 선물로 줬던 어린 소녀, 샤슬릭을 대접해주었던 어느 아저씨.
어떤 책에서 ‘잘 웃지 않는 러시아인들’이라는 제목으로 웃음이 적은 러시아인들에 대해 쓴 글을 봤다. 책의 내용대로 여행하는 동안 러시아 사람들의 웃음을 별로 보지 못한 것 같다. 아니면 이미 머릿속에서 잘 웃지 않는다는 편견으로 인해 유독 웃음기 없는 모습만 눈에 보였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돌이켜 생각해보니, 잘 웃지 않는 모습 때문에 사람들이 차가워 보였을지는 몰라도 분명 그들은 안쓰러운 이방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온기를 품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당시에 얼핏 주어 들은 단어 하나로 그들에게 감사함을 표현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악의없이 한국어로 욕을 하고 말았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감사한 나의 마음을 정확하게 전하고 싶다.
시바시바 말고 쓰파씨바!
시바시바든 휘바휘바든
아모쪼록 감사합니다!
낭만 없는 여행 에세이 담고 있습니다.
글/ 사진_ Instagram@jongminzz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