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뤼 피플

역마살 이야기 16 Kazahstan, Almaty

by 역맛살

Party rock is in the house tonight

Everybody just have a good time


파티락이 오늘밤 여길왔어

모두 그냥 좋은시간을 가져


- LMFAO의 Party Rock Anthem 중에서



[나우르즈]

카자흐스탄의 3월에는 우리나라의 설날과 추석처럼 ‘나우르즈’라는 큰 민족명절이 있는데 카자흐스탄 뿐만 아니라 여러 중앙아시아 국가에서는 이 기간 동안 성대한 전통 축제가 열린다. 운이 좋게도 내가 여행하는 기간과 나우르즈의 시기가 겹치게 되었는데 내가 묵고 있던 호스텔의 주인 아주머니가 가족 식사에 나를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아주머니의 초대를 받고 간 곳에는 몽골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먹을 수 없을 줄 알았던 말고기와 함께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이는 전통음식들이 가득히 차려졌는데, 떠받드는 상다리가 심히 걱정될 정도였다. 나의 건조한 위장은 항상 기름의 고갈로 힘겨웠는데 아주머니의 초대로 뻑뻑한 위장에 원 없이 기름칠을 할 수 있었다. 그럼과 동시에 의도치 않았던 다이어트로 잃어버렸던 나의 몸무게를 서서히 찾아가고 있었다. 배에 점점 불어나는 살덩이와 오랜만에 재회하니 참으로 반가운 일이었다.


식사를 다마치고 가장 어른인 할머니가 노래 한 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약간은 구슬픈 곡조의 노래였는데 짤막한 할머니의 노래가 끝나자 옆사람이 다음을 이어 노래를 시작했다. 그리고 한 명씩 차례대로 돌며 릴레이 노래방이 펼쳐졌다. 물론 나 또한 그것을 피해갈 수는 없었고, 어쩌다보니 내 차례까지 성큼 다가왔다. 쑥스러운 마음에 손사래 쳐보지만 식탁에 둘러앉은 모두가 괜찮으니 노래 한 곡 뽑아보라며 기대에 찬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한껏 기대 어린 그들의 눈빛은 지극히도 소심한 나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하는 수 없이 무슨 노래를 부를지 곰곰이 생각해보다 나의 노래방 18번 응급실을 번뜩 떠올랐다. 하지만 땅으로 곤두박칠칠 이후의 분위기를 차마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잠시 난감한 웃음을 지어보이면 조금만 기다려달라 했는데 나에게 집중된 시선으로 인해 머릿속의 공허가 찾아왔다. 그러던 중 호스텔 주인 아주머니가 한국 전통 음악을 불러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는데, 그 순간 번뜩하고 '아리랑'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침을 꼴딱 삼키며 목을 가다듬고 떨지 않도록 긴장된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모두가 숨죽이고 마치 내 얼굴을 구멍이라도 뚫을 기세로 또렷하게 응시하기 시작했다. 잠시 뒤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첫 스타카토를 뗐다.

"ㅇㅏㅏㅏ리 라앙 ㅇㅏㅏ리 라앙 ㅇㅏㅏ라아리요 오오오

ㅇㅏㅏㅏ리 라앙 고오개에로오 넘어간드아ㅏㅏㅏ

나ㅏㅏ를 버리고 가시는 니이믄으으은 (···)"


노래를 시작하기 전, 목을 몇 번이고 가다듬었지만 노래를 시작하자 의지와 상관없는 바이브레이션이 가득하게 흘러나왔다. 그 의도되지 않은 진동을 없애고자 목청껏 데시벨도 올렸지만 끝에 흐려지는 긴장어린 바이브레이션은 변함없었다.

결국 어설프게 아리랑은 끝이 나고 말았다. 하지만 어설픈 끝마침에도 그들은 내게 큰 박수를 치며 격려했고 할머니께서는 나의 목소리가 아주 아름답다며 칭찬했다. 노래를 잘 불렀다고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내가 못 부르긴 했나보다. 변변치 않은 실력에 민망해서 나의 두 볼이 후끈하게 달아올랐지만 카자흐스탄에서 우리나라의 아리랑을 부를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의 자긍심이자 자부심이었다.


맛있는 식사와 낯부끄런 공연이 끝난 후 같은 숙소에 머물던 알라만을 따라 카자흐스탄 가수의 공연을 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공연은 백화점에 마련된 부스에서 이루어지는 작은 공연이었고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여성 보컬을 필두로 구성된 밴드였다. 노래가 참 좋았지만 카자흐스탄어의 가사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더라도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음악아니겠는가. "음악은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듣는 것이다."라고 했던 음악의 거장 베토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나보다.

음악은 멜로디 하나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니 것, 음악은 언어를 초월하는 예술, 음악은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 무언가 예술이니까 어떤 식으로 의미를 부여해도 뭔가 그럴싸 해진다. 그러니 어느 말을 붙여도 예술이 되는 음악은 진정한 예술이 아닐 수 없다.


[홈파티]

공연까지 보고 집에 돌아 오니 저녁 22시가 훌쩍 지나 있었다.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하던 중 예라실이라는 친구가 일을 끝 마치고 돌아왔다. 언제나 그렇 듯 그는 나를 보며 “하와 유”라며 인사말 건넸다.그러나 평소에 짧은 인사와 악수만 하던 예라실이 이번에는 내가 피곤하지 않으면 같이 홈파티에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그순간 뜨거운 피와 함께 심장이 격렬하게 요동치는 느낌을 받았다. 헐리우드 영화에서만 보던 홈파티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상상은 오로지 그것만으로도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 덕분에 늦은 시간의 피로따위는 당장 숙소를 나서기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를 따라간다는 게 왠지 내키는 일은 아니었지만 호기심은 두려움보다 강했다.

잠시 뒤 젖은 손으로 눌린 머리를 대충 정리하고선 그와 함께 우버택시에 올라탔다. 그리고 택시는 시내를 벗어나 가로등도 없는 길로 가더니 곧이어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올라가는 순간 갑자기 온 몸의 감각이 곤두서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거지'라는 물음이 그제서야 머릿속에 떠올랐던 것이다. 도무지 이런 곳에서 파티를 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러자 머릿속에 온갖 부정적인 잡생각들이 가득차기 시작했다. 인적이 없는 어둠 속에서 도무지 공포의 상상을 끊어낼 수 없었다. 나는 지금껏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을 것이라 생각했다. 100세 시대에 아직 20대 밖에 되지 않았으니 당연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당연한 것이 결코 당연하지 않을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쁘지만은 않은 인생이었다만 이렇게 인생사 작별을 고한다면 좋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만일 이곳에서 정말로 내게 무슨 일이 닥친다면 과연 저항이나 할 수 있을까. 부디 간절히 아무 일 없이 그저 살아서만이라도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

나의 간절한 바람을 들어주셨을지 모르지만 어느덧 어두컴컴한 집 앞에 도착하고 택시기사는 떠났다. 예라실은 어느 집의 대문 앞으로 나를 데려갔고 대문과 가까워질수록 두려움과 긴장감은 나를 집어삼킬 듯 했다. 태연한 척 그의 옆을 나란히 걸었지만 두 눈은 사방을 흩으며 경계를 늦추지 않고 언제든 도망칠 준비와 공격할 준비 또한 늦추지 않았다. 그리고 대문이 열리는 순간 피 흐르는 감각이 머리끝까지 솟구치며 서늘한 긴장감의 최정점에 달했다.


그런데 이게 왠걸, 두려워했던 상황과는 달리 세 명의 친구가 마중까지 나오며 나를 환대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악수를 청하자 힘줄이 바짝 섰던 주먹을 풀고 그들의 손을 잡아 악수를 했다. 나중에 예라실에게 집이 왜 이렇게 외진 곳에 위치했는지 물어보니 홈파티가 시끄러울 수 있으니 인적이 드문 별장을 하루 동안 빌렸다고 했다. 도대체 어떻게 놀려고 이렇게 먼 곳까지 빌린 걸까 싶은 순간이었다.

집 안으로로 들어가니 샤슬릭 굽는 열기와 술냄새가 가득했다. 물론 신나는 음악과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느끼며 곧바로 무르익은 파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천천히 집 안을 살펴보니 대략 20명 정도의 사람들이 있고, 그 중에는 이미 잔뜩 취기가 올라 두어잔만 더 마시면 집까지 기어갈 것 같은 친구들이 꽤 눈에 띄었다. 몇몇은 음악에 맞춰 노래를 따라 부르지만 이미 한참 꼬부러진 혀로 얼버부리는 노랫말을 나는 알아들을 수 없다.


홈파티에 와서 처음 알게 된 것인데 초대받은 서로가 일면식이 없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 아무래도 생일을 맞게 된 사람이 자신의 지인을 초대한 것이니 초대받은 사람끼리는 잘 모르는 듯 했다. 그래도 그들은 어색함 없이 서로가 아는 사이든 모르는 사이든 음악에 따라 신나게 춤을 추고 자유롭게 잔을 기울이며 먹고 마셨다.

한 가지 재미있던 것은 이곳에서도 로그인샷이라는 것이 있었다.

이미 코알라의 형상을 닮아가는 사람들은 파티가 시작된지 한참 뒤에 도착한 나와 예라실에게 보드카와 맥주를 섞은 '핵'폭탄주를 타주었다. 역시 보드카는 보드카였는지 3잔을 내리 마시자 금방 취기가 올라왔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피곤한 사람은 2층으로 올라가 잠을 잤고 끝까지 남아있는 사람들은 술이 떡이 되도록 밤새 마셨다.

점차 시간이 갈수록 점점 눈꺼풀이 느슨해지고 머릿속은 아리송한 느낌들이 가득찼다. 알콜이 들어간 몸은 평소보다 뜨거운 피를 만들고 있는지 후끈후끈 달아오르고 입술의 말은 0.5배속으로 느려지는 듯 했다. 역시 알코올의 세계는 우주의 세계처럼 정말이지 무궁무진했다.


모두가 즐겼고 모두가 놀았다. 그리고 모두가 향락에 빠진 사이,

일렁이는 태양은 완연한 밤 사이로 정직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나도 친구들을 다 초대해서 꼭 홈파티를 열거야.

먹을 것과 마실 것이 넘쳐나고 신나는 음악과 젊음이 넘쳐나는

그런 홈파티 말이야.


어디 보자, 누구를 부를까

승헌이, 명환이, 승민이, 태현이, 지훈이, 준태, 상원이, 정호, 성현이, 예훈이 (···)

에휴 됐다, 무슨 파티냐

그냥 PC방이나 가자.


#남자 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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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없는 여행 에세이 담고 있습니다.


글/ 사진_ Instagram@jongmin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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