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온 학교x

역마살 이야기 19 Korea

by 역맛살

학생들의 눈망울은

초롱하고

나의 눈망울은

몽롱하다.


나는 지금

먹고 싶다.

자고 싶다.

가고 싶다.


#수업 시작 1분


거무스름한 돌김 한 장을 붙여놓은 것 같았던 비행기 창에는 눈을 떠보니 어느새 빛이 드리우고 있다. 꾸벅꾸벅 불편한 잠을 청하는 사이 타슈켄트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고향에 성큼 가까워진 것이다. 그와 동시에 나는 꿈결에서 조금씩 깨어나는 중이다. 짧았던 꿈의 시간이 흩어지고, 나는 이 혼곤한 꿈 속에서 끝나지 않을 여행을 거닐며 살아가고 싶다. 하지만 꿈에서 깨어 마주해야 하는 현실 또한 내 삶의 일부였기에 나는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잠시나마 현실의 부담을 무뎌지게 해주던 여행이란 마취제가 없으니 좁은 의자에 앉아 귀국을 기다리는 내 마음을 천근만근이다.


곧이어 총성 없는 전쟁터에 도착했고 각개전투는 시작됐다. 더 이상 방공호는 없다. 살아남기 원한다면 당장 두려움의 늪에서 나와 앞으로 달려야 한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오로지 하나의 일념만 존재한다.

‘빨리 짐을 챙겨서 오후 수업에 가야 한다. F학점만큼은 모면해야 한다.’

여행을 떠나기 전 무턱대고 떠나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F학점을 피하기 위한 최소한의 결석일수만 다녀오기로 했었다. 그래서 나름 딱 떨어지게 일정을 맞추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늦어진다면 나는 재수강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런 절박한 마음을 알 리 없는 내 배낭은 무려 30분이 지나서야 벨트 위로 올라왔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허름한 짝퉁 다우터 배낭에 이상한 노란색 물체가 채워져 있다는 것이다. 짝퉁 다우터 배낭을 메고 다닌다고 문제가 될 것은 없었는데 도대체 이유가 뭘까. 영문도 모른 채 노란 물체가 채워진 배낭을 메고 나가니 경쾌한 벨이 울리기 시작했고 나는 세관의 부름을 받았다. 친구들을 주기 위해 샀던 다량의 미니어처 보드카가 문제였다. 다행히 큰 문제는 없었지만, 아까운 시간만 잔뜩 까먹었다.


장딴지에 있는 근육을 잔뜩 모아 재빨리 공항버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오늘까지 결석하는 날에는 정말 끝장이기 때문에 눈썹 휘날리게 허겁지겁 달리며 간신히 공항버스에 올라탔다.

아슬아슬하게 버스에 오르자 곧 버스는 출발했고, 차창 밖을 바라보니 도로 위에 즐비한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나의 고향 귀환을 환영하는 듯 거대한 태극기가 바람에 휘날리며 힘차게 휘날리고 있었다. 신기하거나 낯선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익숙하고 친숙하다.


그렇게 잠시 바깥 세상을 구경하다 전날 아침에 숙소를 떠난 뒤로 누워서 잠을 자지 못했기에, 한산한 버스 안에서 의자를 한껏 뒤로 젖혀 시래기처럼 찌든 몸을 눕혔다. 하지만 이놈의 시차 때문인지 아니면 걱정 때문인지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다. 그래서 잠시 눈을 감아 잠시 후 있을 상황들을 머릿속에서 모의실험 해보기로 했다.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상상하며 그에 적합한 핑계와 대응방안을 생각해보지만, 어찌 됐든 이런 것들로 나의 3주간의 결석을 채울 수는 없으니 마음은 더 복잡해질 뿐이었다.


[학교에 도착하다]

폐속으로 스며드는 미세 먼지가 아직은 낯설다. 그리고 나는 개학날이 한참 지난 시점에서, 강의실을 찾으러 학교 이곳저곳을 누비고 있다. 학교에 발이 밟히는 곳 어디든 형형색색의 포스터와 플래카드가 눈을 자극한다. 내가 취준생이라 그런지 취업과 관련된 것들이 특히 눈에 들어온다.

공기업 대비 특강, 채용설명회, 기적의 자소서 클리닉, 공무원 합격설명회, 임용고시 합격자 축하, 일자리 페스티벌, 취업 멘토링, 취업동아리 모집, 실전면접교육, 취업캠프.

취업과 관련된 것으로 가득한 대학교의 풍경은 언제나 익숙하다. 그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청춘의 요람이라고 표현하던 대학교가 언제부터인지 자본과 시장의 원리에 따라 노동력을 공급하는 인력 사무소가 되어버린 것 같다.

하긴 생각해보면 고등학교 때 입시 준비만 집중하며 나를 돌아보지 않았고, 단지 성적에 맞는 학교와 학과를 물색했을 뿐이고, 그중에서 취업이 잘 된다는 학과를 선택했을 뿐이고, 다들 열심히 하니까 그냥 뭐라도 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으니 남들 하는 대로 했을 뿐이고, 그렇게 해야 할 일에 쫓기다 나는 지금 이런 형상일 뿐이고.

맞다. 내가 대학교가 어쩌니 저쩌니 하며 이런 말 할 처지는 아니다. 그냥 오랜만에 느껴보는 학교라서 그런지 잠깐의 낯선 생각들이 머리를 채웠던 것뿐이다.


늦지 않게 강의실을 찾았고 강의실에 들어가기 앞서, 최소한의 예의를 위해 민트색 욕실화를 다른 신발로 갈아 신었다. 그러나 잔뜩 눌려 윤기 나는 머리와 거뭇거뭇하게 난 수염, 그리고 땀냄새 나는 옷은 마치 여행자의 지울 수 없는 표식처럼 끈덕지게 남아 있었다. 혹여나 이런 누추한 모습이 다른 학생에게 피해를 줄까 봐 맨 뒷자리에 앉아 그림자처럼 숨 죽여 앉았다. 그리고 곧 교수님이 들어와 출석을 부르기 시작했고, 내 이름을 호명하더니 미간을 좁게 찌푸린 채 끝나고 잠깐 보자고 한다.


수업이 끝나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교수님께 갔다.

- “안녕하세요 교수님, 김종민이라고 합니다.”

- “자네 3주 동안 결석한 거는 알고 있나?”

- “네 알고 있습니다.”

- “앞으로 지각이라도 한번 하면 바로 F 처리하겠네.”

- “네 알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다행히 교수님은 결석의 이유는 묻지 않았다. 그리고 다행히 나는 F를 받지 않았다.

정말 하루 내내 숨 가쁘게 달렸다. 그리고 이제서야 턱막힌 들숨을 허공으로 모두 털어냈다.




이제 그만 집에 돌아가 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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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말이 되서야 강의실을 찾으며

이리저리 방황하는 모습은


갈팡질팡이라는 사자성어로 표현되는

나의 20대와 너무 닮아 있었다.


그렇게 나의 4주간의 방랑이 끝나자

나의 방황이 다시 시작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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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허. 저거면 내가 강단에 서도 되겠는 걸.

역시 세상 속에서 배울 수 있는 게 더 많았어.

지성을 살찌우는 비료





낭만 없는 여행 에세이 담고 있습니다.


글/ 사진_ Instagram@jongminz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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