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20번째 이야기 집

by 역맛살

돌아온 집안의 공기는 변함없이 싸늘했다. 나의 여행은 어땠는지 음식은 어땠는지, 아픈 곳은 없었는지 재미는 있었는지 물어봐주는 사람은 없었다. 적막한 방 안으로 들어가 배낭을 내려놓고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방 안은 변함없이 외로웠다.


엄마가 집을 나갔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엄마가 나간 후로도 아버지의 도박과 폭력은 끝내 변하지 않았다. 그런 아버지도 고2 때 우리를 버리고 집을 나갔다. 나와 지적 장애를 가진 여동생만 집에 남게 되었다. 어둠은 깊어졌고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고모가 마련해주신 전셋집에서 근근이 살았다. 하지만 끊임없이 밀려드는 아파트 관리비와 전기세 등은 감당하기 힘들어 언제나 체납고지서의 독촉을 받았다. 그러다 처음 알게 된 사실이 있었는데, 그것은 아파트 관리비가 4개월이나 밀리면 단수가 되어버린 다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고모에게 전화해서 관리비를 받았다. 그 상황이 너무 싫었다. 고모한테 계속 돈을 요구하는 것도 싫었고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고모의 한 숨소리도 듣기 싫었다. 하지만 살아야 했다.

떨어지지 않는 입으로 고모에게 마치 죄인이 된 것처럼 관리비와 생활비를 부탁했다. 가난은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었다. 오로지 살기 위해 모든 염치를 불구하고 삶을 견뎌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겠냐 마는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면 흔들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어린 내게 바람은 너무도 버겁게 휘몰아쳤다.


시간은 흘러 고등학교 졸업식이 되었다. 활기와 사람들이 넘치는 강당에서 친구들과 친구들의 부모님이 웃으며 사진을 찍고 졸업을 축하하는 모습을 보았다. 친구들 모두가 가족과 함께 있는 즐거움 속에서 내 모습은 초라했다. 혹시라도 외톨이 같은 내 모습을 주변 친구들이 보기라도 할까봐 도망치 듯 강당을 빠져나와 집으로 가는 버스에 덩그러니 혼자 앉았다. 집에 돌아와 밥과 달걀프라이와 김치를 식탁에 놓고 앉았다.

갑자기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동안 참고 억눌러왔던 모든 것들이 격렬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괜찮다며 억누르던 외로움과 외면했던 감정의 덩어들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왔다.

하루하루를 살아냈지만 늘 반복되고 늘 힘든 나날 속에 다가오는 내일이 두려웠다. 얼마나 더 살아내고 견뎌야 이 고통의 끝에 도달할 수 있을까.


그날 나는 미친 듯이 울고 죽을 듯이 울었다.

하지만 내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또다시 깊은 고독에서 홀로 견뎌 내야 했다.

늘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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