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 할머니

주름살 이야기 21 Korea

by 역맛살


학교생활에 어느덧 적응을 하고 공채시즌에 맞춰서 괜찮은 기업이라면 가리지 않고 원서를 냈다. 운이 좋게도 4개의 기업에서 시험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한 곳에서는 면접까지 갈 수 있는 행운이 따랐다. 정말이지 대학입시가 끝나면 이렇게 가슴 조리는 시험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인생은 역시 산 넘어 산이었다.


비록 여행에서 일상으로 복귀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짧았지만, 절박한 마음으로 거울 앞에 서서 수없이 연습을 반복하며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합격 발표날짜가 다가왔고 혹시나하는 초조한 마음으로 결과를 조회해보았다.

먼저 우리 기업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지원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안타깝게도 이번 채용에서는 합격의 기쁜 소식을 전해드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지원자님의 뜨거운 열정과 소중한 관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이번 채용전형에 더 이상 기회를 드리지 못하게 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다음 기회에 귀하의 합격을 진심으로 기원하겠습니다.

나는 불합격이었다. 자질구레한 언어들의 겉치레로 불합격이라는 단어를 포장했지만 불합격이라는 단어가 주는 냉기는 어쩔 수 없이 차가워다. 돌아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잊고 있었지만 이곳은 핏기없는 약육강식의 세계였다. 물론 남들보다 준비기간이 짧았다는 핑곗거리도 미리 만들어놨지만 무기력함은 막을 수 없었다. 그리고 사실 그전에 이미 면접이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에 떨어질 거란 것도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작은 일말의 희망을 품고 있었다.

‘수없는 지원자들을 봤던 면접관이니 그들의 눈썰미라면 나의 열정과 의지를 봤을 거야.’

'아직 결과는 나오지 않았으니 희망을 버리지 말자.'

‘혹시라도 초심자의 행운이 따라줄 수 있잖아?’

그러나 현실은 그저 현실이었고, 비교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게임 앞에 행운이나 기적 같은 낭만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다음을 위한 좋은 경험이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지만, 그렇다고 들이킨 탈락의 고비가 달달할 수도 없었다.


착잡한 마음을 추스리고 오랫동안 찾아뵙지 못한 할머니 댁에 갔다. 작은 연탄방에 앉아 마늘을 까고 있던 할머니는 나를 환하게 반겨주며 면접은 잘 봤냐고 물으신다.

-“할머니 이번에는 아쉽게 떨어졌어요. 아마 조금만 하면 될 거 같아요.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이고 우리 손자 고생많았다. 그래 조금만 힘내거라. 이 할미는 다른 것 없이 우리 손자 하나 잘되는 거 보는 게 마지막 소원이다.”


할머니는 나에 대한 기대와 믿음이 크다.

할머니에게 나는 대단한 사람인가 보다.

그런데 나는 할머니의 기대만큼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특별한 사람도 아니다.

그래서 마음이 더 무겁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서.


할머니는 손자 녀석 온다고 마당에서 키운 닭으로 백숙을 만들어 정성껏 차려주셨다.

할머니의 밥상이 오늘따라 풍성하다.

가득히 차려진 그 밥상 앞에서 나는 마음으로 울고 있다.



죄송합니다. 할머니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급식소에서 일을 했던 어머니는 늘 집에 늦게 오셨고

그래서 나는 항상 학교가 끝난 후 날이 저물도록

문방구에서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 어린 시절,

100원짜리 사탕 입에 물고

오락기 앞에서

열심히 조이스틱을 두드리면

세상을 가진 기분이었는데


이제는 이 악물고

면접관 앞에서

열심히 취업문을 두드리다

세상에 진 기분이다.


세월이 야속한지

세상이 야속한지








낭만 없는 여행 에세이 담고 있습니다.


글/ 사진_ Instagram@jongminz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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