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살 이야기 24 Korea
취직해보니까 말이야,
성공이 아니고 문을 하나 연 느낌이더라고.
어쩌면 우린 성공과 실패가 아니라,
죽을 때까지 다가오는 문만 열어가면서 살아가는 게 아닐까 싶어
- 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 중에서
졸업장을 받았다. 군대를 포함한 6년 동안의 시간을 들여가며 받아든 A4용지 크기의 종이 한 장. 그 하얀 백지 위에 나의 수고로움을 증명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몇 마디의 말들 적혀 있었다. 무언가 허무했다. 나는 이 증서를 위해 얼마나 많은 고통과 시간을 들여왔던가. 그리고 동시에 나는 영락없는 백수가 되었다. 사람들이 나에게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 이제 학교도 졸업했으니 그냥 저냥 학생이라고 얼버부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대한민국의 반석이 되기 위해 도전을 거듭하는 백수입니다.
봄날을 기다리며 꽃이 필 준비를 하는 새싹 같은 백수입니다.
목표를 향해 끝없이 정진하는 백수입니다.
어떠한 미사어구를 붙여도 나는 그저 노력하는 백수일 뿐이었다. 그리고 막상 이렇게 백수가 되어 보니 학생이라는 타이틀과 백수라는 타이틀은 무게감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뭐하시나요?
-학생입니다.
-그렇군요.
-뭐하시나요?
-백수입니다.
-그렇군요....
왕관을 쓰려는 자는 그 무게를 견뎌야 하는 것처럼 백수가 되려는 자 또한 감내해야 할 무게를 있었다.
그러나 마음을 짓누르는 백수의 왕관은 그리 영예롭지 못했다.
앞으로 뭐 먹고 살아야 하나. 또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나. 당연히 대학은 졸업했으니 스스로의 밥법이를 하기 위해 취업을 해야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취업은 해야 하지만 아무데나 가기는 싫었다. 그리고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그러니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막연히 열심히만 하면서 살면 되는 걸까.
인생은 마치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한 척의 배와 같았다. 그러나 방향키를 잃어버린 배가 할 수 있는 것은 바다 위를 유유히 떠다니는 것 뿐이었다. 학교에서 수많은 물리공식을 배울 때 나의 내면을 바라보는 법도 배웠다면 어땠을까. 조금은 달라졌을까. 이 표류하는 돛단배의 등대가 되어주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무의미한 항로에서 수많은 질문들을 허공에 던지봐야 마주한 현실은 달라지지 않으니 잠잠히 입 꾹 다물고 책이나 펼치는 것이 나의 최선이었다. 결국 미뤄덨던 자아 형성은 취업 시즌이 되어서 정체성 혼란으로 뼈저리게 다가왔다. 시험 기간이 되어서야 가장 아름답게 피는 벚꽃처럼 취업준비생이 되어서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들은 한층 심오해지는 듯 했다.
문득 옛날 어느 술집 화장실에서 들었던 어느 아저씨의 자조 섞인 말이 기억난다.
- “어휴 젊었을 때는 돈이 없고, 돈이 있으니 젊음이 없네.”
그 말은 꽤나 강렬했다. 그리고 그것은 마른장작 위의 불쏘시개가 되어 청춘이라는 심장에 불을 퍼뜨렸다.
- ‘그래 젊음시절에 멋지고 행복하게 사는 거야!’
그때 나는 아름답고 찬란한 젊음을 살기로 다짐했다. 그러나 굳은 다짐이 무색하게도, 인생의 관문을 하나씩 하나씩 마주할 때마다 젊음의 행복보다는 나중의 안정을 찾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들의 가치보다 오히려 훗날 더 나은 삶을 사는 것에 대한 가치가 더 컸던 것이다. 그래서 현재의 행복을 억누르고 나중으로 미루면서 지금의 삶을 살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정한 행복의 기준치를 위해 얼마나 더 많은 것들을 인내해야 할까 생각해보지만 뚜렷하게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에 나의 청춘의 날들은 점점 흩어져가고 희미해지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는 대학교에 가면 해결될 거라 여겼지만, 막상 대학에 오니 취업이는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취업을 하게 되면 해결될 거라 여겼지만, 막상 취업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결혼, 직장, 인간관계 등의 훨씬 더 복잡한 관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지금 전부인 것 같은 관문들은 끝이 아니었고, 그 뒤에 또 다른 문이 항상 존재했다. 끝도 없는 인내와 연단의 과정, 이것이 곧 우리의 인생일 것이다. 그래서 영화 <달콤한 인생>의 백사장은 인생을 '고통'이라고 표현했던가.
그리고 사람 일이라는 게 아무도 모르듯, 그렇게 마주하는 관문마다 행복을 뒤로 보내다가는 언제 마지막 관문을 열고 세상과 영영 작별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나의 한번 뿐인 젊음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어떻게 나의 젊을을 누릴 수 있을까.
한동안 모든 시험에 낙방하고 눈 앞에 마주한 현실을 외면하고자 쇼파든 침대든 등짝만 댈 수 있으면 자리잡고 누워 잠만 퍼자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몇날 며칠을 하릴없이 잠과 핸드폰만 하며 시간을 버리고 있던 중 우연히 유튜브에서 인도의 바라나시에 관한 영상을 보게 되었다.
바라나시는 흰두교의 최고의 성지이자 수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하기를 소원할 정도로 흰두교인들 신성하게 여기는 도시이다. 그들은 화장된 시신의 재가 갠지스강에 뿌려져야 고통을 끝내고 열반에 든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은 이들의 마지막 종착지인 바라나시의 화장터에는 밤이든 낮이든 불길이 꺼지지 않는다. 그런 바라나시의 화장터에서 검은 연기가 되어 하늘나라로 떠나는 그들을 보며 과연 어떤 삶을 살다간 사람들일지 문득 궁금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가지 명확했던 것은 각자의 인생은 달랐을지언정 결국 죽음 앞에서 한줌의 재가 되어 사라지는 것은 모든이에게 똑같았다. 그리고 누군가의 죽음을 바라보며 잠시 삶에 대한 묵상을 하게 되었다.
인생은 삶과 죽음으로 이어지는 통로일 테지만 그 과정을 통과하는 여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왜 이리 삶이란 것은 늘 이렇게 모든 것이 어렵고 복잡하기만 할까? 한편으로 생각하면 삶이란 나의 의지대로 시작과 끝이 정해지지 않고 끝을 모르기에 어쩌면 인생이란 정말 허무하기도 하다.
그리고 남들이 동경하는 퍽 멋진 인생을 바란 것도 아니기에 어깨에 힘 좀 빼고 살고 싶지만, 보이지도 앞날의 걱정 때문에 나는 언제나 무거운 쇳덩이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듯 했다. 가늘고 긴 실에 묶여 바람과 함께 연처럼 훨훨 날아가고 싶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무거운 밧줄과도 같은 상념들에 묶어 그저 같은 자리를 배회할 뿐이었다. 어쩌면 나를 너무 사랑했기에 역설적으로 현재에 내가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너무 소홀하게 대한 것은 아닌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훗날 나의 삶의 끝자락이 다가왔을 때 과연 나는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과연 내 삶에 만족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그때가 되보지 않고선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이런 삶과 죽음에 대한 묵상 뒤에 어떻게 나의 젊을을 누릴 수 있을지에 대한 해답을 찾은 거 같았다.
젊었을 때 돈이 없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추억이 없는 젊음은 결코 내게는 당연하지 않았다. 정상만을 바라보며 산을 오르기에 아직 내 앞에 핀 꽃은 아직 저버리기에는 너무 아름다웠다. 그래서 나는 묶인 밧줄을 끊어내고 마치 마음에 휘날리는 연이 되어 떠나기로 굳은 결심을 했다. 마치 떠나기 위해 잠시 돌아온 사람처럼 나의 여정은 다시 시작되었다.
이왕 넘어진 김에 쉬었다 가기로 했다.
아프니까 청춘은 이제 지긋기긋하다.
나는 아프리카 청춘이다.
낭만 없는 여행 에세이 담고 있습니다.
글/ 사진_ Instagram@jongminzz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