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말고, 배.
배를 놓쳤다. 버스 말고, 배를 놓쳤어.
버스 놓칠까, 지하철 놓칠까 뛰어 본 경험 한 번쯤은 있을 거다. 나이 먹고 차려 입은 옷에 불편한 신발까지 신고 등에 땀나며 후다닥 뛰어야 했던 이유들. "이거 못 타면"이라는 말로 시작되어 여러 이유로 귀결되는 한 문장들이 있지 않았나. 집에 못 가, 학교 늦어, 회사 늦어 등.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늘 시간과 책임에 내몰렸다. 그런 이유 하에서 무엇인가를 놓쳤을 때의 당연한 반응은 '분노', 혹은 '짜증'이었다. 생각만 해봐도 짜증난다.
영국에서 우리 부부는 배를 놓쳤다. 타워브릿지, 런던타워가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열심히 구글지도를 뒤졌고, 지하철과 버스로 가는 방법 밑에 처음 보는 아이콘으로 소개되고 있는 '배편'이 눈에 띄었다. 배라니. 영국에서 배라니. 배를 타자. 그렇게 우리는 Pier가 있는 곳으로 갔다.
피어는 오이스터 카드로 탈 수 있다고 했다. 줄을 서려고 했는데, 웬 외국인이 와 잠깐 비켜달라고 말했다. 가이드였던 것 같은데, 본인들 무리도 타야 하니 자신들 타고 타면 된다고. 그러라고 했다. 어차피 우리는 급할 게 없으니까. 배가 오는 때까지 이것 저것 신기해하며 사진을 찍었다.
배가 왔다. 진짜 오긴 오는구나. 무슨 버스 오듯이 배가 정박했다가 후루룩 간다. 어? 근데 왜 그냥 가니? 뭐 문을 열어주거나 안내를 해주거나 하지도 않고 배는 잠깐 들렀다 그대로 떠나갔다. 우리는 1분 남짓 벌어진 일을 보며 어안이 벙벙했다. 배를 놓쳤다.
배를 놓친 우리는 결국 지하철을 탔다. 물론 눈앞에서 지하철 하나가 지나가는 것을 보기도 했다. 배를 놓쳤고, 지하철도 놓쳤다. 이거 완전히 꼬이고 꼬인 날이다.
지하철을 타니 간단하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방향만 제대로 맞춰 타면 목적지까지 너무나 순탄하고 빠르게 데려다주는 지하철. 예상했던 시간보다 늦게 도착했지만, 뭐 어떤가. 목적지에 도착했으면 됐다.
문장을 쓰면서 새삼 느낀다. 내몰리고 내쫓기던 하루가 일상이 돼 버렸구나. "예상했던 시간보다 늦게 도착했지만"이라는 문장이 그렇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결국 "늦다"라는 표현은 정해진 시간이 있었을 때 어울리는 말이다. 제 때 도착해야 하는 일정들, 예를 들어 "이거 못 타면"이라는 문장에 귀결되는 수많은 이유들이 얽히고 섥힌 일정들에나 어울리는 단어이지 않는가.
자유여행을 떠났다. 수없이 쫓기던 일정을 벗어나 아내와의 오붓한 시간들을 보낼 여행. 처음 가보는 유럽 여행. 맡은 일도, 놓고 온 일도 없이 떠난 여행. 매 휴가 때마다 "조금 일찍 돌아와줄 수 없냐", "오늘 당장 와서 이것 좀 대신 해줄 수 없냐"라는 말들을 수없이 들었던 나에겐 그저 넉넉한 시간과 물질 때문만이 아니라, 아무 것도 맡은 것이 없다는 사실이 자유하게 했다.
그래서일까, 배를 놓쳤지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배를 놓쳤다. 그저 하나의 사실이고, 그 자체로 끝이다.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되고, 천천히 가는 길일지라도 목적지에 닿기만 하면 됐다. 다시금 일터로 복귀한 지금의 나는, 이 사건을 기록하며 "늦다"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그때의 우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웃음거리이자 이슈일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날들이 그립다. 사건을 사건으로 보고, "늦다"라는 말보다 "천천히"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었던 그 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