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에 나온 책이니 스토리나 그림이 어린이들에게 막 와 닿지는 않는다. 사실 어른을 위한 그림책이다. 읽어주는 내가 더 좋아하는.
그림책을 읽다가 어느 페이지에서 멈췄다. 솔이네 가족이 버스를 타려고 길게 줄 서 있는 부분. 아빠는 양복을 입고 엄마와 솔이는 한복을 입었다. 솔이는 엄마 아빠 손을 잡았고, 솔이 동생은 엄마 등에 포대기로 업혔다. 줄은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상황으로 이어진다. 사이좋은 신혼부부, 선물세트를 쥔 아가씨, 책을 보는 군인, 지팡이 짚은 긴 수염의 할아버지, 목마 탄 어린이, 떼쓰는 어린이, 아빠 등에서 양복을 덮고 잠든 아기, 꽃다발을 든 학생, 신문 보는 아저씨 등 추석을 보내러 가는 저마다의 사연을 상상하게 한다. 솔이 가족은 동트기 전에 출발했지만 줄에서 맨 끝인데 그 때문인지 솔이 엄마 아빠의 표정은 뜨악하다.
우리 가족도 그림처럼 새벽부터 출발해 줄을 서서 시외버스를 기다렸다. 나의 할머니 댁, 경남 밀양군 무안면 덕암리로 가려면 여러 번 버스를 갈아타야 했는데 특히 마산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저렇게 줄이 길었다. 엄마 아빠는 짐이 많았는데 차례 상을 차리기 위한 음식이 대부분이었다. 무거워 보이는 보따리는 모양이 들쑥날쑥했고 대 여섯 개쯤이었다. 긴 줄은 내장처럼 여러 군데에서 구불거렸고 빈 버스가 왔다가 출발해야 우리는 조금씩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 나는 솔이처럼 엄마 아빠 손을 잡았다가 줄이 멈추면 손을 놓고 오빠랑 장난을 쳤다. 지금이야 긴 줄이라면 딱 질색이지만 어릴 때는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일도 놀이였다. 오히려 버스에서 나는 멀미가 잦았는데 엄마가 시키는 대로 먼 산이나 들판을 봐도 속은 울렁거렸다.
줄인지 덩어리인지 모르는 사람들 속에 파묻히면 나는 엄마를 잃어버릴까 봐 음식 보따리에 걸터앉았다. 추석을 쇠러 가는 그 줄에서 엄마 아빠는 나보다 음식 보따리가 더 중요했다. 엄마는 나를 보고 “거기 앉지 말라고 했잖아!”라고 했고 나는 “앉은 거 아니야, 옮겨주려고 그랬어.”라며 들지도 못하는 보따리 매듭을 엄마 손처럼 꼭 잡았다. 어른들은 나무처럼 키가 컸고 나는 한 포기 풀처럼 작았다. 줄을 서다 쳐다본 땅에는 동전만 한 크기의 눌어붙은 껌이 많았다. 그 달달하던 껌은 새까매서 흉측할 뿐만 아니라 나와 너무 가까운 듯해서 나는 한숨이 났다. 어른이 되어야 땅도 멀어지고 더러운 껌과도 멀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림 속 솔이의 시선은 아래다. 엄마 아빠의 시선은 줄을 가늠하는 듯 약간 위지만 솔이는 아래를 보고 있다. 아마 작가는 솔이 앞에 있는 다른 남자 어린이를 쳐다보는 시선으로 그렸으리라. 나는 반사적으로 땅과 멀어지고 싶던 내가 떠올랐다. 그땐 몰랐다. 어른이 돼도 땅이 가깝다는 사실을. 나는 지금도 길을 걸으면 땅을 보며 생각한다. 나이가 더 들면 땅이 멀어질까.
다시 그림책은 보름달을 보며 송편을 빚는 장면이다. 책처럼 달을 보지는 않았지만 우리도 마루에 모여 앉아 송편을 빚었다. 쌀가루를 양푼에 담아와 치대는 엄마는 힘이 세도 피곤해 보였고 소로 넣기 위해 숟가락으로 삶은 밤을 파내던 할머니는 엄마에게 잔소리를 자주 했다. 나는 할머니와 엄마가 만드는 것을 보고 따라 했다. 할머니의 송편은 우주선 모양이었는데 할머니의 우주선은 나처럼 소가 삐져나오는 법이 없었다. 엄마는 할머니와는 다르게 반달 모양으로 빚었는데 할머니가 작게 넣으라고 잔소리를 해도 엄마는 삶은 밤을 송편 속에 잔뜩 넣었다. 그림책처럼 우리도 개다리소반 위에 동심원을 그리며 만든 송편을 놓았다. 모양이 달라 할머니 것과 엄마 것은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었고 내 송편은 어설퍼서 구분이 되었다. 아빠가 외양간 옆 가마솥에 물을 붓고 솔잎도 넣으면 엄마는 상을 들고 가서 송편을 쪘다. 찐 송편을 꺼내면 이전보다 살짝 부풀고 저들끼리 붙어 있었다. 강제로 떼면 노란 밤이 삐져나왔는데 나는 기다렸다는 듯 냉큼 집어 먹었다. 엄마는 송편에 참기름을 바르다가 나에게 하나 먹어보라며 제일 큰 걸 집어 주셨다. 할머니는 “어데 차례도 지내기 전에 가스나한테 큰 거 미기노?”라고 하셨지만 엄마 귀에는 안 들리고 내 귀에만 들렸다. 나는 떡을 입에 넣다 할머니 말에 잠시 부끄러웠다. 엄마의 용기로 내 입에 넣어준 그 송편을 결국 나는 다 먹지 못했는데 할머니 때문이 아니었다. 설탕이 귀했는지 반죽에도 삶은 밤(소)에도 한 톨의 단맛이 없었기 때문이다.
제기 닦던 할머니는 구경하던 나를 보고 “니 나중에 할머니 제사상에 얹을 갈치 한 마리 사 오긋나?”라고 의심하듯 물었고 나는 “네, 제가 갈치 사 올게요.”라고 당당히 말했다. 할머니는 “그래, 너거 아빠가 니 고등학교까지는 시키 줄기다. 후지게 돈 벌어서 할매 갈치 사온나.”라고 하자 나는 “할머니, 저는 대학교도 가고요, 대학원도 갈 거예요.”라고 했다. 할머니는 “어데 가스나가 부모 등골 빼먹을라고 안된다!.”라고 했고 그제야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림책의 마지막은 돌아온 집이다. 솔이 아버지는 잘 도착했다고 전화를 하고 엄마는 한복을 벗어 옷걸이에 걸고 있다. 시골에서 가져온 늙은 호박과 한쪽이 풀어진 음식 보따리는 구석에 있다. 솔이와 솔이 동생은 잠이 들었다.
우리 가족도 늦은 밤에 집에 도착했다. 할머니 집에서 바로 외가로 가는 일은 없었다. 아빠는 엄마에게 밀양에 전화하라고 말했지만 엄마는 전화를 하지 않았고 결국 그림처럼 아빠가 전화를 했다. 솔이 엄마는 보따리 한쪽이라도 풀었지만 우리 엄마는 보따리를 풀지 않았다. 그대로 베란다에 갖다 놓고는 새시 문을 닫았다. 나는 그 보따리에 맛없는 송편이 들었을 거라고 생각했고 어쩌면 엄마는 저 송편을 단 맛이 나도록 다시 만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오빠는 제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았고 나는 양말만 벗고 누웠다. 아, 솔이 엄마의 파자마처럼 우리 엄마 파자마도 아빠 것처럼 펑퍼짐했다.
아직 나는 할머니 제사상에 올릴 갈치를 사지 않았다. 할머니는 그때 분명히 당신 제사상에 갈치를 올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엄마는 할머니의 제사상에 갈치를 올리지 않았다. 할머니의 기일은 추석 후 5일, 정확히 음력 8월 20일이다. 작년부터는 할아버지 기제사와 합쳤지만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나서도 꽤 오랫동안 명절증후군의 엄마를 더 힘들게 했다. 그래도 나에게 고등학교까지는 다니라고 할머니 딴에는 후한 인심을 쓰셨는데, 거기다가 내가 갈치 산다고 약속도 했는데 아직도 나는 이 모양이다. 아무래도 이번 추석 때는 친정에 돈만 드리지 말고 싱싱한 갈치를 추석 전에 보내드려야겠다. 엄마가 갈치는 제수용생선이 아니라고 해도 일단 우겨봐야겠다. 어쩌면 할머니는 반달 송편을 빚고 제일 큰 송편을 딸에게 주던 그 며느리의 용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