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의 대가

by 물지우개

수업을 하다 보면 내 뜻과 상관없이 갑자기 나와 버린 방귀처럼 즉흥적인 뻥으로 흘러가는 때가 있다. 수업을 뻥치다니 도덕적으로 문제 있거나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뻥을 변명하자면 착한 거짓말쯤이니 지금부터 할 이야기를 그냥 가볍게 들어주셨으면 한다. 결론은 미담이다.




지금 1학년이 배우는 과목은 크게 3개다. 국어, 수학, 통합교과인데 통합교과는 예전으로 치면 바른생활, 슬기로운 생활, 즐거운 생활이다. 세 가지 영역을 계절로 통합해서 지금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렇게 4권의 교과서로 나눠 배운다. 지금은 당연히 ‘가을’ 차례다. 가을은 다시 이웃과 추석이라는 두 주제로 나뉘는데 지금은 추석을 배우고 있다. 특히 가을에 만날 수 있는 농작물과 가을걷이에 대해 알아보고 농사짓는 사람들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는 학습목표로 여러 시간에 걸쳐 배우고 있다. 뻥은 이 수업 주제의 마지막, 감사하는 편지 쓰기에서 나왔다.


여덟 살 어린이들과 수업을 하면 ‘나는 누구?’, ‘여긴 어디?’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내가 말을 하면 21명 중 10명이 갑자기 자기 경험담을 쏟아낸다. 국어 공부를 하다가도 어느 어린이는 벌떡 일어나 거울 앞에 가서 머리를 매만지고, 가끔은 거울 앞에서 춤도 춘다. 내 설명을 들으며 그림을 잘 그리다가 “야, 너는 이거 무슨 색깔로 칠할 거야?”라며 지들끼리 갑자기 토론한다. 수업 중 혼자만의 세계에 빠지는 어린이는 눈을 감고 휘파람을 불거나, 연필 두 개로 비행기 놀이를 한다. 어느 어린이가 손을 들어서 내가 발표 기회를 주니 생각이 안 나는지 아무 말도 못 하고 앉았다. 친구가 “너는 왜 아무 말도 못 하냐?”라고 하자 “놀리지 말라고!”하면서 책상을 손바닥으로 때리며 고함을 친다. 의자를 흔들다가 몸이 옆으로 넘어가기도 하고, 의자에 비해 몸이 작은 어린이는 놀라운 착석 포지션을 보여 주기도 한다. 놀다가 넘어져서 팔에 상처가 난 어린이에게 보건실로 가라고 했더니 스스로 치료할 수 있다며 두루마리 휴지를 팔에 감아 딱풀로 붙이기도 하고, 게임에서 졌다고 기분이 나빠 한 시간 내내 훌쩍이는 어린이도 있다

.

내가 눈치를 주고, 상황을 설명하고, 설득하고, 협박해도 사실 잘 안 먹히지만 그래도 어린이는 선생님의 사랑을 갈구한다. 내가 급할 때 눈을 감듯 어린이들은 선생님이 보내는 부정적 신호에 눈을 감는다. 대신 사랑의 표현만큼은 아주 빠르게 흡수한다. ‘학습지를 끝까지 하느라 정말 수고했어요.’, ‘정성껏 쓰는 모습이 진짜 멋지다.’, ‘어쩜 이렇게 예쁘게 색칠했을까?’ 내가 칭찬을 하면 어린이들은 바로 행복해진다. 바로 바른 어린이가 된다. 문제는 나란 인간이 어린이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결코 아니고, 오버가 비위에 매우 거슬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내 칭찬이 진심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려면 나와 다른 세계에 사는 어린이가 진짜 잘해야 한다.


도시 어린이가 농사짓는 사람의 고충을 어찌 이해할 수 있을까. 그분들의 노고를 이해하고 감사의 마음을 가질 뿐만 아니라 글로 감사를 표현한다는 어마어마한 주제를 과연 소화할 수 있을까. 나는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교육과정을 재구성한다거나 교과서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교과서로 가르친다는 거룩한 문장들은 현실감이 떨어진다. 나는 지도서대로 정확하게 가르치기만 하면 충분한 교과서를 원한다. 이 주제는 어쩔 수 없이 지도서대로 가고 있었다. 솔직히 ‘나도 모르겠다.’는 심정이었다.


어린이에게 사과 따는 장면, 벼를 베는 장면 등 수확의 사진과 영상을 보여주었다. 농사짓는 분들이 없으면 마트에 가도 싱싱한 채소와 과일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통조림에 들어있는 오래된 복숭아보다 싱싱한 복숭아가 더 맛있다고 말해주었다. 예상대로 어느 어린이는 통조림 복숭아 국물이 맛있다고 했다. 한국에서 나는 농산물의 우수성에 대해 설명을 하고 나니 나는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편지 쓰기에 돌입했다.


갑자기 전날 러닝머신을 뛰다가 본 ‘6시 내 고향’이 생각났다. 강원도의 어느 무 밭에서 부부가 땅에 박혀 있는 멀쩡한 무의 청을 단발하듯 잘라버리는 장면이었다. 지금 무 한 개 파는 가격이 200원이라 빨리 갈아엎는 게 이득이라는 설명이었다. 나는 어린이들에게 그 장면을 말했다.


선생님이 어제 티브이에서 봤는데 무 농사를 짓는 아저씨가 무를 칼로 베어 버리더라. 왜 그럴까 생각해 봐. 무 팔라고 그러는 거 아니에요? 아니, 답은 그 반대야. 무를 팔 수 없어서 무를 버리는 거였어. 근데 왜 칼로 잘라요? 무가 빨리 죽어야 다른 채소를 심으니까. 커다란 무 한 개 값이 얼만지 아니? 너희들 먹는 아이스크림보다도 싼 이백 원 이래.


어린이들은 멀쩡한 무가 죽어 버려진다는 사실에 에너지를 얻은 듯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어린이들의 학습의욕에 나는 문제의 뻥이 튀어나왔다. 선생님도 그분께 편지를 써야겠어. ‘무 농사짓는 아저씨께. 어제 티브이에서 무를 팔 수 없어 버리는 아저씨를 봤어요. 마음이 아팠어요. 힘들어도 농사를 포기하지 말고 계속 무를 키워주세요. 저는 깍두기를 아주 좋아하거든요.’ 그 프로그램은 사실 해피엔딩이었다. 도시 청년이 무를 도시로 가져가 한 개 천 원으로 모두 팔아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마음이 아프지 않았다. 나는 깍두기를 썩 즐기지 않는다.

어린이들은 내 편지에 고무된 듯 쌀 농사짓는 아저씨께, 사과 키우는 할아버지께 등등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밥맛이 좋다느니, 내 동생은 사과만 먹는다느니 아부가 등장했고 ‘파이팅, 사랑해요, 고마워요’라는 글자까지 썼다. 어린이들의 감동적인 편지를 보자 나는 또 뻥이 튀어나왔다. “선생님은 너희들의 편지를 정말 농부께 보낼 생각이에요.”

어린이들은 자발적으로 편지를 꾸미기 시작했다. 핑크색으로 하트를 그렸고 꽃을 그렸다. 사과가 안 팔리면 엄마를 데려가서 사겠다고 했다. 나는 진정 흐뭇해서 진심 어린 칭찬을 했다. 어린이들은 편지를 나에게 주면서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어디 사는 농부예요? 오늘 보낼 거죠?”




편지만 쓰면 끝인 줄 알았는데, 분명 지도서에도 편지 쓴 느낌 나누기가 끝인데 괜히 뻥을 쳐서 일을 크게 만들었다. 뻥으로 농부가 되어 답장이라도 써야 하나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다음날 어린이가 또 물어본다. “선생님 우리 편지 보내셨죠? 답장 오겠죠, 선생님?”


어쩔 수 없이 나는 농부를 찾아야 했다. 뻥으로 답장을 쓴다 해도 진심 같아 보이는 베이스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한산도에 있을 때 공방에서 같이 놀던 언니들에게 어린이의 엽서 몇 장을 찍어 보내며 딱 한 마디씩만 해달라고 부탁했다. 뭐든 좋으니 한마디만 해주면 내가 알아서 어린이들에게 잘 전달하겠다고.

뻥으로 시작된 진심 전달은 꽤 효과가 있었다. 사진을 보고 바로 찧었다며 어린이들한테 한산도 쌀을 한 포대 보내주시겠단다. 쌀 나무도 보여주라고 벼도 보내신단다. 편지가 감동적이었는지 언니의 마음 씀씀이가 넉넉한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 뻥이 가장 기특했다. 뻥의 대가가 너무 커서 그날 하루는 별나라 어린이들도 진심 사랑스러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겨울이 오면 늙은 호박을 갈라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