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라 엄마 아빠를 보러 창원에 갔다. 하나뿐인 아들이 갈비뼈를 다치는 바람에 서울에서 내려오지 못해 쓸쓸했을까 봐 걱정이 되었지만 당신의 얼굴에는 그늘이 없었다. 친정집 정원에 있는 꽃과 나무와 풀은 엄마와 아빠처럼 건강했고, 뜨거웠던 여름 볕을 온몸에 저장한 듯 윤이 났다. 내가 대문에 들어서자 입구에 있는 사과나무는 어른 주먹보다 큰 사과로 힘이 부족한 듯 움찔했고, 돌계단 주변의 잔디는 밟아봐라 내가 어디 기죽나 하며 고개를 들었다. 개화기가 지난 송엽국은 추석이 되어도 지치지 않고 저들끼리 개화 경쟁을 하고 있었다. 계단 난간에는 길쭉하고 짤막하게 썬 가지 조각도 가을볕에서 몸을 말리고 있었다. 나는 골고루 볕을 받도록 제법 꼬들꼬들해진 가지를 골라 뒤집어 주었다. 그리고 대문 앞에 줄 선 늙은 호박 대여섯 개. 엄마가 키운 많은 작물 중에 볕을 제일 많이 품었다는-할머니의 펑퍼짐한 뱃살처럼 볕을 머금고 늙은 호박이 엉덩이를 깔고 앉아 있었다.
부모님은 주말마다 아버지 고향인 밀양에 가서 농사를 짓는다. 고구마, 고추, 들깨, 참깨, 배추, 무, 가지, 호박, 자두, 복숭아, 밤, 상추, 오이, 시금치, 열무 등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 곁의 밭뙈기는 거의 종합세트다. 산소 바로 옆에는 아버지가 나뭇가지를 주워와 직접 만든 원두막도 있고 밭 둘레에 멧돼지로부터 작물 종합세트를 지키기 위해 직접 두른 그물도 있다. 아주 가끔 성묘를 갈 때마다 보는 조부모의 산소는 제멋대로 풀이 자란 적이 없었다. 내가 12살 때 심은 봉분 옆 키 작은 측백나무는 나보다 한 뼘 더 커졌고 오빠와 미꾸라지 잡고 놀던 도랑은 일부가 복개천이 되었다. 시절이 변해 엄마 아빠마저 늙어도 선산을 지키고 밭을 가꾸는 일은 변함이 없다.
산소가 맨 위, 그 바로 아래에 밭으로 이어진다. 더 내려가면 자두나무, 복숭아나무, 밤나무가 숲처럼 우거져있고 그 길을 또 내려가면 도랑이 나온다. 밭을 지나 과실나무 쪽으로 걸어가는 길에 엄마는 재식 간격도 없이 땅을 파고 호박 모종을 심었다. 주말에만 만날 수 있는 자식 같은 작물이라 엄마 아빠는 정성을 쏟았다. 땀을 흠뻑 쏟거나 피부가 따가우면 엄마 아빠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던 촌 집에 가서 물을 뒤집어쓰고 된장찌개를 끓여먹었다. 사람이 살지 않아 집이 스러질까 봐 엄마 아빠는 버리기 아까운 살림살이며 옷이며 신발을 가져다 놓았다. 특히 할머니의 정지(부엌의 경상도 말) 찬장에 있던 그릇은 아직도 그대로인데 그 그릇에 된장을 한 숟가락 담아 풋고추를 푹 찍어먹으면 아버지는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기분이었다. 과거를 간직한 그곳에서 엄마 아빠는 주말마다 젊어졌다.
호박꽃이 피고 호박이 하나 둘 달리면 엄마는 기특한 미소를 짓고는 호박잎을 엄지손톱으로 툭툭 끊었다. 다음 주에 딸 지, 그다음 주일지 애호박 수확을 가늠하며 끊어낸 호박잎 더미를 꽉 쥐면 손목 주변이 까슬거려도 아무렇지 않았다. 내가 피부가 약한 두 분의 풀독 두드러기가 걱정되어 팔토시를 만들어드린 적이 있는데 아까워서 집에 두고 쓰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이만큼은 서울 아들네 보내고, 저만큼은 딸 오면 줘야지’ 하고는 남은 호박잎의 억 센 줄기를 살살 벗겨내고 밥 지을 때 같이 넣어 찐다. 된장찌개와 젓국에다 쌀 밥을 찐 호박잎에 싸서 먹으면 엄마 아빠는 배 고프던 시절을 추억 삼아 이야기할 수 있었다. 드디어 애호박을 딸 시기가 오면 엄마는 잠시 망설였다. 더 크도록 내버려 두어야 하는지, 늙어가도록 지켜봐야 하는지, 지금 따야 어리고 부드러울지 고민했다. 아들, 딸 줄 호박을 먼저 따고 당신이 먹을 호박을 따고 내려오는 길은 손이 묵직해서 기분이 좋았다. 엄마는 호박을 나에게 건네며 “호박을 잘게 썰어서 새우젓 넣고 볶아 봐. 밥 위에 호박 나물을 얹고 쓱쓱 비비면 애들이 잘 먹을 거야. 너도 어릴 때 참 좋아했거든. 밀가루에 계란물을 입혀 프라이팬에 지져도 애들이 잘 먹을 거다.” 라며 신문지로 싼 호박을 내 품에 안겨주었다.
명절 음식은 지겨워 점심으로 엄마가 좋아하는 물회를 먹고 집에 돌아가는 길, 내가 손사래 쳐도 엄마는 떡이며, 과일이며, 튀김과 전을 안겨주었다. 감사는 뒷전이고 철없는 딸은 숙제 같은 음식에 한숨을 내 쉬는데 아빠는 늙은 호박을 들고 와서는 내 가슴팍에 푹 들이민다. “아빠, 이건 진짜 괜찮은데...” 어떻게 거절해야 하는지 내가 잔머리를 쓰는 동안 아빠는 “음식 아니야, 이건 가을이야!”라고 훅 치고 들어온다. 엄마는 “늙은 호박은 가만히 둬도 안 상한다. 어디 얹어 놓고 쳐다보고 또 쳐다보다가 날 추워지면 호박죽 끓여먹어라.”라고 거드니 나는 늙은 호박을 껴안지 않을 수 없었다. 가슴팍에 안겼던 늙은 호박은 우리 집 거실 탁자에 가을이 되어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늙은 호박은 볼 때마다 펑퍼짐한 몸에서 매번 다른 사진을 꺼낸다. 재래시장에 간 엄마가 모종을 사기 위해 지갑에서 꺼낸 돈이 보이고, 호박잎을 뜯느라 초록 물이 든 엄마의 엄지손톱도 보인다. 풀 독 오른 아빠 팔에 엄마가 잔소리하며 바르는 연고도 보이고, 촌 집에 둘이 앉아 흰 머리카락을 까맣게 물들이는 염색약도 보인다. 덜덜거리는 시골집 선풍기를 고치는 아빠가 보이고 창원으로 가져온 채소를 이웃과 나누는 엄마도 보인다. 풀을 베다 산소에 털썩 기댄 아버지도, 호미로 잡초를 뽑다 “나는 여기 안 묻힐 거요. 강 씨 집안 징그럽다.”라고 말하는 엄마도 있다. 자두, 복숭아, 고구마를 자루에 담아 내려오다가 둘이서 들어도 무거워 쩔쩔매거나 밤에는 관절이 시큰거려 잠 못하는 두 분이 보인다. 서울 아들네에 보낼 상자에 가지, 고추, 상추, 오이를 넣고 딸한테 줄 호박잎을 비닐에 담으면서 아빠는 “자식들이 버리지는 않겠지?”라고 물으면 “못 해 먹고 상하면 버려야지, 어쩌겠어?”라고 답하는 엄마가 보인다.
엄마 아빠의 뜨겁던 봄과 여름을 가만히 지켜본 호박은 할머니같이 늙어 우리 집에 왔다. 나는 가을을 보내는 내내 호박 할머니가 꺼내 보여주는 사진을 묵묵히 지켜보리라. 그 사진으로 나도 가을을 뜨겁게 보내고 찬 바람이 불면 호박 할머니한테 가만히 물어봐야지. 애호박을 딸까 말까 고민하던 엄마처럼 “이제 늙은 호박을 갈라도 될까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