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이 더 어려운 ‘고운 말을 해요’

1학년 국어 수업을 하다가

by 물지우개

초등학교 1학년 2학기 국어-나, 6단원은 ‘고운 말을 해요’다. 나는 오늘도 어린이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면서 내가 성찰하는 수업을 하고 말았다. 고기 낚는 법을 가르쳐 주지 못하는 선생이라면 고기라도 잡아줘야지 저 혼자 잡아서 저 혼자 다 먹는 격이다. 어쩔 수 없다. 그저 어린이들이 가진 그릇이 하찮은 선생을 보고 맛있게 먹는 방법이라도 배우길 바랄 뿐이다.



단원의 시작은 자신의 기분을 말하는 방법이다. 감정의 표현은 다양한데 내 감정은 그리 다양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정확하지 않았다. 기분은 유동적이고 한시적이고 불분명하다 생각했기에 표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그 바람같이 떠도는 기분을 꽉 붙들어야 한다고 말했고, 기분의 정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라고 말했다. 제 맘대로 유랑하는 기분도 붙들 가치가 있다고 말이다. 가르치면서 나는 이 어색한 표현을 수도 없이 연습했다.


“**이가 교과서도 펼치지 않고 계속 친구와 떠드니까 선생님이 수업하기 싫다. 힘이 빠지는 느낌이 들어. 무슨 재밌는 이야기일까? 선생님 대신에 **이가 앞에 나와서 같이 들을 수 있도록 이야기해 줄래?”


“또 **이와 **이가 싸웠구나. 아무리 이야기해도 서로를 배려하지 않고 상대방 탓만 하니 선생님은 이제 너희들의 하소연을 듣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들어. 맨날 싸울 바에는 당분간 이야기도 하지 말고 놀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이는 아직도 연필로 장난을 치고 있구나. 어제도 그러더니 오늘도 그러니 습관이 될까 봐 걱정이 된다. 뒤에 가서 2분간 서 있다가 들어와. 네가 강제로라도 장난을 멈춰야 내 걱정이 조금 줄 것 같아.”



다음 차시는 듣는 사람을 생각하며 기분을 말하기다. 이제 겨우 기분을 붙잡아 정체를 파악하기 시작했는데 듣는 사람을 생각하라니 갑자기 김이 빠지는 기분이다. 결국 기분대로 마구 지껄이면 안 된다는 뜻이지 않은가. 존재감 없이 지나가던 이전으로 기분을 보내버리고 싶었다.


“선생님이 **이 때문에 수업하고 싫고 힘 빠지는 느낌이 든다고 하니 어땠어?”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선생님은 너를 울릴 생각은 없었는데 눈물 날 정도로 슬펐다니 미안하다. 그럼 **이가 수업 시간에 선생님 말 듣지 않고 친구랑 자꾸 떠들면 선생님은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모르겠어요.”


“선생님이 **이랑 **이는 서로 말하지 말고 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니 기분이 어땠어?”

“속상했어요. 저는 그래도 **이가 좋거든요.”

“저는 괜찮아요. 저는 **이랑 안 놀고 싶어요. 쟤가 말 거는 것도 싫어요.”

“선생님이 말을 잘못했구나.”


“선생님이 뒤에 가서 서 있으라고 말하니 기분이 어땠어?”

“너무 창피하고 선생님이 원망스러웠어요.”

“창피함을 느끼기보다는 연필 장난을 멈췄으면 하는 마음이었는데 네가 오해했구나. 창피했다면 미안해. 앞으로 **이가 또 연필 장난을 치면 선생님이 어떻게 하지?”

“그냥 못 본 척하세요.”


기분대로 지껄인 부정적인 말은 효과는커녕 오해만 일으켰다. 기분은 무심히 지나가게 내버려 뒀어야 옳았다. 괜히 표현하는 바람에 부작용만 나타날 뿐. 다시, 나는 아이들과 연습했다. 상대방에게서 부정적인 기분이 들 때 어떻게 표현해야 듣는 사람이 오해하지 않고 내 기분을 이해할 수 있을까. 솔직하면 안 되지만 그렇다고 거짓을 말할 수는 없다.


“옆 친구가 계속 떠들어서 선생님 목소리가 잘 안 들려 공부에 방해가 될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선생님이 하지 말라고 하면 좋겠어요.”

“선생님이 하지 말라고 하니 친구가 슬프다잖아.”

“슬퍼도 할 수 없어요. 피해를 계속 주면 안 되잖아요.”

“선생님은 친구의 행동을 멈추는 게 목적이지 슬퍼서 울기를 바라지 않아요.”

“친구가 그런 말을 듣고도 슬퍼하지 않으면 되잖아요. 선생님이 날 슬프게 하려고 그런 말을 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면 되잖아요.”

“근데 막상 그런 말을 들으면 슬픈 생각이 먼저 들 수도 있어요. 너무 슬퍼서 자기가 떠들었다는 행동마저도 까먹을 수 있어요.”

“그러면 선생님이 귓속말을 하거나 편지를 쓰면 어떨까요? 덜 창피하면 덜 슬플 것 같아요.”

“근데 선생님, 제 생각에는 귓속말이나 편지에서도 선생님이 힘 빠지고 수업하기 싫다고 하면 친구는 똑같은 느낌이 들 것 같아요. 선생님이 떠드는 친구들을 그냥 신경 쓰지 않으면 좋겠어요.”



나는 듣는 사람을 생각한다면 슬프거나, 화나거나, 짜증 나거나, 원망하는 기분을 무심하게 보내버리라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었다. 부정적인 기분은 어떻게 표현하든 듣는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듣는 사람을 생각하며 부정적 기분을 표현할 재간이 없다. 친구를 위로하는 것도 마찬가지. 친구가 몹시 슬플 때에는 그 어떤 표현도 결코 친구의 기분을 좋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수업 중 연습하면서 우리는 알게 되었다. 우리는 역할놀이를 하면서 ‘힘내’, ‘괜찮아’,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질 거야’, ‘다음에 잘하면 돼.’, ‘너를 위로하고 싶어’, ‘네가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런 말들은 전혀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듣는 사람의 기분을 더 힘 빠지게 한다는 사실을 깨다았다.


결국 교과서는 틀렸다. 더 정확해야 했다. [자신의 기분을 말하는 방법 알기]-[듣는 사람을 생각하며 자신의 기분 말하기]-[고운 말로 인사하기]로 이어지는 이 단원의 수업은 [자신의 기분을 알기]-[표현해야 하는 기분과 표현할 필요가 없는 기분 구분하기]-[표현해야 하는 기분이라도 입장 바꿔서 다시 생각하기]-[신중하게 기분 표현하기]-[내 기분을 들은 상대방의 기분도 알기] 학습내용을 세분화하고 더 정확할 필요가 있다.



수업 후 더 확실해졌다. 기분을 굳이 표현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 말이다. 기분은 지나가는 구름처럼 보내면 된다. 한가하다면 ‘구름 모양 상상하기’같이 혼자 놀다가 ‘어느새 또 바뀌었네!’라고 잠시 알아채면 되지 붙잡아서 그 정체를 까발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어린이들에게 이런 말을 하려다가 나는 결국 말았다.


‘얘들아, 사실 기분은 말하지 않는 게 더 좋아. 너희들이 기분을 말한다고 해서 상황이 더 좋아지거나 해결되는 일은 없는 없거든.’



다시 생각해도 말하지 않길 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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