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표현할 때 ‘살을 깎다’나 ‘살이 에이다’는 비유를 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나 ‘내 눈을 내가 찔렀다’는 표현도 쓴다. 신체에 빗대는 말은 그만큼 고통이 크다는 뜻 이리라. 어제 어린이들 나눠줄 학습지를 자르다가 엄지손가락 끝을 잘랐다. 바닥으로 순식간에 떨어지는 살점을 눈이 따라가다 보니 한쪽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갑자기 손끝에서 엄청난 고통이 느껴졌다.
그동안 편하게(?) 비유했지만 실제 고통은 비유보다 컸다. 병원에서 처치를 받고 온 뒤에도 손끝에서 전기가 통할뿐 아니라 심장이 벌렁거리는 통증은 여전했다. 왼손 엄지손가락은 생각보다 하는 일이 많아 어떤 행동을 하든지 불편했다. 고통스러울수록 그동안 편하게 써먹던 내 비유가 부끄러웠다.
공감하다; 남의 주장이나 감정, 생각 따위에 찬성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낀다는 뜻이다.
그러나 ‘찬성한다’와 ‘그렇게 느낀다’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다. 찬성은 편하지만 느낌은 편하지 않다. 아니, 편할 수 없다. 더 정확하게는 편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제각각 가지는 감정은 지문처럼 모두 다르다. DNA처럼 어느 사람이고 같을 수 없다. 타인의 감정과 똑같이 느낀다는 말은 불가능하다. 짐작할 수는 있지만 공감한다고는 쉽게 말할 수 없다. 똑같은 상황에 맞닥뜨리지 않고서는 그 어떤 소통으로도 감정을 공유할 수 없다. 가족을 잃어본 사람만이 가족을 잃은 고통을 안다. 장애를 가진 사람만이 장애인이 겪는 불편함을 안다. 노인만이 늙은 몸을 체감할 수 있고 어린이만이 어린이들의 언어를 이해한다. ‘마음을 이해한다’, ‘고통을 나눈다’, ‘공감한다’는 말은 그래서 위험하다. 편하게 쓸 수 없는, 써서도 안 되는 표현이다.
아주 약간의 살이 잘려나간 고통을 겪으니 이보다 더 큰 신체적 고통에 숙연해진다. 병원에 앉아서 내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허리를 제대로 펴지 못하는 할머니를 보았고, 다리에 붕대를 감고 휠체어를 탄 아저씨도 보았다. 화상을 입었는지 팔에 거즈를 잔뜩 붙인 아이도 보았고 눈에 아픈지 실내에서도 시커먼 안경을 쓴 아주머니도 보았다. ‘아프겠다’나 ‘불편하겠다’라고 짐작할 뿐 나는 그들의 고통을 알 수 없었다. 나보다 더한 고통으로 내 고통을 예쁘게 덧칠할 생각은 없다. 다만 고통에 고개가 숙여질 뿐이다.
남의 고통에 대해 쉽게 말하거나 무시하는 사람을 보면 화가 난다. 세월호 유가족에게 이제 그만하라는 말, 갑질 재벌 일가들의 솜방망이 처벌, 성소수자를 향한 폭력적인 시선, 위안부 할머니와 강제징용 할아버지들에 대한 일본과 전 정부의 태도, 장애인 처우에 대한 역차별 주장, 광주 민주화운동 희생자는 자신과 상관없으니 재판에 나갈 필요도 없다는 사람, 허위자백을 위한 과거 만연했던 폭력과 강압 수사, 반대에 혈안이 되어 입법에 내 몰라라 하는 국회의원 이야기를 들으면 화가 난다. 분노가 치민다. 차마 짐작할 수도 없는 고통을 상상조차 하기 싫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공격과 가해로 일관한다면 똑같이 당해보는 방법 말고는 달리 해결법이 없다. 이해와 공감의 언저리에도 서성거리지 사람은 응징, 보복과 같은 무서운 단어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오늘 병원에서 두 번째 처치를 하며 손끝의 자른 단면을 다시 보니 태극기를 펼쳐놓고 자른 손가락의 피로 ‘대한 독립’이라고 쓴 안중근 의사가 떠올랐다. 내 상처가 그분의 ‘단지동맹’에 결코 비할 수 없지만 그분이 가진 고통, 의지, 절개, 용기, 열망에 백만분의 일쯤 이해하게 되었다. 백만분의 일만 상상해도 가슴이 저리고 몸에 전기가 왔다.
내가 좋아하는 ‘루시드 폴’의 노래 중 ‘바람 어디에서 부는지’라는 곡이 있다. 노래에는 부는 바람에 눈이 시리고 혼자가 낙인 같이 죄스럽다고 말하는 화자가 있다. ‘고등어’라는 곡에서는 눈을 감는 법도 모르는 고등어가 눈을 봐 달라고 노래한다. 노래를 들을수록 나는 고통과 슬픔의 민감성에 대해 반성한다.
나는 결코 쉽게 공감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