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아픈 손가락

나에게 아픈 오빠가 있어요

by 물지우개
나에게는 오빠가 있다.


엄마는 스무 살 때 오빠를 낳았다. 오빠와 엄마는 19살 차이가 난다. 19살이 임신을 하면 인생의 단추를 잘못 끼웠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엄마는 아빠와 살림을 차렸다. 엄마의 부모는 학교도 가지 말고 공부도 필요 없다 했지만 아빠는 결혼하면 하고 싶은 공부를 시켜주겠다고 했기에 엄마는 겁이 나도 용기를 냈다. 오빠가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무렵에서야 결혼식을 올렸고 어른들로부터 부부로 인정을 받았다. 책임감이 강한 아버지 덕분에 가정은 어찌 유지할 수 있었지만 20대 초반의 어린 엄마에게 육아와 살림은 쉽지 않았다. 어린 아들이 주인집 마루에 시커먼 발바닥으로 발자국을 찍으면 달셋방에서 쫓겨날까 봐 엄마는 아들 발바닥을 걸레로 훔치기 바빴다. 천진난만한 오빠는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슈퍼맨 흉내를 내며 다락에서 추락하기도 했고 정신없이 논밭을 뛰어다니다가 거름 밭(똥통)에 빠지기도 했다. 어린 남편과 어린 아들과 살며 엄마는 조금씩 어른이 되어갔다. 어른이 될수록 아들에게 미안했다. 임신을 알았을때 뱃속 아이를 떼 보려고 높은 데서 구르기도 했고 마시면 아이가 떨어진다는 콜라를 일부러 마셨기 때문이다. 임신 중에 연탄가스를 마셔 죽을 뻔도 했다(심지어 그때 뱃속 아이와 같이 죽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했다). 아들에게 고기나 과일을 먹이지 못했고 어린 부부가 그렇듯 아들 앞에서 남편과 소리를 지르며 자주 다퉜다. 심지어 아들이 자는 동안 도망가려고 가방도 쌌다. 때마침 아들이 부스스 눈을 뜨며 엄마를 부르자 엄마는 들고 있던 가방을 던지고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오빠가 어느 정도 자라자 엄마는 아내와 엄마로 안정을 찾은 듯 둘째가 생각났고 나를 가졌다. 둘째는 예쁜 딸이기를 바라며 라디오도 듣고 달력 그림도 보며 태교 비슷한 행동도 했다. 결국 엄마는 공부 근처에도 못 갔고 부업으로 소일거리도 하며 두 아이를 키웠다. 어릴 때 먹고 싶은 걸 맘껏 못 먹어서 그런지 아들은 먹성이 좋았다. 학원을 보내지 못해도 아들은 공부를 잘했고 6학년 때는 전교회장이 되었다. 아들이 전교회장이 되자 엄마는 없는 집 아들이라고 선생들이 얕잡아 볼까 봐 무리해서 교무실에 술과 떡을 돌렸다. 오빠가 중학생때는 남들이 뚱뚱하다 해도 엄마 보기에 좋았고 1등하는 아들이 자랑스러웠다. 기대하던 과학고는 못 갔지만 엄마는 자기 닮아 머리가 좋다고 생각했다. 아들은 고등학생이 되자 급격히 살이 빠졌고 소변이 끈적끈적해졌다. 소아당뇨였다. 유전자와 비만으로 결국 발병한 것이다. 아들은 공부에 소홀해졌고 결국 원하는 만큼 성적을 내지 못했을뿐더러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대학에 진학했다. 오빠는 재수를 원했지만 엄마는 재수 학원에 보낼 돈이 없었다. 엄마는 아들 인생에 대해 죄책감을 가졌다. 생명이 시작했을 때부터 최선은커녕 제대로 사랑해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들이 엄마를 어른으로 키워내는 동안 엄마에게 아들은 대부분 원망의 대상이었다. ‘너만 아니었으면’, ‘너만 없었으면’ 하는 나쁜 마음을 수백 번 먹었다. 엄마는 자신이 쏜 나쁜 화살이 착한 아들이 맞았다고 생각했다. 아들은 여느 아들처럼 성인이 되었고 엄마와 멀어졌다.



오빠는 서울에 취업을 했고 결혼을 했다. 딸도 낳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으로 키우고 있다. 그러나 오랜 당뇨로 결국 만성신부전이 왔고 혈액형이 다른 올케언니에게 신장을 이식받아 무사히 살아내고 있다. 능력 있는 언니와 오빠는 서울에서 좋은 차 타고 좋은 집에서 남부럽지 않게 산다.



오빠는 엄마에게 너무나 아픈 손가락이다. 엄마는 핸드폰에 오빠 번호가 뜨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오빠나 언니가 아프다는 소식일까 봐 벨이 울려도 쉽게 받지 못한다. 엄마는 행복해도 마음이 서늘하다. 아들 생각이 많이 나는 날에는 더 혹독하게 일을 한다. 손수 키운 채소로 반찬을 만들어 서울에 보낸다. 직접 딴 과일 중에서도 크고 좋은 것만 골라 서울에 보낸다. 그렇게 보내고 나면 마음을 시리게 하던 바람이 조금 잦아든다.



엄마는 오늘도 기도한다.
아들이 더 이상 아프지 않기를.
아들 내외가 손녀를 무사히 키울 수 있기를.
며느리가 떠나지 않기를.
성치 못한 몸이 되어 엄마 곁으로 돌아온다 해도 이 모든 것을 보듬어 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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