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또 톡을 보냈다. 잘 있냐? 애들은? 단지 가족의 안부가 궁금한 게 아니라는 촉이 온다. 네, 잘 지내요 라고 쓰다가 지워버린다. 무슨 일 있어요?라고 쓰다가 나는 다시 지운다. 애들 데리고 집에 좀 오라는 뜻인지, 당신이 우리 집에 오고 싶다는 뜻인지 자꾸 상상만 하다 피곤해져서 내버려 둔다.
발신자에 아버지가 뜬다. 냉큼 받았다. 아버지가 되려 묻는다. 무슨 일 있나? 아뇨, 아무 일 없어요. 그럼 됐어. 밥 잘 챙겨 먹어라. 네, 아빠도 잘 지내세요.
아버지는 정확히 나에게 무엇을 원한 것일까? 나이 든 남자들에게 흔한 증상, 여성호르몬 분비로 수다가 고팠던 것일까? 톡을 보내자마자 냉큼 전화 오는 딸을 기대했을까? 아줌마들처럼 일상 이야기를 시끄럽게 떠들고 싶었을까? 아니, 아버지는 그럴 리 없다. 흔한 경상도 남자처럼 퇴근 후 단 네 마디-‘내다, 아는, 밥도, 자자’의 패턴이던 아버지가 갑자기 내 안부가 궁금할 리 없고, 궁금하다 해도 다정스레 물을 리 없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는데 살짝 걱정이 된다.
아버지의 프로필 사진을 들여다본다. 작년 1월, 나는 안 가려는 부모님을 억지로 사진관으로 끌고 가서 일명 효도사진이라고 하는 영정사진을 찍어드렸다. 건강할 때 영정사진을 찍어놔야 오래오래 살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댔다. 부모님은 말도 안 되는 이유에 말도 안 되게 설득당했고 카메라 앞에서 억지로 환하게 웃으셨다. 그 사진이 지금 아버지의 프로필이다. 사진 속의 아버지는 세상 풍파를 무사히 이겨냈고, 자녀를 모두 출가시켰으며, 현재 먹고사는데 문제없다는 비교적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다. 나는 더 들여다본다. 할 말이 많은 얼굴이다. 어색하게 웃고 있어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아 입술이 달싹거린다. 제발 들어달라고 간절한 눈빛이다. 내 말을 들으려는 마음이라도 가져봤냐고 채근하는 발그스름한 볼이다. 그러고 보니 약간 화난 듯 콧김이 나오는 듯 빳빳한 콧구멍이다. 넓은 이마에 깨알 같은 아버지만의 할 말로 가득 차 있다. 영정 사진 속 아버지는 온화한 얼굴이 아니었다. 니들이 내 마음을 어떻게 알겠니? 내 속을 니들이 상상이나 할 수 있겠어? 내가 그동안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온 줄 알아?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은지 알기나 해? 나는 싹 다 말하고 싶어. 죽기 전에 다 말하고 싶다고.
어릴 때 사랑받았던 행복한 순간, 그 한 장면이 지금 나를 일으켜 세운다는 글처럼 나는 자존감이 바닥칠 때마다 비상약처럼 꺼내 먹는 장면이 있다. 추운 겨울밤 아버지가 잠바를 덮어주고 나를 안아주던 장면이다. 아, 하나 더 있다. 내 결혼식 날 봤던 아버지의 빨간 눈이다. 아마 아버지는 아무도 안 보이는 비상구 계단 어디쯤에서 눈물을 훔치고는 아무렇지 않은 듯 나타나셨으리라. 빨간 눈으로 새색시 한복을 입은 나를 꼭 안아주셨다. 얼마 전 나는 자존감이 바닥 쳤고 그 장면으로 일어섰다. 나는 모처럼 용기 내어 아버지께 나를 따뜻하게 안아줘서 고맙다고 했다. 아버지는 무심하게 저녁은 먹었냐 라고 물었다. 생각해보니 그 이후다. 아버지가 무심하게 나에게 안부 메시지를 툭툭 보내는 일이.
나는 곁을 내주지 않았다. 자주 찾아가고 같이 밥을 먹고 용돈을 드려도 곁은 없었다. 아버지는 그날 밤 꼭 안았던 어린 딸의 냄새를 떠올렸을까. 딸의 곁으로 용기 내어 당신 곁을 슬그머니 내어 보인 것일까.
일흔이 다 되어가는 아버지가 드디어 내주시는 곁으로 나는 아버지 사진을 제대로 들여다본다. 겉만 핥는 효는 의무다. 의무는 비난의 최전선을 지킬 뿐이다. 아버지는 나를 비난하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나에게 곁을 꺼내지 못했고, 딸이 출가한 지 15년 만에 꺼낸 곁도 불편해하셨다.
나는 아버지에게 과감한 이모티콘을 보낸다. 보고 싶을 때 추는 춤이라며 웃긴 캐릭터다. 이모티콘을 본 아버지가 나에게 영정 사진 같은 얼굴로 현정아, 밥은 먹고 다니나?라고 무심히 화난 듯 물어봐주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