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몰락하는 중

by 물지우개

질풍노도의 시기도 아니면서 나는 요즘 ‘사는게 뭔지’라는 생각을 한다. 누군가는 사는건 그냥 견디는 것이라도 하고 또 누군가는 사는건 그냥 살아내는 거라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법륜스님은 죽는 것보다 사는 게 훨씬 쉽다며 그냥 살면 된다고 하신다. 다람쥐가 도토리를 찾아가듯 그렇게 살면 된다고. 나는 한방향으로 질주하는 시간위에 내 나름의 걸음걸이로 걸어가는 일이 왜이리 힘든지 생각한다.

가끔은 이런 식으로는 그만 살면 안될까 하는 생각도 한다. 내가 낳은 아이들이 좀 불쌍해 지겠지만 불쌍한 사람이 세상에 어디 한둘이랴. 아이들은 엄마가 없어도 어떻게든 살아갈 것이다. 그런데 내가 천벌을 받을까봐 좀 무섭다. 그래, 사라지더라도 애들이 성인이 되어 사라지는 것이 옳겠다. 결론은, 나는 앞으로 이렇게 딱 10년은 버텨야 한다는 사실이다.

왜 이렇게 눈치는 보는지. 내가 남에게 피해를 줄까봐 전전긍긍하고 누군가 지적하면 왜이리 아픈지. 내 마음대로 할 수있는 것이 별로 없다. 학부모눈치도 봐야하고 관리자눈치도 보이고, 동료의 시선도 신경쓰인다. 나는 입력한 프로그램대로 수업하는 로봇이 되었으면 싶다. 내 생각이나 감정 따위는 먼지처럼 흩어졌으면 좋겠다. 딱 메뉴얼대로만 말하고 움직이고 싶다. 그럴 수 있다면 10년 아니 20년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한 행동과 말이 어찌나 나를 찔러대는지 가끔은 마스크가 편하다. 마스크를 끼고 말을 하면 어찌나 머리가 아픈지 저절로 말과 행동이 줄기 때문이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나보다 먼저 걱정하는 학부모나 관리자의 말을 생각하면 예방접종이었다 위안해도 내 마스크가 귀도 덮어주면 좋겠구나 싶다. 아! 로봇이 되어도, 마스크가 귀를 덮어도 그렇다고 민원이 들어오겠구나.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나도 좀 단단해질까 생각해보지만 당장 월요일이 무섭다. 아이들이 등교한 후 3일간의 내 말과 행동을 반추한다. 0.1%라도 문제의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것에 가위표를 한다. 다시는 하지 말아야지. 조심해야지. 내 근본을 드러내지 말아야지. 내 생각과 감정을 표시하지 말아야지. 나를 없애야지. 셀프예방접종을 매일매일 맞아야지. 저 식물처럼 가만히 숨만쉬고 물만 마셔야지.

힘들지 않은 노동이 어디 있으랴. 존중받지 못하는 노동은 없다. 내 노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그만 살지 않기’다. 로봇처럼, 식물처럼, 없는 것처럼 살기’그게 내 노동의 지향점이자 가장 힘든 점이고, 존중받아야 하는 점이다. 괜찮다. 벌써 17년 견뎠다. 딱 10년이라고 생각해도 이상하게 자꾸 눈물이 나는지.



“왜 사는가? 모든 것이 덧없거늘! 삶, 그것은 밀짚을 터는 것과 같다. 삶, 그것은 스스로를 불태우고도 따뜻해지지 않는 어떤 것이다.”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의 글처럼 아무래도 나는 새로운 세상으로 건너기 위해 기꺼이 몰락하는 중이라고 생각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