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잘 살았습니다

by 물지우개
나는 오늘도 책장을 넘기는 중입니다.


나는 하루에 한 장씩 책을 씁니다. 어떤 날은 힘들어서 우느라 종이 한 장도 겨우 넘기는가 하면, 어떤 날은 책장이 넘어가는 줄도 모르게 바쁘거나 즐거운 날도 있습니다. 어쨌든 매일 쓰면서 넘기다 보니 내 생의 중간쯤 온 것 같습니다.


날마다 생으로 글을 쓰지만 한 번도 같은 페이지는 없었습니다. 비슷한 일상을 살아내어도 느껴지는 감정은 매번 달랐으니까요. 실수가 많았습니다. 실수와 실망으로 가득 찬 날은 찢어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삶이 어디 단번에 만들어지나요. 틀려도 꾸준히 써야지 틀렸다는 사실도 깨치겠지요.


그러다가 가끔은 책의 앞부분을 다시 펼쳐보고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내 생이 어설퍼서 눈물 나게 슬퍼도 마냥 좋았습니다. 빤히 들여다보이는 거짓말도 어린애가 하면 귀엽잖아요. 속아주고 싶잖아요. 거짓말이 필요한 그 상황이 궁금하고, 그러다 꼭 안아주고 싶잖아요. 나는 가끔 내 책의 앞부분을 펼쳐 읽다가 귀엽고, 가엽고, 아프고, 기특해서 종종 울었습니다.


어느 페이지에는 고마운 분이 있었습니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실수가 많은 때였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서 매 순간 헤매고 있었습니다. 그때 나타난 고마운 분은 실수도 괜찮다 토닥거려 주셨고, 넘어졌을 때 다가와서 괜찮냐고 잡아 주셨습니다. 내가 티끌만큼 아는 것으로 많은 문제의 답을 유추하느라 힘이 빠지면 그분은 몇 번 답을 보여 주기도 하셨습니다. 따뜻한 순간이 많아 바깥이 엄청 추웠는데도 그때의 내 책장은 포근하더라고요.


생이 쓰는 글은 무심히 지나가더라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지금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그 증거입니다. 나는 지나간 시간 덕분에 오늘도 무사히 살아내고 있습니다. 오늘도 몇 번 분노했고, 많이 틀렸지만, 그동안 써온 글로 조금 빨리 잘못을 알아챕니다. 눈물도 예전보다는 약간 깨끗해졌다고 생각합니다.


고마운 분을 생각하며 옷을 짓습니다. 오롯이 한 사람만 생각하며 바느질합니다. 옷은 많이 부족하지만 한 땀, 한 땀마다 그분이 저를 쓰다듬던 손길을 기록합니다. 글을 쓰듯 신중하게 수를 놓습니다. 내 책장이 많이 넘어가도 나는 기억할 것입니다. 바느질은 못 미더운 나를 위한 기록입니다.


나는 줄곧 니체를 생각합니다. 도통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차라투스트라의 말을 자주 듣습니다. 자기 전에 읽고, 운전하면서 듣습니다. 사실, 거듭되는 비유를 이해하는 일은 엄청 피곤하고 이내 졸음이 쏟아집니다. 그래도 디오니소스적 긍정(니체는 부정의 상황에서 나를 극복하면 기쁘고 즐거운 세상에 도달한다고 말했습니다)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부디 이 안간힘의 글자가 내 책에 튼튼하게 자리 잡기를 기도합니다.


다음 생마저 똑같더라도(니체는 ‘영원회귀’를 말했습니다) 나는 나라는 숙제를 풀지 못해 머리를 지끈거리며 글을 쓰고 있을 겁니다. 내 책의 끝부분에 가서는 나는 니체가 말한 ‘초인’이 되어있을 거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내 책 곳곳에 기록된 고마운 사람은 기억하겠습니다. 나는 많이 사랑받았고, 많이 사랑해서 내 삶은 꽤 괜찮았다고, 다시 돌아가도 보고 싶은 사람을 또 만날 수 있으니 기대된다고 말할 것입니다.


이렇게 오늘 페이지를 마칩니다. 오늘도 잘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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